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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환우들의 ‘두 가지’ 이름천재작가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보며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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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7  03: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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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우병 환우라는 이름과, ‘일반인’이라는 이름으로 …

전세계인구수는 얼마나 될까? 월드메터에 따르면 오늘까지 총 인구수는 76억3천8백만 명이 넘는다. 이중에서 희귀질환 환우의 수는 얼마나 될까? 희귀병은 말 그대로 매우 드문 병이이다. 8천종이 넘는다고 하며 앞으로도 새로운 질환은 계속 늘어난다. 대부분 희귀병은 치료받기가 어려워 삶이 고통스럽고 치료비 또한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혈우병은 60년대 말부터 치료가 시작됐고 70년에 들어서면서 치료제가 생산되기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혈우병 치료제가 생산되기 시작한지 50년 정도 흘렀다. 지금은 완치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가 생각하는 혈우병은 어떠한가? 많은 이들은 아직 혈우병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희귀질환 혈우병이라고 하면 대중들은 부담을 느끼곤 한다. 그런 이유일지는 모르지만 현재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환우들이 자신의 병을 직장 동료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 한다.

희귀질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거나 자신의 업무처리 능력을 과소평가 받을 수 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과거에 소아마비를 잠시 앓았다’고 말하는 환우들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혈우병이 소아마비보다 대중적이지 못하고 올바르게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혈우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레드타이챌린지 캠페인처럼 올바르게 혈우병을 알리는 방법은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이 시대에 ‘신체장애’라는 건, 더 이상 큰 걸림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감추고 있던 자신의 질환을 이야기하며 보다 대중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것은 혈우병 환우들에게는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 긴급한 출혈이 발생되면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늘어 날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의식이 없을 때, 주변 지인들은 나를 어느 병원으로 옮겨야 하고 어떤 치료를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혈우병인 자신의 삶과, 혈우병이 아닌 척해야 하는 삶을 나누어 살지 말자.

특히 최근에 혈우병 환우들의 사회활동 영향력을 보면 사회활동이나 전문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질환 때문에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감추고 있었다면 이제 그 벽을 스스로 넘어보자.

오늘 이야기는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한 사람. 그의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 1979년 아내인 진 세버그가 약물중독으로 사망하였는데 이때 그는 아내의 죽음에 미연방수사국(FBI)가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인 1980년 12월 2일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사망하고 유고작인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Vie et mort d'Emile Ajar)》이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으로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로맹 가리 [Romain Gary] (두산백과)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공쿠르 상, 한 작가에게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이 상을 유일하게 두 번 수상한 천재작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맹 가리이며, 또 에밀 아자르이기도 했다. 1914년 모스크바 태생, 14세에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2차 세계대전에서 공을 세워 외교관에 오른 뒤 42세에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타고 프랑스 문단의 일약 스타로 떠오른 그는 1980년 갑작스러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외교관, 전쟁 영웅, 문학천재, 아름다운 여배우와의 결혼, 그의 이름 앞에 따라오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으며, 끝은 너무나 슬펐다. 그의 묘지에 남은 것은 각기 다른 이름으로 출판된 몇 권의 소설책뿐이었고 그의 유서에는 이런 말이 쓰여져 있었다.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는 같은 사람이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

간혹, 책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작가에게 관심을 가져 책을 찾아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에 대해 알았고, 그의 인생이 궁금했으며, 그래서 그가 인생을 표현했다고 말하는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고루한 소설을 내놓는 늙은 작가, 자신에게 내려진 평단의 평가와 외면한 대중 앞에, 에밀 아자르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소설을 출판한다. 그리고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다. 우연히 그 작품이 로맹가리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린다 노엘은 그의 작품이라고 말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고, 누구도 로맹가리를 칭송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통쾌했을지 상상해봐, 나의 작가 인생 전체에서 그것은 가장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은 그가 마지막으로 외치고 싶은 자신의 생명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다른 필명이었을 뿐인데 어떻게 노새하고 고루한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평에서 천재 신예 작가의 탄생이라는 환호로 바뀔 수가 있는가, 비소 섞인 웃음과 씁쓸한 그의 인생을 떠올리며 읽는 소설은, 매우 암울하고, 슬펐으며, 왠지 뭉클했다. 그러나 결국 두 가지 이름으로 살았던 그는 행복했을까? 그 답변은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답변이 된 것 같다. 차라리 하나의 이름으로 자신의 역경을 넘어섰더라면....

