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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분만 기억하는 병에 걸린 수학박사”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언급되는 희귀질환
박천욱 기자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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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9  02: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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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희귀한 질환이 많다. 그 수는 수천 종에 이른다. 더구나 대부분은 치료제 없이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어떤 희귀질환은 단명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혈우병은 피가 잘 멎지 않는 희귀질환이지만 다행히 치료제가 있고 예방요법 등으로 점차 관리가 가능해져가고 있는 질환 군에 속한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 이야기 해 볼 영화 속에 언급되는 희귀질환은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병이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한 수학박사의 이야기이다. ‘단기 기억상실증’은 ‘흔치 않는 병’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제로 교통사고 후유증이나 기타 질병의 증상으로서 의외로 빈번하게 보이는 증상이라고 한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고의 충격으로 인한 단기증상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80분’이라는 명확한 시간 속에서 꽤 장기간 낫지 않고 지속되는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감독 : 코이즈미 타카시/ 2006.11.09. 개봉/ 일본>의 원작은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오가와 요코의 작품이다. 오가와 요코는 이 작품으로 2003년 ‘제55회 요미우리 문학상 소설상’, ‘제1회 서점대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단기 기억상실증인 60대 수학박사, 그리고 20대의 미혼모 가정부. 그들의 아름다운 수식 놀이가 시작된다.

“80분만 기억하는 병에 걸린 수학박사”

10살 된 아들을 혼자 키우며 가정부 일을 하고 있는 미혼모 여자주인공 ‘나’. 그녀는 어느 박사의 독신 가정에 일을 의뢰받게 된다. 그 박사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80분 정도밖에 기억력이 유지되지 않아 80분이 지나면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는 병을 앓고 있다.

“신발 사이즈가 몇이냐?”
“24입니다.”
“청결한 숫자군. 4의 계승이야.”

이 단순한 대화를 박사와 여주인공은 1년째 계속한다. 그런 박사를 보살피기 위해 여주인공은 아침마다 박사의 집에 출근하며, 아침마다 같은 ‘신발 사이즈는 24’의 대화를 하고, 박사의 집안일을 보살피게 된다. 처음에는 두 사람만의 주제로 대화가 오고가지만 점차 대화 폭이 넓어지면서 여주인공의 아들이 박사의 집으로 놀러오게 된다. 박사와 친해지게 되자, 박사는 여주인공의 아들에게 ‘모든 것을 포용’하는 기호인 ‘루트’를 따서 ‘루트’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여주인공의 아들 ‘루트’와 가정부인 여주인공, 그리고 박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사는 자신의 병을 모른척하며 따뜻하게 집안일을 보살펴 주는 여주인공에게 의지하게 되고 여주인공은 박사가 때때로 설명해주는 우리 주변의 숫자의 의미에 대해 듣게 된다. ‘루트’는 할아버지 같고 아버지 같은 박사님과 친해지게 된다. 단 80분간을 기억하는 박사와 보낸 여주인공과 ‘루트’의 가족 같은 사랑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수학. 그러나 그 수학의 질서는 아름답다. 예를 들어 소수의 성질이 밝혀진다 해도 생활이 편리하게 된다거나 돈을 벌게 될 일도 없다. 물론 아무리 세상에 등을 돌리려 해도 결과적으로 수학의 발견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수학의 목적은 아니다.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용기를 갖고 현명한 눈을 떠라. 소중한 것은 마음 안에 있다.”

