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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결번’잔인하고 혹독한 희귀병…그러나 그는 영웅이다
박천욱 기자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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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8  23: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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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었다. 3월이 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다시 학교에 가서 새 학년, 새 교실, 새 담임을 만나야 하는 흥미진진한 달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나 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는 기쁨의 달이다. 나에게 3월은 ‘어떤 달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아마 여러 가지 대답 중에 ‘야구를 다시 볼 수 있는 달이 왔어.’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야구 경기는 겨울을 제외하면 거의 1년 내내, 매일 하는 경기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야구가 퇴근 후 할 일 없는 솔로 직장인들을 위한 스포츠라고 우스갯소리를 기사 문구로 쓰기도 했나 보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하는데도 나 같은 야구팬들에게는 1년 중 경기가 열리지 않는 2~3달 남짓의 시간이 가장 길게 느껴지니, 정말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매력을 가진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드디어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다.’는 기쁨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내가 좋아했던 야구 선수들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나의 생각은 그에게 이르렀다. 바로 ‘루 게릭(1903년 6월 19일~1941년 6월 2일)’ 전설적인 야구 선수이자 스포츠 영웅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토록 평생을 바쳐 했던 스포츠 선수로서가 아닌, 여러 환자들이 결코 듣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병명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된 남자, ‘루 게릭’ 그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 이른바 ‘루게릭병’의 주인공이다.

“팬 여러분, 지난 2주 동안 제가 앓고 있는 질병에 관해서 들으셨겠지요. 하지만 오늘, 저는 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운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야구장에서 17년이나 뛰었고 팬 여러분들로부터 친절과 격려만을 받았습니다. (중략) 당신을 가르치고 키우기 위해 평생을 바친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힘의 근원이 항상 되어주고 당신이 가능하다고 꿈꿨던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내가 있다면 그것은 제가 아는 최고의 일입니다. 저는 고통스러운 질병을 앓고 있지만,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말씀드리면서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야구 선수 ‘루 게릭’.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영구결번’의 영광을 받은 선수이다. 그가 현역 선수 시절 사용했던 ‘4번’의 등 번호는 아직도 그 어떤 선수도 사용할 수 없다.

세계적인 야구 구단이자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구단 중 하나인 뉴욕 양키스는 1939년 루 게릭이 병으로 은퇴를 발표하자, 그의 은퇴식을 성대하게 열어 주었고 그의 등 번호 ‘4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겨 그가 야구 역사에 남긴 업적을 후일 다른 선수들도 기릴 수 있도록 최고의 예우를 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지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전설적인 야구 선수로, 뉴욕 양키스의 영원한 ‘4번’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루게릭병’ 이라는 너무나 잔인하고 혹독한 희귀병을 대표하는 명칭이자, 스티븐 호킹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병이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이어가며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기부금을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으면서도 그 ‘루게릭’이 그의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물론, 병의 명칭, 유래를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나, 나는 그의 야구 인생과, 그가 은퇴식에서 했던 저 감동적인 연설, 그리고 그가 이후 자신의 병과 끝까지 마주하며 살아갔던 정신은 우리가 충분히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 영화 '야구왕 루 게릭(The Pride Of The Yankees, 1942)'에서 게리 쿠퍼가 열연했다. ⓒ영화 스틸컷 중

“나쁜 소식이야, 쉽게 이야기해서 영구적 소아마비와 같은 ‘측색경화증’이래. 고칠 방법이 없대… 이 경우는 거의 그렇다고 하네. 아마도 일종의 병원균 때문이라지… 그게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된다고는 듣질 못했어… 지금과 같은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은 반반이래. 10년이나 15년 목발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야구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지…”

그는 세계 최고의 야구 리그,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라는 명문 구단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14년이라는 기간 동안 2000경기가 넘는 경기를 연속 출장하며, 거의 1년 내내 야구 경기에 나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훌륭한 타율을 기록했고, 그의 기록을 당분간 누구도 깰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1939년,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한 타율, 그는 자신의 스피드와 경기 감각이 이전과는 다르며,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고 후일 말하곤 했다.

루게릭병은 아주 서서히 사람을 죽음과 삶의 경계 사이에 가둬버린다. 처음에는 단지 몸이 둔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정도이다. 뇌와 척수에 있는 운동 신경세포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상되고 파괴되면서 아주 서서히 팔, 다리, 손가락, 전신으로, 그리고 후반에는 눈이나 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신체의 근육들이 움직임을 서서히 멈춘다.

더 잔인한 것은 환자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 자신의 몸이 서서히 조금씩 굳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 누구보다 강인한 체력과 건강한 정신을 보여주어야 할, 프로 구단의 선수로서 자신의 몸이 최상의 상태가 아님을 밝힌다는 것, 그것은 아마 그에게 있어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선수로서 가치가 떨어져 가고 있다는 것, 그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선수가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당시만 해도 너무나 희귀하고, 일반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병에 걸린 루 게릭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종횡무진 야구장을 뛰어다니던 그는 공 하나를 송구받기 위해 1루 베이스로 몸을 거의 끌다시피 해서 들어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모두 루 게릭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에 대해 그의 고백으로 일찍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료로서 그를 받아들여 주었고, 그럼에도 루 게릭은 자신을 믿어주는 감독, 동료, 팬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욕심만으로 야구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 여섯이었다. 프로 야구 선수로서는 다소 많은 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바로 전년도까지 최고의 성적을 보여주던 선수였다. 그런 사람에게 어느 날, 절대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것은 대체 얼마나 큰 절망감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을까?

▲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그리고 그는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후 병을 이겨내는 것에 집중하며, 그의 아내와 함께 여생을 보냈다. 1939년 10월 뉴욕 시장인 라 과디아(La Guardia)로부터 10년 임기의 뉴욕 시 가석방 위원회 감독관 직책을 임명받아 숨을 거두기 한 달 전까지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아내 역시 그가 죽은 이후에도 그를 기리며 루게릭 환자들을 위한 활동에 힘썼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찾아보며, 그를 떠올리며 이전과는 다른 무게로 루게릭병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면 우리 혈우사회는 어떤가? 혈우사회는 발전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다시 원점으로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 한 느낌도 든다. 한목소리로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기에도 다급한 시기에 또다시 뒷걸음질하는 게 아닌가? 라는 우려도 있다. 우리에게는 영웅이 필요한 시기에 몸살을 앓아야 하는 건 매우 애석하다.

지금이라도 과거를 털어버리고 하나의 지향점을 목표로 힘을 모으려는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지 않겠나!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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