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박천욱 칼럼
치료 포기하고 떠난 여행,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거야”희귀 척추암…살 가능성 ‘희박’
박천욱 대표  |  china69@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3.15  10:46:5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삶에 대한 희망을 놓고 자신과 싸우는 이들이 있다. 특히 희귀질환을 갖고 있는 이들은 병마와 전면전을 펼친다. 삶의 놓고서 말이다. 그들은 생사의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이기느냐 지느냐.” 이 문제는 사활의 갈림길이다. 조금 더 편안해 보고자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뿐이다.

지금 우리 혈우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의료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완치를 눈앞에 둔 시점에 서 있지 않는가? 정맥주사의 횟수가 줄어들고 내원횟수가 줄어들고, 심지어 1회 주사로 완치가 된다는 유전자 치료도 우리나라에서 임상이 시작됐다. 혈우사회에 중차대한 이슈가 급부상되는 시점이라는 걸 놓쳐서는 안 된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시점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주변의 조언자에 귀를 기울이고 ‘모두에게 중요한 일’, ‘이 시대에 중요한 일’, ‘환자에게 중요한 일’에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치료환경을 뒤돌아보고, 환자는 환자로써 무엇이 소중한지를 다시한번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 #

얼마 전, 마음이 따뜻한 이야기를 우연히 기사로 보게 되었다. 성균관대 앞을 84년부터 오랫동안 지켜왔던 책방 ‘풀무질’이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는데 몇몇 젊은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책방을 인수해서 계속 명맥을 이어나가기로 했다는 기사였다.

책방, 점점 쓰지 않게 되어가는 단어 중에 그토록 정겨운 단어가 또 있을까 싶었다. 서점, 책방, 너도나도 전자책으로 간편하게 스마트폰을 통해 원하는 책을 보는 시대이다. 그도 읽기 싫으면 요약본과 기사들로 책의 내용만 효율적으로 알 수 있으니 이제 누가 종이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나, 싶은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책방 안에 아무렇게나 쌓여있어 무슨 책이 어떻게 정리되어있는지도 모를 그 책방의 향수가 가끔 사무치게 그리워지고는 한다.

책장에 꽂히고, 바닥에 쌓여있던 책을 가끔 햇볕이 좋은 날, 옥상이나 너른 곳에 펼쳐 내놓고 햇빛을 쏘여 주면서 곰팡이가 슬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요즘 세대들은 알고나 있을까? 나 어릴 적에는 으레 날이 좋은 봄이 되면 겨울 내내 케케묵은 냄새가 베인 것 같은 책장 안에 책을 다 꺼내어 마당에 널어놓곤 했다. 그렇게 널어 말린 책은 오래되어 누렇게 변해 가지만 햇볕을 머금어 보송한 냄새가 나는 것이 퍽 좋았다.

그런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 ‘풀무질’이 사라지지 않도록 힘을 보탠 분들은 그런 생각이 들었으리라. 누구나 돈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망할 것이라고 해도 작은 독립출판사를 열고 서점을 아직도 운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처럼 분명 변해 가는 시대 속에서도 누군가는 사라져가는 책방과 오래된 책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기뻤다.

내가 이번에 읽게 된 부부의 이야기는 그렇게 잊혀져가는 책방과 책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정도선, 박진희 이 부부의 운명적인 책방에서의 만남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점에서 근무하며 손님들에게 절판된 도서를 찾고 있던 정도선 씨,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나 그가 애타게 찾던 절판된 책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박진희 씨, 이제는 더 이상 인쇄하지 않아 예전에 인쇄된 책만이 남아있는 절판도서와 이토록 어울리는 만남이 있을까? 아마 그 순간 정도선 씨는 자신이 찾고 있고,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던 그 책을 가진 여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는 찾을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영화 같은 만남으로 결혼까지 이른 부부는 둘이 함께 책을 써 출간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함께 쓴 책은 언제나 함께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이별을 준비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늘 찾아오기에 가장 쉽고 만만하게 생각되는 ‘내일’. 그러나 모두에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일이 아닌 ‘오늘’ 더 사랑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바라봐야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하고 있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저자 정도선 박진희/ 출판사 도서출판마음의숲/ 살기 위해 ‘치료’가 아닌 ‘세계여행’을 선택한 부부의 오늘 더 행복한 이야기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줄 알았다. 2년간의 뜨거운 연애 기간을 지나고 결혼하게 되었을 때, 이제는 부부로서, 때로는 추하고 미운 모습도 보이고 싸워도 가면서 그렇게 오래도록 같이 늙어 갈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좋아야 할 신혼, 박진희 씨는 자신이 희귀 척추암이라는 병에 걸려 살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시작된 6개월의 세계 여행, 박진희 씨는 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삶이 끝나는 날을 눈물로 지새우며 보내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남편인 정도선 씨는 사직서를 회사에 제출하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여행 가자.’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세계여행’ 가고 싶은 데로, 바람이 흘러가고 마음이 이끌리는 데로 가는 여행, 모아놓은 돈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막상 여행을 가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지낼지도 정해지지 않은 여행,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에게 남은 얼마 안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정도선 씨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없고 또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세상을 보는 것’으로 채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박진희 씨는 지금 치료를 당장 받지 않는다면 여행을 미처 마치지도 못한 체, 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치료를 거부하고 여행을 나서게 된다. 누가 보아도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는 여행, 무모함, 하지만 운명처럼 만나 사랑한 부부에게 이토록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만하면 됐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 이제 여행 그만하고 돌아가자. 아니 왜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여행을 계속하려는 거야. 나중에 또 오면 되잖아!”