영화에 몰입하다 보니 “내가 이처럼 수학을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과연 있었나?”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모든 세상의 사물과 일어나는 일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려 하고, 또 그것이 ‘귀엽다’거나 ‘아름답다’거나, ‘고집이 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마치 살아있는 생명인 것처럼 말하는 박사를 보며, 처음에는 매우 다른 존재를 보는듯한 낯섦과 괴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박사가 수학 박사로서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 박사가 ‘80분’밖에는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제 한 이야기를 또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렇게 몸이 불편해진 이후에도 숫자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의 의욕을 잃지 않은 박사가 그저 수학과 숫자를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게 되자, 박사가 앓고 있는 희귀한 질환과는 관계없이 그저 인간적인 박사의 심정과 상태에 대해 공감되기 시작했다. 박사는 ‘숫자’를 듣기만 해도 그 숫자의 특성을 찾아낼 수 있는 아주 똑똑한 학자이다. 그런 박사가 수학이 아닌 ‘소중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그 박사에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수학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내가 혈우사회의 구성원이 되면서 실제로 경험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머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말해서 내가 처음에 혈우병 환우를 보게 되었을 때는 ‘혈우병’이라는 질환에 대해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함께 호흡하며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이제는 그 관심이 ‘혈우병’이 아닌 각 환우들의 인간적인 삶, 즉 개인별 특성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과 같은 이치였다.

따라서, 우리 환우들이 속해져 있는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일반인들과 부딪치고 포용하면서 살다보면 ‘혈우병 환자’가 아닌 한 인간의 평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만든 ‘혈우병’이라는 그 벽은 타인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빠르고 쉽게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게 된다.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미혼모인 가정부의 아들, 박사는 그를 '루트'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수식이기 때문이다.

“수학 기호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그간 알고 있었던 수학 기호들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며, 처음으로 수학기호가 박사가 말하는 것처럼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생각, 또 그저 수식을 간단하게 표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닌 뭔가 인간처럼 따뜻한 존재라는 생각까지도 가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우애수(友愛數)라는 숫자, 여주인공의 생일과 박사가 가진 시계의 숫자를 연관시켜 이 우애수라고 말하는 부분이라든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를 소수라고 말하면서 소수를 좋아하는 이유를 ‘1과 자기 자신으로밖에 나눠지지 않기에 특별하다’고 표현하는 부분, 여주인공의 생일을 물어보고 그 생일이 약수의 합이라는 등의 설명을 하는 모습은 다소 사회성이 부족해보이기는 했으나, 최대한 자신이 아는 지식 범주 내에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주인공과 그녀의 아들을 루트라는 수식으로 표현한 부분이 그러했다.

또한, 박사는 여주인공과 그녀의 아들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루트’라는 기호로 표현한 것을 통해 미혼모와 아들의 관계와 삶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식으로 기억하든, 표현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박사가 다른 사람들처럼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나, 루트가 가진 조건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수식과 수학이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전에 내가 보아왔던 어떤 감성 영화보다도 더 감성적이고 섬세한 표현을 갖춘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포스터

“단기 기억상실증,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이 영화에서 박사의 ‘단기 기억상실증’을 떠올리며, 만약 내가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하고, 박사처럼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고,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이 장소에 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면 과연 내일, 그리고 모레, 1년 후, 10년 후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지 방향을 잃어버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는 1과 자기 자신으로밖에 나눠지지 않는 외로운 숫자이다. 박사가 사랑하는 그 소수는, 박사 자신을 투영한 존재는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런 박사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 박사도 1과 자기 자신, 단둘보다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문득 박사가 반복적으로 하는 질문들이, 말들이 결코 그냥 귀찮은 일이라거나, 곤란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겪게 된 이 병을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처럼 겪어내고 있는 박사도, 또 그런 박사를 이해하고 한 번의 짜증도 없이 대답해주는 루트나 여주인공의 태도에도 감사함을 가졌다.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참 따뜻한 영화이다. 쉽지 않은, 언제 나을지 모르는 병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너무나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어 안으며 이겨내고 있다는 것이. 병의 아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를 그렇게 이해하고 끌어안고 있다는 것 같다. 우리 혈우사회 속에서도 비록 혈우병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전문성을 충분히 살려 대인관계의 폭을 넓히게 되면 상대는 나를 혈우병 환우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전문분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전문분야라는 것은 꼭 기술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든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배려를 해 줄 수 있다든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친절하다든지... 그렇게 되면 상대의 기억 속에 나는 ‘혈우병 금자씨’가 아닌 ‘친절한 금자씨’로 기억될테니 말이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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