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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여배우 박효주,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생각지도 못했던 변수와 아픔을 만났던 그녀의 이야기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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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2  03: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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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밝은 모습 뒤에 감춰진 슬픔이 한 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혈우사회에서도 지난 대의원회의를 통해 ‘변화와 개혁’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코헴회도 그 이면에는 아픔이 있을 것이다. 도마 위에 올랐던 몇몇 대의원들도 지금 당장 드러내지는 못하는 그들만의 아픔. 그들 나름의 그 아픔은,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미소로 넘기고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밝은 표정 뒤에 무거운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늘 이야기 해볼 주제는 겉과 속이 다른 한 여배우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부정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긍정 이야기이다. 밝은 표정으로 그녀의 희귀질환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다시 일반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교칙에 따라 머리를 잘랐다. ‘나의 꿈은 잘렸다’고 생각했다. 절망의 나날이 계속됐지만, 또 다른 꿈을 품었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오고 있다.”

참 이상한 표현이다. ‘꿈이 잘렸다?’

어떤 순간이나 그 느낌을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아. 이 순간을 아주 오래 기억하겠구나.’라는 일이 벌어지고야 만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런 순간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은 법이다.

그녀가 말하는 ‘꿈이 잘렸다.’라는 말의 의미에 사로잡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막 자른 어린 여자가 잘려져 버려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왜 그런 슬픔 생각을 했을까? 엄마가 주워 온, 액자 속에 발레 하는 여자의 사진을 본 순간부터 발레리나를 꿈꿨던 한 소녀, 어떤 몸짓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러워 인생의 30%를 고통과 함께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힘든 발레리나를 꿈꾸며, 그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냈다. 그러면서 프리마돈나가 되어 무대 위에 서게 될 자신의 미래를 꿈꿨을까? 하지만 그런 꿈 많은 소녀에게 ‘척추 분리증’ 이라는 희귀병의 진단이 내려져 버린다.

▲박효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를 들고 있는 모습 ⓒ인스타

희귀병 ‘척추분리증’은 인류 중 4% 정도가 걸리는 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병은 희귀 척추 질환이자 발레리나들에게는 치명적인 증상이다. 일반적으로 허리통증을 유발하는 척추질환과는 달리 척추뼈 자체의 구조적 이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선천적인 원인과 후천적인 과격한 운동이 반복될 경우 외상 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주로 허리뼈 뒷부분 중 척추관절과 관절 사이가 깨졌거나 조각이나 결손이 생긴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실제 통증을 동반하지 않거나, 혹은 동반하기도 하지만 이 분리된 상태를 방치하고 오래 지속될 경우, 뼈가 비정상적으로 앞으로 밀려 나오는 척추전방전위증으로 발생하고, 발레는커녕,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조차 불가할지도 모른다. 고로 발레리나를 꿈꾸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해졌다.

당연히 발레리나가 될 것이었다. 지금도 발레를 해야 하기에 길러왔을 긴 머리카락을 자르며, 다시는 토슈즈를 신고, 발레 바를 잡을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8년 만에 잘려진 꿈이, 긴 머리카락으로 버려지고 만 것이다.

인물 박효주, TV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신스틸러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감초 역할로 나오는 배우라고만 생각했었다. 배우나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는 느낌이 으레 그렇지 않은가? 뭔가 어딘가에서 본 기억은 있지만, 딱히 친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아 저 배우, 얼굴은 알아.’ 정도의 감정일 뿐이니 금방 또 잊어버리고야 만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그녀의 이름 석자를 앞으로는 잊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그녀는 잠시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신스틸러 같은 조연배우가 아니라, 자신만의 인생을 묵묵히 써 내려가고 있는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처럼 이제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여배우의 장막 밖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박효주, 그녀의 이야기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책으로 펴내며 이런 제목을 지었다.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TV 속 비춰지는 화려한 스타의 모습 이면에도 아픔은 있죠. 위의 이야기는 바로 박효주 작가의 이야기인데요, 그동안 수많은 역할을 맡으며 이름 앞에 연기파 배우, 신스틸러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정작 배우로 자신을 소개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해요. 작성자 북바이북 ⓒ사진=인스타

“쿠바에서 운전사 일을 하는 파블로는 이번 여행의 운전을 맡아주었어요. 결혼한 지 몇 년 되었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대답 대신 자신의 왼손 약지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짙은 반지 자국을 보여주며 그 시간을 짐작하게 해주었던, 아마도 내가 본 바디랭귀지 중 가장 로맨틱한 바디 랭귀지를 보여주었던 그. 햇볕에 그을린 손에 유난히도 선명하게 보였던 하얀 반지 자국.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손.”

그녀는 지금 여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다른 꿈을 찾아내, 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길을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단발머리를 하고 그녀가 돌아다녔던 곳이 세 나라, 쿠바, 크로아티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공산주의 국가로 얼마 전까지 세계사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관광처럼 즐기고 보고자 가지 않았던 쿠바, 몇 년 전, TV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이후 한국인 관광객이 늘기는 했으나 이전까지는 한국인들에게 “그런 나라도 있었어?” 라는 취급을 받기만 했던 크로아티아, 그리고 차갑게 얼어붙은 땅 러시아.

그녀는 이곳이 단지 낯선 곳이기에 마냥 여행을 떠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빌어 자신의 인생을 집필하며, 그 세 나라를 선택해 써 놓은 것은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쿠바. 나라의 이름보다는 ‘체 게바라’ 라는 혁명가의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체 게바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그녀가 받아들여야 했던 리얼리스트의 길, 자신이 병에 걸렸고, 그로 인해 다시 발레를 할 수 없다는 것, 다른 꿈을 찾아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그녀가 받아들여야 했던 불가능한 꿈, 발레리나가 아닌 다른 삶의 무대를 꿈꾸는 것, 이 책은 그녀가 그 답을 어떻게 찾아갔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발레리나들은 엄격한 발레의 기준과 몸의 선을 어긋나지 않도록 발레 이외에 다른 춤을 일절 추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살사의 나라 쿠바, 그녀가 첫 여행지로 당시에는 한국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곳을 선택한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나는 불현듯 그녀가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완전히 잘라내기 위해, 가장 자신이 속해있던 세상과 다른 나라를 고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토록 되고 싶었던 꿈을 포기하다니 “괜찮아?”라고 하는 위로의 말도 “다시 다른 일 찾을 수 있을 거야.” 라는 말을 하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더 나를 힘들게 한다는 그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문득 그녀의 담담하고 즐거운 문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 세 번의 여행에서 그 답을 찾아 돌아온 그녀는 이제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라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 공감의 맞장구를 쳐 줄 만큼 강해져 있었다. 병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독한 약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낯선 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것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나도 그래.’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말에 맞장구를 잘 쳐주는 사람이었나? 문득 제목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섣불리 너의 감정을 이해한다고 말하면 오히려 실례가 될까봐 나는 그렇게 자주 맞장구를 쳐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나의 그 말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었을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아, 조금만 더 맞장구치는 사람이 될 걸. 이라고 문득 작은 후회를 해보게 된다.

그런다고 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렇지 아니한가. 삶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와 아픔을 만났을 때, 그저 한 번의 토닥임, 한 번의 맞장구가 어떤 것보다 더 나를 혼자가 아니게 해주는 것인지도.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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