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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사회의 상상할 수 없는 병 ‘아판타시아’‘나’를 이해 못하는 ‘당신’, ‘당신’을 이해 못하는 ‘나’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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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8  0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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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기 다른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 삶 속에 주인공은 바로 자신들이다. 수십 억 명의 주인공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자기주장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를 설득하기도 한다. 또 어느 때는 상대를 이해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집단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다보면 가끔 중요한 착각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남도 알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일어나는 주관적 착각이다. 다시말해서 “내가 보기에 이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야!”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저 “별거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보기엔 이건 아무런 문제가 없어! 순리대로 움직이는 것이니까”라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남이 보기엔 “나라가 망하겠는걸!”이라고까지 생각될만한 ‘큰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서로의 착각들이 잦으면 깊은 오해를 낳게 되고 오해가 깊어지면 심각한 갈등이 발생된다.

우리 혈우사회 속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우리는 ‘혈우병’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충 얼버무리더라도 그 아픔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출혈이 되면 의료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 즉 “출혈된 것 같다”고 말하면 “주사 맞아야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혈우사회 밖에서 “출혈된 것 같다”라고 말하면 ‘안약’을 건네 받을 지도 모른다. ‘출혈’을 ‘충혈’로 이해하고 전혀 엉뚱한 답변을 듣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하는 희귀질환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당신에게는 너무 당연하지만, 남에게는 전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시사해준다.

“첫 키스, 결혼식 날,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검은 빈 화면만 보여요. 꿈을 꾼 적도 없어요. “

유명한 신경학자 중 한 명이었던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저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자신이 의사로서 만났던 수많은 정신과적, 신경학적 질병을 가지고 있던 환자와의 일화를 기록했다. 그의 책에 서술된 ‘그가 만난 환자들’은 거의 모두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그의 상담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상담실 문을 나설 때 역시 그들의 병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전혀 어떤 병을 앓고 있다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평온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나서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세상의 끝까지 자신을 내몰아붙이다 못해 의사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여 그의 도움을 청하고 온 환자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오래 전에 읽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지극히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책을 읽다보니 왠지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보기 시작했다가 결국 그 병의 아픔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해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환자들을 기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책 속에 소개되고 있는 질환들은 하나같이 잘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질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 ‘읽다만 책’으로 남겨질 때쯤, 우연히 페이스 북을 뒤적이다가 ‘아판타시아’라는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예전에 끝까지 읽지 못했던 책에서 ‘아내를 볼 때마다 모자처럼 착각해 계속 벗기려고만 하는 이상한 남편’이 겪고 있는 이상한 질병을 다시 한 번 조명해 보게 됐다.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저자 올리버 색스/ 역자 조석현/ 출판사 알마/ 출판일 2016.08.17

읽어 내려갈수록 이것은 내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질환’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자신을 보며 외로움을 느끼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질병 중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 책 중에 언급되는 ‘아판타시아’는 ‘A’+‘Phantasia’의 합성어로, ‘A’는 ‘without’, 즉 ‘~가 없는’이라는 뜻이며, ‘Phantasia’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신적 표현이 우리에게 제공되는 힘’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용어라고 한다. 즉 말 그대로 정신적 시각을 잃은 증세를 뜻하고 있다. ‘일상과학 위키독’에 따르면, 이 병의 원인은 뇌의 일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이 생기면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전 세계 인구의 2.5% 정도가 겪고 있는 병이다. 이 수치는 제 세계 75억 명의 인구 중 2억 가량 되는 수치이다. 절대 적은 수가 아니라는 것.

이 질환은 환자 스스로 자신이 겪고 있는 것이 질병이라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자각하기 어렵다. 흔히 영화나 소설로 잘 만들어지는 ‘안면인식장애’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안면인식장애 같은 안면실인증, 시각실인증의 경우 시각적으로 유입된 정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통합시키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자각하는 질병으로 ‘아판타시아’와 아주 유사하게 보인다.

그러나 ‘안면인식장애’와 같은 시각실인증은 편두엽 아래 방추상회의 다중연합영역이 손상됨으로서 발생한다는 명확한 원인이 있는 반면, ‘아판타시아’는 명확하게 규명된 게 없다. 사실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에 이를 질환으로 인식하고 치료법을 강구하기에도 애매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가장 잔인할 수 있는 병,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는 병, 이 병은 잔인한 불치병인가? 아니면 그저 무시해도 되는 경증질환일 뿐일까?

내가 이 병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인터넷 브라우저 ‘파이어 폭스’를 개발한 블레이크 로스라는 인물이 자신의 페이스 북에 남긴 글 때문이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가지고 있었으나 가지고 있는지 몰랐던 자신의 희귀병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자신의 병은 ‘상상한 것을 그려내지 못하는 병’. 바로 ‘아판타시아’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병이었다. 그는 잠이 오지 않을 때 양을 세는 상상을 하면 잠이 잘 온다는 동화같은 이야기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양을 상상하면서 잠드는 것이 아닌 규칙적인 리듬으로 동일한 생각과 행동을 할 경우 쉽게 뇌가 안식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은유한 것일 뿐이라고 30년이 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마치 이가 빠진 빗 같기도 하고 이상한 네 발 달린 동물을 그려놓고 “저는 3살 때부터 고양이 개 새 컵케이크 괴물을 모두 이렇게 그렸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평소에도 상상력이 매우 풍부해서 무엇이든 상상하길 좋아해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이상한 그림이 어떻게 새이자 개, 고양이, 혹은 컵케이크라고 상상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아판타시아’라는 희귀한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자 ‘아판타시아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을 서서히 이해할 수 있었다.

즉, 그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그려내는 능력이 없다.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서든 말이다. 예쁜 새 소리를 듣고 저 새가 어떤 종류의 새이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그들의 세계, 삶 안에는 상상 그 이하의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그녀는 장애인이지만 그것이 겉으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신체가 마비되지도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는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가끔 거짓말쟁이, 혹은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아판타시아’ 상상할 수 없고, 그것을 그려낼 수 없는 병을 두고, 누군가는 ‘그것이 어떻게 병이라는 거야? 그건 살아가는 데 아무 상관없는 것이잖아. 세상에는 병으로 인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겪고, 또 생명을 위협받는 사람이 더 많아.’라고 할지 모른다.

이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힘들다고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상상할 수 없고 그려낼 수 없는 것이 가볍게 생각할만한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스럽게 떠오를 법한 모든 것들이 ‘아판다시아’ 환자들에게는 기존의 정보를 끌어내 퍼즐을 맞추듯 이성적으로 판단해야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판타시아 환자들은 개개인의 이해력과 해석에 따라 평범하지 않은 답을 내 놓기도 한다. 이런 것은 그 어떤 불치병보다 고통스럽지 않다고 할 수 없다.

▲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저 사람이 좀 엉뚱해’ 또는 ‘사차원이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사자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고 그 이유를 상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에 가슴만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기준에 의해 병의 경중을 나누고, 어떤 질병이 더 힘든 것이라고 줄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 없듯이 병의 경중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희귀질환에 대해 찾아보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우리는 어떤 질환이든 그것을 똑같이 앓지 않는다면 100%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서로 인정해야하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서로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서 보듬어 안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고 손을 내밀고 도와야 한다. 바로 이것이 ‘아판타시아’라는 이 질병을 알아가면서 깜빡 잊고 있던 ‘존중’과 ‘이해’의 의미를 다시한번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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