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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환우의 부모 입장을 생각해 보자혈우병과 같은 반성유전을 다룬 책 ‘도키오’를 읽고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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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2  14: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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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때라도 미래를 느낄 수 있어요. 아무리 짧은 인생이라도 설사 순간일지라도 살아 있다는 실감만 있으면 미래는 있는 거예요.”

혈우병을 가지고 있는 환우들에게 유전성 희귀질환을 이야기하다보면 대체로 ‘희망’과 ‘용기’ 그리고 ‘극복’이라는 주제를 놓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은 어차피 질환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현실즉시라는 측면에서 객관적인 시선을 직시(直視)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이런 건 질환을 갖고 있지 않은 타인의 입장, 특히나 환우들은 자신의 부모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환우들이 남들에게 자신의 질환을 이해시키려는 것보다 먼저 자신의 부모입장을 이해한 뒤에 타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이 같은 측면에서 조금은 냉정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거, 나는 희귀질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일반인이 생각해왔던 삶일 것이다. 가족이나 지인이 희귀질환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월급을 받아 살아가는 전형적인 일반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이런 것이 ‘당연한 삶’이라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때로는 행복해 하면서 그렇게 삶의 시간을 보내온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갖게 됐을 때, 나는 나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나와 꼭 닮은 아이’를 생각해봤다. 우리 아이는 ‘나를 닮았을까?’ ‘엄마를 닮았을까?’ ‘아빠와 엄마를 반반씩 닮았으면 좋겠다’ ‘어디를 닮았을까?’ ‘공부 잘하는 아이로 자랄까?’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일까?’ 온갖 상상이 머릿속에서 나래를 펼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실제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녹록한 일은 아니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아이가 공부를 잘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건강하지 않거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또 다른 내 인생의 업보이자 죄’와 같은 고통과 슬픔만이 가득한 부모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부모들은 나의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어쩌면 자식을 낳고 기른다는 것은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에 나의 인생을 걸어보는 일 같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나름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 도키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역자 오근영 /출판사 창해 /출판일 2008.10.17

내가 이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 이렇게 아이를 낳고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이들에게 <도키오(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역자 오근영/ 창해 출판 2008.10.17.)>이라는 소설은 자신의 유전자를 받아 태어날 아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태어날 내 아이가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유전적인 질환으로 인해서 태어난 이후에도 내내 고통에 시달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쉽게 그러겠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내 아이가 나를 원망하면서 “왜 태어나게 했냐”고 마음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며, 두 번째로는 남과는 다른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느끼게 될 타인의 시선, 경제적 부담, 그리고 아이를 잃었을 때 느낄 엄청난 절망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면, 그런 삶을 줄 바에야 아예 주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나는 아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으로 17살에 삶을 마감하게 되는 도키오라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23살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도키오가 이 병에 걸리게 된 것은 태어나는 순간에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잔인한 ‘유전의 확률’게임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반성유전인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의 보인자였다. 도키오의 어머니와 아버지 다쿠미가 결혼하게 되면서 아이의 성별에 따라 병의 유무가 결정되는 것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으나 태어날 아이가 남자일지 여자일지 그리고 반드시 유전질환으로 태어날지 그들은 확신할 수 없었다.

도키오가 앓고 있는 희귀병, 그 병은 뇌신경에 장애를 일으켜 심한 퇴행 현상을 보이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도키오는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순간이 없었고,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 되어 죽음 앞에 놓여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보인자였던 도키오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에 다쿠미와 결혼도, 임신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됐다. 그러나 그 이후 도키오를 임신하게 되었을 때에도 ‘중절’할 것인가를 놓고 남편 다쿠미와 크게 갈등을 빚는다. 둘 중 어느 쪽도 ‘낳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없는 상황, 책을 읽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증의 유전질환으로 태어나서 고통 속에 살 것이며, 병이 나을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는 것이 맞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유전자를 물려주고 직접 키워야 하는 부모가 내려야 하는 이런 결정은 무척 힘든 과정일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 책 속에서는 그런 부모로서의 다쿠미와 도키오 어머니의 고뇌가 잘 담겨져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이라는 병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질환이라고 한다. 하지만 혈우병과 같은 반성유전질환 이야기이다. 반성유전에 의한 희귀병 사례는 매우 많이 볼 수 있다. 성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로서 특히 X염색체 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도키오 어머니가 보인자이기에 남자로 태어난 도키오가 발병하게 된 것이다. 도키오 어머니는 보인자이기 때문에 정상인이었지만 많은 이들은 자신이 보인자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반성유전인 혈우병의 유전양상 ⓒ코헴회 홈페이지

나는 그 이전까지 희귀병의 발병 원인이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새삼 도키오처럼 유전적인 이유로 인해 발병한 경우에 환자의 부모와 가족들이 받을 상처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이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니며, 단지 병의 보인자라는 것만으로 결혼하지 않거나 또는 결혼 후에라도 아이의 부모가 되는 기회를 완전히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보인자로서, 자신의 유전자가 이어져 아이에게 병의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병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태어난 생명이 가진 존귀함에 대해 존중하고 일생을 보내는 것이 옳은가? 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나는 이 안타까운 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잠시 고민해보았다. 나의 아이가, 내가 가진 유전자로 인해, 희귀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면, 나는 과연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아이에게 생명을 줄 용기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도키오! 아사쿠사 놀이공원에서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삶은 병이 있다고 해서 불행하고 축복받지 못한 삶을 이어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병이 없는 삶이라 해서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 나는 문득 그런 질문을 던져 보게 되었다. 희귀병이라는 것이, 더군다나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잔인한 운명’같은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나 자신을 문득 이 책을 읽으며 발견하고, 또 그런 나 자신의 생각에 놀랐기 때문이다.

나는 의도치 않은 사이에 병이 있는 사람과 병이 없는 나 자신을 구분 짓고, 내가 마치 그 사람들에 비해 많은 것을 축복받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과 우월감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처럼 쥐어진 병. 하지만 도키오가 그런 병을 받아들이고, 또 자신의 삶에 대해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리석은 나의 생각을 너무나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철없던 23살 청년이던 다쿠미가 어떻게 도키오라는 예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가고, 자신의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도키오가 행복했노라고 그렇게 믿을 것이다.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우리 혈우사회에서 환우들의 활동은 ‘매우 세련되고 능동적이고 싶어한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대의원회를 통해 환우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민주주의적 운영방식을 갖고 있는데 각 지방지회를 운영하면서 전국의 환우들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8개지회로 나눠 회장을 포함해 19명의 대의원들이 있고 이외에 3명의 감사가 있다. 총 22명의 임원중에서 1명의 대의원과 2명의 감사는 환우의 부모이다. 반면에 한국혈우재단은 이사장을 포함한 13명의 임원중 환우 부모는 아쉽게도 찾아 볼 수 없고 환우이면서 의사인 이사가 1명 포함되어 있다. 조금 더 성숙한 혈우사회의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한다면 코헴회나 혈우재단에서 부모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자리를 늘려보는 것은 어떨까. 세계혈우연맹(WFH)의 회장도 환우의 부모인데 연맹에서 환우 부모를 회장을 세운 이유는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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