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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아주 작은 것을 소중히 바라보는 마음‘민들레 홀씨 하나 큰 숲을 이루다’를 읽고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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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0  13: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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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서울에서만 살았던 까닭에 ‘시골에 대한 풍경’같은 감수성 어린 추억은 없다. 그러나 내 앙상한 기억 속에 ‘시골 동경’이 남아 있는데, 그건 10살 차이 큰 누나와 함께 누나친구 할머니댁에 다녀온 기억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나 손을 잡고 시골에 내려가 누나들과 놀다가 시골 산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도시의 바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통쾌하게 부는 바람에 무엇을 해도 후덥지근하지 않았고, 시골밥상이라는 것이 그럴 것이, 산에서 할머니가 캐 오신 산나물, 두릅, 버섯을 조몰 조몰 무친 소박한 밥상, 집 밖에 나가 길을 걸어 다니기만 해도 호두나무, 밤나무, 도토리가 지천에 굴러다니는 풍경이, 마치 장난감으로 가득 찬 곳에 간 것 마냥 즐거워 ‘이것은 뭐예요?’ 라고 묻는 재미에 하루를 금세 보내던 기억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아련하고 따뜻하게 남아있다.  

참 신기하다. 시골이란 곳은, 길을 걷다보면 벼를 심어 놓은 벼 위로 메뚜기 같은 것이 풀쩍 풀쩍 뛰어다니며 그 특유의 고인 논물에서 나는 흙냄새가 진동을 하고, 밭 둘레에 심어 놓은 깻잎은 도시에서도 늘 상 보던 것인데도 무언가 비교할 수 없게 진한 향을 풍겨 와서 ‘여기 깻잎이 내가 그 동안 알고 있던 그 깻잎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게나 자연은 모든 것이 가득하다. 향기도 가득하고, 바람도 가득하고, 내 마음도 함께 가득해진다. 그렇게 진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대기 위해 인간은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 튼튼한 하우스를 지어 비바람을 막아주고, 강한 햇볕을 막아주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맞고 자란 생명은 진하고 강한 향기를 내뿜는다. 매일 먹는 깻잎도, 하우스에서 농부의 보호 속에 자라 보슬보슬하고 연약한 것은 향이 강하지 않다. 그저 먹기 쉽게 만들어진 식 재료일 뿐이다. 하지만 흙냄새를 맡고, 바람을 그대로 이겨내고 자란 깻잎은 진항 향과 거친 모양을 가진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 말이 역사책에 있지 않은가, 인간이 처음 지구 위에 거대한 터전을 이뤘던 세계 4대 문명지는 사실 사람이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고 척박했던 땅에, 자연 재해가 많은 곳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인간도, 세상도, 결국 우리를 키우는 것은 어떤 보호도 아닌 평지풍파를 스스로 이겨낸 후의 도전과 응전인 것이다. 

   
▲ 민들레 홀씨 하나 큰 숲을 이루다/ 김영실 저자/ 물푸레 출판 / 2007.02.26

故 김영실 안양대학교 총장님의 인생 또한 그런 노지에 피어 있는 향기 강한 깻잎나무 한 그루, 민들레 꽃 하나와 같았다. 총장님은 자신의 인생을 그런 민들레꽃에 비유했듯, 그의 인생 자체가 척박한 땅에 피어났던 민들레와 같았다. 

그 작은 민들레 하나가, 어디에나 있음직해서 그 누구도 유심히 보지 않았던 씨앗이 꽃을 피워 열을 내리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염증을 없애고, 위장을 튼튼히 하여 피를 맑게 하는 귀중한 약재가 된다. 시멘트 도로 틈 사이로,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돌무더기 사이로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그 작은 홀시가 옮겨져 부리를 내리듯 슬프고 고통스러워 도저히 올 것 같지 않은 전쟁과 일제와 해방의 시기를 건너 김영실 총장도 한국의 근대, 현대사를 건너 양을 키우고,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는 수많은 동포들을 구제할 교육의 홀씨를 뿌린다. 

