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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엔딩 크레딧에 무엇이라 적고 싶은가?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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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1  04: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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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들이 앓고 있는 혈우병이 절대 나을 수 없고, 살 수 있는 라이프타임이 청년까지나 장년까지라고 정해져 있는 질환이었다면, 어떤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

이런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성향’에 대한 가설은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또는 창작된 허구의 작품들 안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그리고 학술적인 연구 자료로까지 나와 있을 만큼 흔한 질문 중 하나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자신 혹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상실과 죽음 수용의 5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마지막 수용에 이른다고 한다.

자신에게 닥쳐온 치명적 불치병을 부정하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며 분노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혹시라도 기적이나 다른 것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방법을 믿으려 타협하고 그 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우울감에 빠졌다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 죽음 앞에서 더 눈부셨던 한 예술가 이야기 <어둠이 오기 전에>/저자 사이먼 피츠모리스/ 역자 정성민/ 출판사흐름출판/ 출판일 2018.08.10

정말 그런 것일까? 그럴싸해 보이는 이 단계를 떠올리며, 나는 오늘이야기 할 <어둠이 오기 전에(사이먼 피츠모리스作/ 호름출판)>라는 책의 주인공, 사이먼 피츠모리스가 받아들인 자신의 병과 죽음에 대해 지켜보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이먼과 아주 유사한 상황을 겪었고,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나의 옛 지인이었던 후배를 떠올리게 되었다.

늦깎이 대학 시절을 보냈던 나는 짤막한 광고영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한 영상모임에서 독립영화 감독을 꿈꾸는 후배와 친해진 적이 있었다. 27살, 그는 대학 졸업에 전공 공부까지 재껴 두고 스크린에 빠져있을 정도로 영화를 사랑했고,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짤막한 단편 영화를 촬영해 출품까지 하는 그 후배의 모습은 그저 학과 공부를 따라가기에도 바빴던 내 눈에 정말 진정한 대학의 낭만을 즐기고 있는, 자신의 꿈을 향해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재능 있는 미래 영화인의 모습이었기에 마냥 선망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거칠 것 없어 보였던 후배는 어느 날부터 “감기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더니, 이내 ‘급성백혈병’이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렇게 헌혈증을 모으고, 골수 이식자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던 얼마 뒤, 하늘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그렇게 촉망받던 재능을 가지고 환하게 빛나던 사람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삶이 허망하다는 생각마저 가졌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해도 우리는 결국 병마 하나도 이겨낼 수 없이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사이먼 피츠모리스의 <어둠이 오기 전에>라는 책 제목은 문득 그 후배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 같은 촉망받는 영화감독이자 작가, 제작자로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는지, 치료를 받으면서도 다 낫고 나면 자기의 투병기를 재미있는 단편 영화로 만들겠다고 말하며 장난을 치던 후배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벗어날 수 없는 죽음,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서 마무리를 하고 다음 영화를 상영해야 하니 이 극장에서 나가라는 듯 말하는 운명을 향해, 그들은 어떤 영화를 보여주고, 또 엔딩 크레딧에 어떤 글을 쓰고 극장의 불이 다시 켜지기를 바랐던 것일까? 삶의 마지막에 어둠이 오기 전에, 사이먼 그가 하고 싶었던 한 글자, 한 문장, 하나의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이 책은 그가 실제로 ‘아이게이즈(동공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기술)’를 통해 한 자씩 심혈을 기울여 써 내려간 글을 우리에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나로서는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아내에 대한 사랑, 아이들에 대한 사랑, 친구와 가족에 대한 사랑, 인생 전체에 대한 사랑, 내 사랑은 여전히 빛나고 굴복하지 않으며, 깨지지 않는다. 나는 살고 싶다.”

▲ 제28회 골웨이 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

35살,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 그리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 사이먼 피츠모리스는 그 젊은 나이에 ‘운동 뉴런증(MND)’이라는 루게릭병의 일종인 희귀 질환 판정을 받고 4년의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이 병은 운동 신경에 점진적 퇴행 증세가 나타나는 중증의 신경계 질환군으로서 뇌에서 나와 연수 또는 척수로 전달되는 상위 운동 신경이나 척수로부터 근육으로 전달되는 하위 운동 신경 등에 이상을 일으켜 점점 몸이 굳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다가 과도한 반사 반응이나 반대로 둔화 증상이 일어나게 되고, 점점 하위 운동 신경이 손상되면서 근육이 위축되어 쇠약해지는 희귀질환이다.

