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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는 내 인생 평점, 별 다섯 개”내일 일을 오늘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면…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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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8  17: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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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혈우사회의 복잡하고 암울했던 100일간의 고된 시간이 지났다.

결국 코헴회는 잘잘못을 따져 묻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은 듯하다. 계속 장기화가 되면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 일게다. 더구나 혈우사회 속 큰 어른들의 중재안과 조언이 이렇게 마무리 짓는데 한몫했을 수도 있다.

흑백의 명확한 결과 없이 마무리됐을 때는 개운치 않은 구석도 남아 있을 수 있겠으나, 상처를 계속 들추면 아물기는커녕 덧나버리는 수가 있다. 아픈 혈우사회의 상처가 잘 아물기를 바라면서 우리 혈우사회를 바라보는 듯한 한편의 일기장을 소개한다.

“살면서 복잡한 생각에 갇혀 절망하고 아파하지 말자. 그저 오늘을 기쁘게 살자.”

이런 모습으로 살았던 한 여인의 마지막 일기. 이것은 투병기가 아니라 시트콤 같은 희극이었다.

# # #

리뷰를 쓰고 평점을 매긴다. 물론 나 혼자 주관적으로 주는 것이지만 별 1개를 꽉 채워 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반 쪽 짜리 별을 줘야 할지, 매번 고민하면서 말이다. 리뷰를 쓰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그녀에게는 그것이 늘 있는 일상이었다.

물론,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병은 그녀에게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리뷰를 써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멋진 북 리뷰를 기다리게 되었다.

너무나 기쁘고 힘이 저절로 날 것 같은 인생, 하지만 어느 날, 그녀의 글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듣게 된 슬픈 소식, 그녀가 남긴 마지막 글은 그녀의 부고였다.

▲ 별다섯 인생/ 홍윤(물만두) 저/ 바다출판사/ 출간 2011년 12월 13일/ 블로그에서 ‘물만두’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10년 간 1838편의 리뷰를 올린 전설적인 서평 블로거이다. 근육병을 진단받고 투병 생활을 하면서 특히 추리소설을 중심으로 공상과학, 미스터리 소설 등 장르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2000년 3월 2일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2010년 11월 17일까지 3913일간 1838편의 리뷰를 올렸다.

자신의 인생 마지막 글, 그동안 혼자 적어왔던 메모들, 남에게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던 비밀일기를 묶어 ‘별 다섯 인생’이라는 에세이를 펼쳐내었다. 그녀 자신이 자신의 인생에 주었던 평점, 별 다섯 개, 25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 가장 인생에서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많을 찬란한 나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온몸의 근육을 못 쓰게 되어가는 불치병에 걸렸고, 스스로 앉지도 걷지도 밥을 먹지도 못하고 혼자 화장실조차 가지 못해 누군가의 도움이 늘 필요했던 시간에 갇혀 20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왜, 어떻게, 자신의 그런 인생에 만점 같은 별 다섯 개를 줄 수 있었을까? 물론, 병이 있다고 해서 그 인생이 병이 없는 사람에 비해 부족하거나 불행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안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녀의 입장이라면, 나는 절대 내 인생에 별 다섯 개를 주지 못했을 것이기에 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에세이의 제목을 한참 쳐다보았다.

너무나 부러웠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읽은 후에도 말이다. 나라면 과연 내 인생에 대해 그렇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름 그렇게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에, 나는 별 다섯 개는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의 본명 홍윤 보다는 장르문학 서평가로 더 유명했던 애칭 ‘물만두’. 그녀가 남긴 마지막 일기는 너무나 유쾌했으며 가족과 지인과 자신의 인생을 향한 깊은 애정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2010년 12월 13일 아침, 저희 언니 물만두가 하늘로 갔습니다.”

15일 저녁, 트위터를 통해 메시지가 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블로그는 그녀가 죽은 이후에도 영구 보존되었고, 10년 간 써온 리뷰가 묶어서 책으로 출간되었다.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그녀가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처음 진행성 근육병인 ‘봉입체근영’ 판정을 받고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떠나던 마지막 날 아침, 남긴 말은 ‘엄마’라는 한 마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살아 있을 때도 ‘물만두’라는 또 다른 자신의 이름으로 살았다. 떠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글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이전까지 물만두라는 리뷰어의 글을 알지는 못했지만 ‘나물이네’라는 내 나름대로 즐겨 찾아보던 유명한 요리 블로그가 있었다.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나물이라고 불리는 40대 청년의 요리 이야기와 레시피들은 당시 자취를 하던 내게 꽤 유용한 것이었기 때문에 틈이 날 때마다 들러 그가 시골에서 혼자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는 재미에 1년이 넘게 빠져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글이 올라왔다. “오빠의 49제를 무사히 치렀습니다.” 그 때 그 문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게 되고, 더 이상 새 글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얼굴을 늘 보면서 친분을 쌓았던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글을 좋아하고, 며칠에 한 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만으로 내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죽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그때 내가 느꼈던 충격,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감정을 ‘물만두’의 리뷰를 읽던 사람들도 똑같이 느꼈을까? 나는 그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다가 이 책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듯 했다.

“나는 서른여덟, 아버지는 예순여덟, 내가 나이 먹는 것보다 아버지가 나이 드시는게 더 두렵다. 서글퍼지는 일요일, 일찍 일어나 보니 나보다 일찍 일어나 계신 아버지가 물으신다. ”왜 일찍 일어났니?“ 내일 모레, 나는 마흔, 아버지는 일흔, 좁힐 수 없는 간극, 그 사이로 저 빛이 비추기를, 아버지가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한다. 건강하게.” - 별다섯 인생 中

삶과 죽음은 사람을 철들게 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물만두 그녀는 이미 25살에 철이 너무 들어 버린지도 모른다. 나조차 한참 나이가 들고 나서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던 어머니의 주름과 흰 머리. (문득 오늘따라 어머니의 회색 빛 머리카락이 유난히도 눈에 띤다)

그녀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 같지 않게 유쾌한 필체로 일기를 썼다. 그녀가 이 일기의 중간 중간 보여주는 진심은 얼마나 자신의 죽음과 남겨질 가족에 대해 애정과 슬픔을 가지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런 군데군데 서려있는 그녀의 진심이 느껴지곤 한다. 그 외엔 그저 이 책은 매우 즐거운 책이다.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마치 그녀가 써 왔던 리뷰들처럼 말이다. 우기기 대 마왕 엄마, 식탐 대왕 아빠, 늘 막내인 여동생과 남동생, 시장에서 호떡을 사려다가 호떡을 더 먹고 싶어서 아픈 딸을 팔아 더 많은 호떡을 빼돌리는 이야기라든가, 간식을 챙겨먹는 만화 같은 모습, 못됐다고 투덜거리다가 또 몸을 가누기 어려운 누나를 위해 기꺼이 등을 내밀어 업어주는 남동생의 등까지, 나는 왜 이렇게 투병기를 읽으면서 내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투병기라 함은 읽으면 읽을수록 늘 마음 위에 큰 돌 하나를 얹어놓는 것처럼 무거운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읽을수록 누군가의 재미난 일기, 시트콤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즐거워졌다. 그것이 참 이상한 투병기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비록, 그녀는 병을 치유하지 못하고 떠났지만, 가족들은 그녀에게 보여 줄 예쁜 꽃을 카메라에 담아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집으로 뛰어왔다.

나 역시 그저 하루를 살아있는 그녀의 기쁨과 모든 감정을 함께 느끼며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아주 따뜻한 글이었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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