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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 해도, 살기위해 이해해야 하는 한 남자‘책 못 읽는 남자’ 놀랍도록 초연하고 현명했던 사람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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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4  01: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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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면 매우 혼란스럽고 정신적 심리적 고통이 뒤따를 지도 모른다. 아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도 잠시일 뿐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 갈수는 없을 것이다.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 극복될 수는 있지만 이번에 이야기 할 내용은 ‘이해하려해도 이해할 수 없는 병’을 주제로 꺼내본다.

▲ ‘책 못 읽는 남자’ 저자 하워드 엥겔/ 역자 배현/ 출판사 알마/ 출판일 2009.07.27

사람들은 ‘역지사지’라며 상대 입장이 되어보면 그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혈우사회에서의 수많은 이해관계와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야기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해하려해도 이해할 수 없는 신체적 불능 상태가 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왔던 모든 기대와 희망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책 못 읽는 남자(하워드 엥겔 作)>은 평생을 글을 읽고 쓰는 작가로 살아 온 남자이다. 그런데 그에게 운명적인 ‘실독증’이라는 희귀질환이 발생됐다. 이 질환은 문장을 읽거나 쓰는 게 가능하다해도 정작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글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병. 오늘 이 희귀질환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심장은 멈출 수 있어도 책 읽기는 멈출 수 없다.”

“실독증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하늘도 푸르게 보였고 태양도 병원 창문 넘어로 빛났으며 갑자기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실독증은 오직 내가 책에 고개를 처박을 때만 존재했다. 나는 작가다. 더구나 끊임없는 독서가였다. 어떻게 독서를 멈출 수 있겠는가?“

실서증? 실독증? 글을 읽을 수 없게 되는 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의 소개 글에서 ‘실서증 없는 실독증을 가진 남자’라는 말을 보자마자 나는 순간 실서증과 실독증이 어떤 차이를 가진 단어인지에 대해 혼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이 남자의 이야기를 읽기 위해 국어사전을 통해 실서증과 실독증의 각 뜻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실서증’을 가진 사람은 글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손이나 발 같은 감각기관의 문제는 아니다.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받아쓰고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 글 쓰는 행위를 관장하는 대뇌의 국한성 병변에 의해 장애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서증은 대체로 실어증이 수반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을 듣고 이해하는 데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보고 베껴 쓰거나 생각한 것을 쓰는 단순한 ‘쓰는 행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외면적으로 보았을 때 이것이 병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의 저자 하워드 엥겔이 겪게 된 ‘실독증’ 역시 실서증처럼 주변 사람들이 유심하게 관찰하거나 특정 상황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역시 알아챌 만큼 실생활에 문제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실독증은 단어 그대로 독서를 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한다. 흔히 알려져 있는 ‘난독증’의 경우 글을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읽지 못하고 맞춤법을 정확하게 쓰기 힘들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힘들어도 글을 이해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실독증은 뇌의 한 부분이 손상되어 글자를 읽거나 판독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독서 불능증이라고 한다.

알려진 바로는 뇌의 후두엽과 두정엽이 손상되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실독증이 있는 사람은 지적 능력이나 행동 능력에는 이전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한다. 하지만 언어와 관련된 문장이나 기호를 이해 못하게 된다. 즉, 실독증을 가진 사람은 글자를 소리 내 읽을 수는 있으나 그 문장이 나타내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통 일반인들의 경우 좌측 후두엽에 내측에 병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우측 후두엽으로 들어간 시각 정보가 좌측 측두엽의 언어중추로 이동하지 못하면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런 경우에 순수한 실서증 없는 실독증 증세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독증과 실서증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이 책의 저자인 하워드 엥겔의 입장에서, 이 병을 겪고 있는 환자의 입장에서 이것이 어떤 불편함과 아픔, 힘듦으로 다가 오는지를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예를 들어 해외에 나갔을 때가 상상되었다.

얼마 전, 나는 업무상의 이유로 캐나다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나름 영어로 간단한 회화 정도는 한다고 생각하고 떠났던지라 별 생각 없이 그 나라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영어의 압박이 컸다. 그들이 쓰는 언어의 소리와 글자 자체부터가 너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같은 폰트로 여러 문장들이 뒤 섞여 있을 때는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끝맺음되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항을 벗어난 도로에서도 막상 이니셜로만 되어 있는 표지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내가 외국에 나와 있는 이방인이라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가게 될수도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실감하게 된 것이다.

물론, 모든 해외에 나간 이방인들이 이런 낯섦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특히 그 낯섦 중에서도 글자로부터 오는 낯섦에 익숙해지는 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었다. 볼 수 있고, 그것을 그려내라면 똑같이 그려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 잠시 잠깐의 짧은 여행에서 조차 이런 두려움이 있었는데, 저자 하워드 엥겔은 어땠을까? 그가 갑자기 직면해야 했던 것은 잠깐의 여행이 아니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고 이전에도 살아왔던 자신의 일상, 자신을 둘러싼 환경 모든 것이었다는 것, 나는 그것으로부터 하워드가 느꼈을 충격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컸으리라 생각됐다.

“사는 게 그렇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다. 때로는 힘들고 혼란스럽지만 그 다음 날도 일이 쉽게 풀리면 보상이 된다.”

어떤 병은, 사람에 따라서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작은 불편함을 주는 병 하나가 그 사람의 인생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병은 사람을 가려 오지 않고, 상황을 가려 오지 않는 것이기에, 그래서 이런 것은 운명이 아니겠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평범한 일반 사람에게 손가락을 다치거나 손목을 다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몇 달 동안은 치료와 훈련을 해야겠으나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나 운동선수처럼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이 손가락이나 손목을 다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온 인생을 부정당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온 몸을 옥좨는 일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하워드 그가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이 실독증이라는 병 역시 책을 잘 읽을 일이 없고, 읽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는 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을 삶의 전부처럼 생각하고, 늘 책을 읽고, 글을 쓰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글자를 읽고 해독하여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절망스러운 일이었을까?

책을 읽어가며 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놀랐다. 물론, 병을 알게 된 이후, 그런 태도를 가지기까지 그 모든 자신의 심정을 이 책에 담아 적을 때까지 그의 내면에서는 결코 그렇게 담담한 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받아들이고, 그것에 분노하거나 부정하는 것에 시간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그저 재활에 집중하는 데 애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가 수많은 책을 읽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자체가 가진 원래의 성품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 병에 걸린 이후로도 자신의 병에 대해 끊임없이 기록했고, 자신이 썼지만 읽을 수 없는 책을 출간해왔다. 그리고 본래 직업이었던 미스테리 소설의 작가 일도 계속 하고 있다고 한다.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누군가에게 병은 벗어날 수 없는 아픔이자 고통, 운명, 삶을 포기할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 또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하워드 엥겔, 그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체념과는 다른, 자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보듬어안는 포용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매우 놀라울 만큼 초연함과 현명함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우리 혈우사회 속에서도 어쩌면 이런 성품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혈우사회는 건강하게 지켜지는 지도 모른다. 자신의 눈높이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상대를 위해 탄력적인 눈높이를 지닌 이들. 이번 이야기와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해하려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해하며 도와 함께 부비고 살아가는 삶”이라는 포괄적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생각해 볼 이야기라 생각된다.

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이제 막 시작되는 2019년을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해로, 모두가 기뻐하는 한 해로 만들어 가보면 좋겠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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