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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신경섬유종’…“나는 코끼리가 아닙니다.”영화 속에서 본 희귀질환 이야기
박천욱 기자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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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4  0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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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1980작, 감독 데이빗 린치) 영화 포스터

그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며 옳지 않은 시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 쉽게 현혹되고, 판단해버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그 외모적인 특징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다소 비정상적이고,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열성 유전자처럼 보인다면 그것을 쉽게 무시하곤 한다.

혈우병을 갖고 있는 환우들을 살펴보면 과거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장년층 환우들에게서 관절장애가 두드러지게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방요법커녕 출혈 후 치료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장년층 환우들. 그들의 과거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혈우사회 속 환우들의 장애에 대해 불편한 시선은 피할 수 없다. 심지어 건강해 보이는 어린환우나 청년환우들이 나중에는 장년환우들처럼 장애를 갖게 되는 게 아닌가? 라는 오해까지 갖게 한다.

오늘 이야기 할 주제는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묻어나는 사람들의 조롱과 그릇된 시선을 꼬집는 영화 이야기이다. 그릇된 그런 시선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내면을 가지고 있는지를 표현하고, 그 안에 섞여 살고자 했으나, 결국 이겨낼 수 없었던 현실적인 벽과, 자신이 가진 치료할 수 없는 병명 앞에, 평생을 조롱받는 삶을 벗어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1980작, 감독 데이빗 린치)이다.

▲ 영화 속 주인공 엘리펀트 맨은 괴이한 외모때문에 얼굴을 가린 채 조롱을 받으며 살아간다.

엘리펀트 맨이라고 불리던 사나이, 조셉 메릭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대해,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보며, 희귀병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환자들에게 병의 고통보다 더 힘든 경험을 하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은 다른 이를 외면으로 이렇게 판단하고, 평가해본 적이 없었는지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 엘리펀트 맨은 사람들이 주인공을 부르는 별명이었다. 주인공은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어릴 적부터 계속 얼굴과 온몸에 커다란 혹이 붙어있는 기이한 외모(물론 영화에서는 연출을 위해 과장되게 표현하기도 했다)를 갖고 있었고, 이 흉측해 보이는 외모를 보고,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 서커스단 단장이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코끼리에 밟힌 적이 있었기에 외모가 저렇다는 농담을 한 것이 발단이 되어 그 이후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엘리펀트 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어엿한 한 사람이었으나 한 번도 사람들 사이에서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사람, 코끼리가 아님에도 늘 코끼리처럼 취급되어야 했던 사람, 그의 이야기는 화려한 서커스의 쇼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쓸쓸하고, 슬프며,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질환’

‘신경 섬유종’ 그 병을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다. 당시 한 여자가 이 신경섬유종으로 인해, 마치 얼굴의 피부가 흘러내리는 듯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후원 계좌로 모금 활동을 벌이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두 살 때부터 녹내장을 앓으면서 13세 이후로 시력을 완전히 잃은데다가 15년 전부터 심해진 신경섬유종으로 인해 33살이 된 그때까지도 병마와 싸우는 것 이외에 자신의 인생에서 하고 싶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 후원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런 병이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놀라움과, 단지 피부가 매끄럽지 않은 것의 문제가 아닌,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도록 했던 ‘신경 섬유종’이라는 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얼굴이 흘러내리는 병이 아니라, 세상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이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스스로를 옳아매는 커다란 사슬과도 같았던 것이 아닐까?

