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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픈 것도 죄인가 봅니다”…‘돌로 변해가는’ 희귀 질환시집 ‘아버지 울었습니다’를 읽고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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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1  02: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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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사람보다 못한 것이 없는데 왜 무시당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불만과 불평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주변에 모든 것이 불공평해 보이고 싸워야할 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 보지 못했던 이면의 모습은 없는 걸까? 내가 경솔했던 것은 없었나? 지금 우리 혈우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이미 당신에게 빚이 있다.” 이런 빚진 자의 마음가짐을 갖고서 상대를 바라보면 어떨까?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전신이 돌로 변해가는’ 희귀한 질환을 앓고 있었던 박진석 저자의 <아버지 울었습니다>라는 시집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치 비수와 같이 가슴을 찌른다. 오래간만에 눈시울을 뜨거워졌던 책을 여러분과 함께 펼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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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픈 것도 죄인가 봅니다. 칠순이 다 된 아버지께서 아직도 청소부로 일하시는데 이 자식은 서른이 넘었는데도 오로지 병상에만 누워 있으니 이 모든게 아무리 운명이라 해도 불효라는 죄를 짓게 되네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몸 안에 갇힌 마음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가 온 몸이 돌처럼 굳어가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병인 ‘연소성 피부 근염에 의한 범발성 석회화증’이라는 이름조차 어려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으니까. 한창 뛰어놀 체력이 넘칠 나이, 하지만 그와 부모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름조차 어려운 병에 걸려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모든 인생의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날이 온 때였다.

가까스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지만 이내 걷는 것조차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세상은 그가 누운 방 하나에 격리되었다. 의사는 기껏해야 20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고, 하루 종일 꼼짝도 하지 못한 체, 효자손을 가지고 놀아야 하는 삶, 그렇게 10대, 20대, 30대를 꼬박 보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이후로 40년, 2016년 그가 행복하지만 자유롭지 못했던 그 삶을 마감했던 날까지, 그는 40년을 병마와 싸우며 살았다. 그의 옆에서 형제는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예쁜 조카까지 생겼지만, 그는 여전히 처음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초등학교 시절처럼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희귀병 환자로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닌,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 하나가 그를 움직이게 했고 그는 시인이 되었다.

옆으로 몸을 뉘여 키보드를 볼펜 끝으로 하나하나 눌러, 한 글자씩 시를 써 내려가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고, 밥 한술 먹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어 평생을 칠순의 노부모에게 의지한 체 살아야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시 한 단어 글자마다 자신이 담아내고 싶은 모든 세상을 향한 외침을 모두 담아 썼을 것이라고 나는 그런 생각이 그의 소박한 시 한 구를 읽으면서 생각되었다.

그의 부모와 자신에게, 그 삶이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떠올려보았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이 쉽사리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것이겠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저의 밥상에는 고등어구이가 올라왔습니다. 몸통 가진 살찐 부분이 노르스름하게, 고소하게 구워진 채로 말입니다. 아마 점심에는 몸통 아랫부분이, 저녁에는 꼬리가 올라올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고등어구이는 맛 없는 머리만 빼고 제 밥상에 다 올라왔습니다.”

어릴 적, 나의 어머니 아버지도 그러셨던 기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생선구이를 좋아하던 나는 어릴 적, 큰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그 이후로 한참을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거나, 어머니가 정성 들여 만들어주셨던 닭백숙도 먹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먹는 둥 마는 둥 하곤 하던 철없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어머니는 그런 나의 귀찮음을 타박하고 나무라시면서도 하나하나 뼈를 달라 내 국그릇에 넣어주셨고 나는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꿀떡꿀떡 떠먹곤 했다.

그때는 당연히 엄마가 발라주시는 생선살이 맛있다는 생각만 하곤 했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내 자식에게 생선살을 발라줘야 하는 나이가 되어보니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철없는 자식이었구나 하고 가슴이 아파오곤 했다. 본인도 그 달달한 고기가 어찌 드시고 싶으시지 않아서, 어찌 귀찮지 않아서 그러셨겠는가마는, 자식이라는 존재가 부모에게 으레 그러하듯 무엇을 해주어도 늘 무언가 더 해주고 싶고, 늘 모자란 것처럼 느껴지는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 아버지 울었습니다/ 저자 박진식 시인/ 출판사 명상/ 출판일 2003.03.25

이 시집을 읽는 내내, 시 하나하나가 그가 부모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스러움, 사랑을 얼마나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인지 떠올리게 했다. 그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의 부모님 역시 노년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갔을 것인데, 건강하게 노년의 여유로움을 누리실 세도 없이 칠순이 넘어가면서까지 그를 건사하겠다고 화장품 외판원이며, 연탄 배달원 막노동, 환경 미화원까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보살피셨다고 한다.

그런 그의 부모님의 사랑, 그의 마음이 시 곳곳에 담겨졌고 나는 마치 그들을 옆에서 지켜봐 온 사람마냥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이 저리고 아파오는 것 같았다.

본인 새참으로 드셔야 할 우유 하나를 아직도 마흔이 넘은 아들 먹으라고 주머니에 챙겨오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 분에 비해 한참을 덜 산 내가 가늠하고 이해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깊은 사랑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천륜(天倫)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남들에게는 희귀병에 걸린 장애를 가진 짐 덩이 같은 자식 같아 보여도 그의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아직 학교를 마치고 배고프다며 집으로 달려오던 까까머리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마도 그렇게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런 그의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았으니 당연히 책임을 지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혹은 책에도 나온, 그에게 옥중 편지를 보냈던 한 죄수처럼,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무거운 형량을 감내하고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그가 주었다고, 고맙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또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보고 “그래, 나는 저 사람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잖아, 혈우병이라는 게 저렇게 온 몸이 굳어가는 병도 아니고, 나의 부모님에게 신세를 지면서까지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삶도 아잖아.”라고 생각하다보니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그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상처를 주는 말이고, 생각이었는지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된다.

비록 고칠 수 없는 병마와 싸우고 있고, 하루하루를 그로 인한 아픔과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희망을 줄만큼 비참한 인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던 그의 말은, 그가 얼마나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살아가고 싶어했던 사람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쉽게 동정하고, 나의 삶과 그의 삶을 비교하는 듯한 생각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주의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2016년, 그토록 간절하고 당당하고 싶어했던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처럼, 그의 책은 아직도 남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보여준 삶에 대한 강한 애착과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느끼며 나의 인생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뜨거운 가슴이 있다.
주변을 살펴보고 누군가를 한번 꼭 안아보면 어떨까?
부모이든 자식이든 아니면 눈 흘기며 미워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다. 물질로 살수 없는 커다란 보상을 마음에 얻게 될지도 모른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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