“이번이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르잖아.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 안타까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나 역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멀어져가는 활주로를 보며 문득 눈물이 날만큼 아쉬웠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기에 언제 다시 올까?’ ‘다시 오면 되지 뭐’라고 너무나 쉽게 말하는 지인을 향해 ‘그래, 다시 올 수 있어’라고 말하고 웃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시 갔던 여행지는 지금까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언제나 너무 좋았던 곳과의 만남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는 듯이 기회가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가기 힘들기에 그 곳은 나의 추억 속에 더욱 아련하고 가고 싶은 추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련함을 간직할 수 있는 것 역시 내가 아직은 내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을 모르는,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진희 씨처럼 나의 죽음이 다가올 날을 알 수 있고, 매일 계속되는 통증으로 그것을 시계 알람처럼 자각해야 한다면, 나는 과연 ‘다시 올 수 있어.’ 라는 말에 ‘응 다시 오자.’ 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너무나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부부, 사직서를 내고 훌쩍 떠나는 세계여행, 누군가는 이 책을 아주 로맨틱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여행을 마들고 싶어 한 부부의 바람이 있을 뿐, 그녀가 앓고 있는 희귀 척수암은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병이 아니다.

처음엔 단순한 허리통증, 디스크로 오인 받는다. 하지만 굉장히 희귀하게 발생한다. 암은 천천히 척수를 지나가는 신경을 압박하면서 자라난다. 암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데 요통이 가장 흔하고, 점점 통증의 범위는 전신으로 퍼진다.

부감각, 저린 느낌, 온도에 대한 감각저하, 배뇨, 배변조절의 문제, 척수는 우리 몸에서 몸의 균형과 모든 장기를 지나가는 중요한 부위이기에 그 증상은 광범위하며 예상보다 고통스럽다. 그런 몸으로, 일반 사람들도 어렵고 힘들법한 세계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박진희 씨와 정도선 씨를 움직이던 것은, 그런 극심한 통증마저 이겨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강한 애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부부는 여행에서 돌아와, 지금 청주 한 자락에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만났던 날의 운명처럼, 그들의 인생처럼,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니 오늘을 행복하게 지내자는 그 말은, 너무나 강한 그들의 마음과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 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우리는 분노의 세상에 살고 있는가?”
“코헴, 정말 쓸 데가 있는 걸까?”
“세상을 아름답게 할 기적, 그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가?”
민들레처럼 아주 작은 것을 소중히 바라보는 마음
“행복을 바라는 혈우사회인들에게”
“기적, 아주 작은 다름부터 시작”
혈우병사회의 다문화가정을 살펴보다
혈우사회, ‘호로비츠를 위하여’
나를 바라보며 나를 바로세우는 것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을 보며, 떠오르는 ‘공동 의존자 더 이상은 없다’
혈우병 환우들의 ‘두 가지’ 이름
사랑하면 죽게 되는 희귀질환,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80분만 기억하는 병에 걸린 수학박사”
“햇빛을 보면 생명이 단축되는 병”
1리터나 되는 눈물을 흘렸다는 한 소녀의 이야기
‘첫 키스만 50번째’, 설렘~ 그 감정을 무한반복?
“당신은 217번째 환자입니다.”
희귀질환 ‘신경섬유종’…“나는 코끼리가 아닙니다.”
남들보다 10배나 빠른 세월을 산다…희귀질환 조로증
“우리는 삶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가?”
희귀질환은 ‘질환’이 아니라 특별한 ‘개성’이다
전세계 딱 30명인 ‘슈발츠얌펠 증후군’
“나에겐 아직 따뜻한 손이 남아 있어!”
희귀질환 환우의 부모 입장을 생각해 보자
내 혈우병 치료를 위해 복제인간을?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인가?
‘순간을 소중하게’, 내가 사는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어쩌면 정답은 어디에나 있었던 것인지도…”
전 세계 100명뿐인 ‘늘 배고픈 병’
박천욱 대표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헤모필리아 라이프  |  등록번호 서울아02245  |  등록일 2012-08-31  |  대표 박천욱  |  편집인 김태일 박필선  |  청소년보호책임자 유성연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1로 205(가산동 470-8, 케이씨씨 웰츠배리 604호)  |  02)6111-8255
업무국 :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27길 25  |  전화 02-535-6474  |  문의 및 제보 hemo@hemophilia.co.kr
Copyright © 2012 헤모필리아 라이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