실제 영화 속에서 배경이 되는 시대에 서커스는 지금처럼 티비나 인터넷 등 다양한 공연과 엔터테이먼트 매체가 없던 일반 사람들에게 가끔 찾아오는 귀중한 오락거리였다고 한다. 그 서커스에는 수많은 기예를 펼치는 단원들과 쉽게 볼 수 없는 맹수와 동물들의 쇼가 펼쳐지곤 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어떤 시기에는 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보기에 흉측하거나 특이한 기형 외모를 가진 아이들을 쇼에 내세우는 것이 아주 큰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를 나 역시 본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의학기술이 발전한 시대에야 웬만한 사고로 인한 신체적 기형은 성형외과와 정형외과의 수술로 감쪽같이 고칠 수 있지만 그 시대에는 다리가 잘못 부러지는 것만으로도 평생 불구자로 살아야 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놓이곤 했으니, 꽤 신체적 기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꽤 큰 비극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우리의 주인공 엘리펀트 맨처럼 타고날 때부터 기형인 사람이라니, 당대 사람들에게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체험 현장처럼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대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나는 최대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엘리펀트 맨을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을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도 노력해보았다. 하지만 어느 시대이건, 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스스로 힘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오히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지금 현실을 조금만 견뎌내면 된다는 희망으로 쇼와 단장과 모든 것을 견뎌냈을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나는 너무나 큰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코끼리를 길들이는 법‘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얼굴에 문제가 있고, 병을 앓고 있다 해도, 어엿한 성인이며 자아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단장의 말에 속아 쇼를 전전하고, 도망가지 않고 살았는지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 안에, 주인공의 별명 ’코끼리‘라는 뜻에는 그런 엘리펀트 맨을 철저하게 주저 앉혀 자신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사람처럼 키웠던 단장이라는 존재, 서커스라는 배경이 있었다.

예로부터 서커스에서 코끼리는 아주 강한, 인도에서 건너왔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동물로 유명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깔아뭉갤 수 있을 것 같은 힘과 덩치를 가진 코끼리를 두려워했고, 두려워하는 만큼 코끼리를 보기 위해 구름같이 서커스를 찾았다. 이러한 코끼리를 서커스에 내보이기 위해, 당시 서커스 단원들은 아주 어린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으로, 어릴 적부터 한쪽 발을 끈을 매달아 나무말뚝에 묶어둔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아무리 먼 곳으로 달려가려해도 끈에 매달려 말뚝 근처만 맴돌면서 살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말뚝 근처의 삶에 길들여지고, 끈을 당겨 더 멀리 가려 하면 매를 맞는 것에 훈련된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 나무말뚝에 매다는 끈을 치워버린 이후에도 말뚝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마치 어릴 때부터 각인을 시키는 것처럼 말뚝 근처에서밖에 살 수 없고, 그 밖을 벗어나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에 대한 일화를 들으며, 이 영화의 주인공 앨리펀트 맨의 삶에 대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왜 쉽게 단장 곁을 떠나지 못했는지, 떠난 이후에 자신의 병이 치유할 수 없는 희귀한 병이라는 것, 평생 이런 얼굴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오 그렇게 절망했는지에 대해 너무나 큰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야 서커스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그의 삶 자체를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해줬어야 했을 친모에게 버림받고, 학대했음에도 자신을 거뒀던 단장을 마치 세상과의 유일한 끈, 자신을 받아들여준 유일한 것으로 여겼을 그의 입장을 이해해 보았다. 왜 우리는 쉽게 복종과 학대로 점철된 삶을 벗어나려는 용기를 가지지 못하는가. 왜 쉽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비웃고 구경하는 것으로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증명 받고자 하는가.

이 영화는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병에 대한 영화, 그 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한 인물의 인생을 되짚어봄과 동시에, 병을 단지 타인의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인생과 비교하고 우월감을 느끼는 수단으로밖에 이용하지 못하는 편견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는 그렇기에 매우 감동적이면서도, 가슴을 씁쓸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희귀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 더구나 외모가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것. 많은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장벽이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을 알게 되는 순간, 겉모습은 단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포장지와 같은 존재일 뿐이고 정작 알맹이가 남는다. 즉 우리 환우들은 타인에게 선입견을 벗겨 내버리는 시간이 다소 필요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알맹이에 상처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장지도 어눌하고 알맹이마저 평범하지 않다면 ‘선입견’만 확증시켜버리는 것이 된다. 내면을 가꾸고 성품을 갖추고 양보와 배려를 몸소 실천할 때, 비로써 그 진가를 나타낸다.

다소 몸이 불편한 환우들, 더욱이 장년층 환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꽤 높은 인품을 갖춘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전문분야에 종사하거나 사회에서 아무런 장벽 없이 활동하고 있다. 오히려 일반인들에 비해 섬김의 행동을 먼저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들을 볼 때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건강하게 살아왔던 내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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