처음에는 손의 감각이 둔화되고, 다리가 간혹 의도한 데로 움직이지 않거나, 음식을 삼키는 것에 어려움이 생기고, 말이 느려지는 단순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점점 호흡근에까지 영향이 미치게 되면서 기침이나 호흡곤란 증상이 일어나고 근육위축, 강직이 진행되고 나면 전신 마비가 되어 몸의 어떤 근육도 움직일 수 없는, 그야말로 신체에 정신이 갇혀버리는 것 같은 상황이 오게 되고 만다.

사실 이런 종류의 증상을 일으키는 뇌신경계 질환은 이미 여러 개가 보고되고 있으나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따라서 마땅한 치료법도 없기 때문에 그저 지켜보며 환자가 어떻게 남은 삶을 더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논하고, 환자 자신도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일반적인 환자와 보호자들의 반응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책의 주인공 사이먼은 그런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으로 인해 남겨지게 될 가족들, 그리고 아직 다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영화인으로서, 창작자로서의 열정을 남은 4년에 모두 담아내려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의지는 병을 확진 받은 이후에도 영화를 제작해 개봉시킬 정도로 강했다. 실제 이 책 역시 영화로 각색되어 개봉되기도 했다.

▲[영상] 죽음 앞에서 더 눈부셨던 한 예술가 이야기 ‘어둠이 오기 전에(It's Not Yet Dark)’

책 안에는 그의 간절함이 한 글자 한 글자에 모두 배인 것 같은 느낌이 담겨져 있다. 그의 아내와 다섯 아이들에 대한 애정, 그들 곁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순수한 애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함,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그의 예술혼과 끊임없는 창작의 의욕, 인간의 존엄성과 자신의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 그가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다른 어떤 환자들의 투병기와는 다른 깊이와 간절함이 있는 이 글은 그가 마치 영혼을 담아낸 듯한 생각을 하게 한다.

그는 죽음이 닥쳐온 그 날까지, 병을 알게 된 그 날부터 희망을 잃지 않았다. 희망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것을 가짐으로서 현재의 상황보다는 1%라도 나아지는 듯한 기미가 보일 때야 계속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지, 불치병이자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계속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나 힘든 것이었는데도 그는 점점 나빠져만 가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목발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휠체어를 쓰고, 휠체어가 익숙해질 때쯤이면 말하는 것조차 어려워지며, 나중에는 눈동자로 의사를 전달해야 할 정도로 계속 희망은 희미해져 갔는데도 말이다. 그를 그렇게 웃게 만들고,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서 더 간절한 희망을 가지게 했던 그의 가족, 아내와 아이들의 존재가 오히려 책을 읽을수록 부러워지기까지 하는 대목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놓지 않았던 희망이라는 존재가 이토록 한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놀라웠고, 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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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그렇다면 우리 혈우병 환우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있을까? ‘혈우병’은 한때 불치의 병으로 알려졌다가 난치성 질환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는 ‘완치’에 대한 기대감이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듯 올라오기도 했다. 한낱 희망고문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이미 부정,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마지막 수용 단계까지 모두 거치며 이제는 ‘혈우병’을 병마(病魔)가 아닌 친구로 받아드리고 있는 걸까? “피할 수 없는 것은 즐기라”라는 말이 있듯 혈우병(血友病)의 ‘우(友)’에서 뜻하는 친구가 되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미 혈우병 환우들은 ‘혈우사회’라는 커다란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안은 다양한 시스템과 솔류션이 존재하며 생각보다 꽤 단단한 스스로의 자정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거친 풍파가 몰아치지도 하지만 또 잠시 후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안개가 되어 사라지기도 했다. 한파를 지나 봄이 오고, 흑암을 지나 여명이 오듯 말이다.

우리들에게 노도와 같은 거친 고통이 불어 닥쳐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보자.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이라고..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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