그의 작품을 살펴보자.

# # #

▲ 저자 로맹 가리/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18.05.10/ 역자 용경식

10살 소년 모하메드, 모모는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유태인 로자 아주머니 밑에서 성장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 건물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로자 아줌마는 육중한 몸을 지니고 있었고, 아줌마 집에는 모모를 제외하고도 예닐곱 명쯤 되는 아이가 더 있었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모두 달랐는데 창녀 일을 하고 있었기에 아이를 키울 수 없어 로자 아주머니에게 맡겨 두곤 했다. 모모의 어머니도 창녀였고, 모모의 아버지는 정신병자로 어머니를 죽였기에 모모를 키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자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내쫒거나, 핍박한 것은 아니었다. 송금이 끊겨도 그대로 두었다.

모모는 엄마아빠를 왜 떠나야 하는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고, 유일하게 진찰을 위해 방문하던 카츠 선생님 집에 있던 돛배를 보며, 저 배를 타고 자유롭게 대양으로 나가는 꿈을 꾸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런 잠시간의 평화도 모모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는지, 로자 아주머니의 머리에는 큰 이상이 왔고 아줌마와 헤어져 어디로 갈지 모르는 자신의 인생 앞에서 모모는 병원에서 죽기 싫다는 아줌마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카츠 선생님께 절규하기 시작한다.

참 이상한 소설이었다. 시종일관 모모의 삶도, 모모와 함께 살고 있던 로자 아줌마네 아이들의 삶도, 하층민, 버려진 아이들의 삶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왜 모모가 내뱉는 한 마디의 말에 어른이 된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의 눈에서 바라보고, 아이의 입으로 나온 말은, 내가 이렇게나 계산하고, 이치와 이목에 찌든 어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모모가 로자 아줌마가 자신들을 보살펴주고 사랑해준 것이 아무런 대가 없이 하는 일이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매월 말 받는 우편환으로 ‘돌봐주는 대가’를 받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세상에 태어나 가장 슬픈 일이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랬다. 나에겐 대가를 받는 로자 아줌마가 당연한 것이고, 모모에게는 그 돈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 같아서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타인이 그것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로자 아줌마는 돈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모와 다른 아이들이 충분히 느낄 만큼의 사랑을 준 좋은 사람이었고 이득과 차별과 편견 없이 자신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모는 너무나 순수했다. 그리고 그것을 의아해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는 나 역시 모모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어른들과 별다를 것 없는 세상에 찌든 한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어떠한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내가 가진 편견대로, 사회경제적 잣대에 따라, 마음대로 평가하고 있지는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모에게 돈을 건네는 사람의 부유함을 모모가 그저 받아들이기를, 그것이 모모 너에게 편한 인생이니 그냥 순응하라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과연 그것이 진정 모모가 원하는 삶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건강하게 해줘 다 같이 다시 살게 해달라는 소원밖에는 아무것도 빌지 않겠지만 말이다. 로자 아줌마도, 모모도, 누구나 인정할만한 삶을 살다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고, 서로를 사랑했기에, 자신의 삶도 사랑하고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우리 어른들이 모모보다 더 사랑을 모르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체 살아가고 있느니 말이다.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우리는 언제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산다고 말하고, 소원을 말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짧던 길던 자신의 시간이나 에너지를 양보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포기한 것이 나중에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일수도 있다. 같이 할 시간이 서서히 줄어가는 부모님,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조차 잘 하지 않는 친구와 지인들, 그렇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모두 포기한 체,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무미건조해져버린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가족애, 우애, 이성애, 그것들을 밀려나게 만든 것은 출세, 진급, 더 많은 급여, 더 높은 명예와 같은 현실적인 과제들이다. 과연 나의, 지금의 선택은 한 치의 후회도 없을 옳은 선택인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소중한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 지켜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함께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내 인생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모에겐 로자 아줌마가 가장 중요했던 것처럼, 나는 내게 가장 소중하고 사랑할만한 것을 사랑하는 데에 내 인생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오늘도 ‘내 앞의 생’을 그렇게 바라본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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