입학 후 인천에 있는 친구 집에서 통학하는가 하면, 친구와 자취도 해야 했고, 서울로 올라 온 동생과 함께 서대문의 기숙사에 입사하기도 하는 등 여러 고초를 감내해야 했다. 배제중학교를 끝마칠 무렵 그는 경성제대 철학과에 가고 싶었으나 돈이 만만치 않았다. 급기야 여러 방도 끝에 일본 유학의 꿈을 품었고, 당시 배제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던 아펜젤러 2세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분이 건넨 작은 도움 하나로 다시 힘을 얻어, 더 이를 악물고 노력해 학업을 마쳤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홀로 버티고 피어난 그 홀씨 하나가 또 다음 세대의 수많은 아이들이 쉬고, 공부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커다란 숲인 대학을 설립해 이끌어나가게 하기까지, 얼마나 매섭고 추운 바람을 혼자 견뎌내며 살다 간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읽어 내려가는 이 글은 그저 단지 성공적 인생을 살다 간 한 위인의 일대기라기보다는, 작지만 강하고, 향기로운 사람이 되라는 마지막 그의 손길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교육을 농부가 과목을 접붙이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염나무에 감나무 순을 접붙이면 뿌리는 고염나무로되 열매는 감이 달린다. 사람도 그 태어난 바탕이 좋지 않더라도 교육을 통해 위대한 사상에 접하고 감화를 받게 되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인간접목, 그것이 곧 교육이다.“

교육, 나는 이런 스승을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내 스스로 누군가의 스승이 될 만큼 존경받는 스승이 되기 위해 공부한 적은 없었으나, 이런 스승을 한 번쯤은 만나봤다면 어쩌면 나 역시 장래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적어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를 넘어, 내 삶과 가치관을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아닌, 내 스스로 강인하고 올곧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을 따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사람, 김영실 이라는 한 사람이 가진 삶을 대하는 진중함과 깊이는 민들레처럼 아주 작은 것을 소중히 바라보는 마음, 나무 하나 하나가 모여 만든 숲의 아름다움을 그 어떤 귀중한 보석이나 건물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바른 가치관으로부터 비롯한 것이었다. 나는 과연 그런 사람, 그런 어른으로 자라나 숲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자기개발서적의 한 종류라고는 하지만 다른 여타 자기개발서적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그리고 다른 배움을 가진다. 평소 자기개발서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이 책은 오래도록 내 책장에 꽂아두고 이따금씩 내가 아주 초라한 존재처럼 느껴질 때, 나를 내가 사랑할 수 없게 될 때 읽어보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연하다고 느끼는 일들과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고 연결이 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순간의 기적 같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섬세하고 소심하며 긴 호흡을 하게 하는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어릴 적 걸어가며 보았던 시골의 초록빛깔 무성한 숲을 바라보며 나는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와 생각해보았다. 영화, 드라마, 소설, 수필, 과학서적, 수많은 곳에서 그려지는 숲의 다양한 이미지, 그렇다면 ‘나에게 숲은 무슨 의미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다보니, 내게 숲은 ‘무언가 많이 숨기고 있는 장소‘ 라는 생각이 가장 강했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뒤에는 어떤 동물이 튀어나올지 모르고, 발을 스치는 무성한 풀숲 사이로는 어떤 벌레나, 뱀 같은 위험한 동물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하지만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역시 그런 장소가 아닐까 한다. 무엇인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지만 섣불리 무엇이 나올지 몰라 다가가지 못하는 곳. 하지만 전에 보지 못한 새롭고 신비로운 세상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내가 느낀 숲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었다. 마치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 작은 원 사이로 본다면 숲은 아주 작은 생물들이 살아가고자 바쁘게 움직이고, 낙엽 한 장도 예쁘고 의미 있는 전체가 될 수 있으며, 이끼 한 뼘.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도 굉장히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우리가 전체만을 바라보느라, 바쁘게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느라, 스쳐 지나가고 몰랐던 모든 자연의 모습.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책이었다. 

책에서 강조하는 건, 물론 ‘교육’이다. 그러나 깊은 곳에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는 아마도 ‘민들레처럼 아주 작은 것을 소중히 바라보는 마음’이 아닐까? 우리 혈우사회에서 이타와 배려가 숲을 이루는 모습을 그려보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헤모라이프 대표 박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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