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사라져간 혈우사회의 선배들께 감사하며”

리더십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영화 ‘대장 김창수’. 응고되지 않은 혈우사회의 영화평으로 이 영화를 논하고자 한다.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됐으므로 수일 내에 영화감상이 예정된 이들은 먼저 영화부터 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글의 스포가 영화 감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듯)

영화의 배경은 1896년. 일제 강점기 초이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반일’ 정서를 담고 있다. 물론 이 영화도 일본 치하 속에 수감된 조선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초점은 반일감정이 아니라 ‘김창수’라는 인물에 대한 조명이다. 무지함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깨달음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잘 설명해 준 영화이다.

영화의 초입은 한 조선인이 일본인을 살해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경찰에 의해 체포됐고, 법의 심판대에 올라 그의 행위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국민의 정서상 무죄를 주장하고 싶지만 ‘살인’이라는 행위적 결론과 정치적 판단에 의해 그는 사형수가 되어 수감생활을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초 대체적으로 공무원들은 ‘조선’인들이지만 시대적 배경엔 절대적 권력이 일본천황에 모아지는 시기이다. 무장한 일제 속에 우리나라의 정체성은 불분명했고, 나아가 국모 명성황후의 시해조차 힘 없이 바라만봐야 하는 무지한 백성들. 분개한들 한낱 탄성으로만 그치는 시기. 그런 시기가 우리에게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무지에 의한 ‘죄의 값’일수도 있다.

극중인물 김창수(역 조진웅)는 수감생활을 통해 ‘무지’라는 것 때문에 억울한 이들이 치욕적인 수감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점차 그들의 개안(開眼)을 위해 노력한다. 글조차 모르는 무식한 투옥자들. 그들에게 ‘글을 배우는 것’은 사치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먹고 일하고 자고 먹고 일하고 자고... 반복적인 일상.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은 그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가슴 속에 억울함을 갖고는 있지만 마치 그것을 당연함으로 인정하고 그저 주는 대로 먹고 하라는 대로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 살아간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김창수는 변화를 시도했다. 마치 아골 골짝 빈 들에 복음 들고 나서는 사역자처럼 김창수는 무지한 이들에게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처음엔 비판과 비난이 들끓었지만 김창수의 섬김의 리더십이 통했다. 멸시천대를 견디어 내며 신뢰를 찾아낸 것이다. 그의 ‘집념’과 ‘열정’과 ‘진심’은 결국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재위 1863∼1907)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김창수는 결국 탈옥에 성공하면서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됐다. 김창수는 바로 백범 김구였다.

불모지 같던 우리 혈우사회가 지금처럼 많은 변화의 모습을 갖게 된 건 ‘대장 김창수’ 같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료인은 의료인대로 제약회사는 제약회사대로 환자는 환자대로 시대를 타고난 그들의 열정. 그들의 노력에 의해 고통스러운 통증을 덜게 됐고, 일반인들과 우열을 가리며 일반 사회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름없이 사라져간 혈우사회의 선배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전한다.

[혈우사회인 물랑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