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바스찬' 역의 라이언 고슬링(좌)과 '미아' 역의 엠마 스톤

<라라랜드>의 예고편을 봤을 때, '오, 몇주 있다가 씨네F 채널에서 나오겠군' 싶을 만큼 소규모 여성영화라는 느낌이 강했다. 일요일마다 나를 여행 떠나게 만드는 <출발 비디오여행> 같은 메이저 영화소개프로에서 이전까지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제목이나 배우들이 주는 첫인상도 뭔가 포스가 느껴지기보다 '우리 이렇게 즐겁게 영화 만들었으니까 보고싶은 사람만 와서 봐라'라는 매니아적 자기만족에 차 있는 듯해 보였기 때문이랄까. 어쨌든 나중에 TV에서 또는 불법 다운로드로!! 봐도 좋을만한 영화라고 생각한 거다.

그러다 1월 초였나? 골든글로브에서 <라라랜드>가 7관왕을 휩쓸었다는 뉴스는 솔깃했다. 원래 상 많이 받는 영화는 재미 없다지만 그 뉴스가 솔깃했던 건 이 영화를 처음 알게 한 포스터의 한 구석, 바로 남자배우 라이언 고슬링의 손동작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극히 연극적인 공간과 조명을 배경으로 남녀 주인공이 공연용 탭댄스슈즈를 신고 누구도 주목할 것 같지 않은 춤사위를 나누고 있는 장면. 두 배우는 서로 대칭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남자배우는 여배우에 비교해 묘한 손동작을 하고 있다. 쭉 펴지지 않은 손, 마치 날아가는 새를 잡아놓은 듯하기도 하고 바로 위 카피처럼 마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한 손이었다. 웰메이드 영화를 표방하는 제작진이었다면 완벽한 대칭을 표현하기 위해 여배우의 손처럼 쫙 펴진 모양새로 뽀샵을 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건 이 영화가 얼마나 라이브하게 펼쳐지는 장면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했는지를, 영화보다는 연극에 가까운 작품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

지극히 연극적인 한 영화에 대해서 골든글로브가 대체 어떤 평가를 내렸기에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음악상과 주제가상까지 싹 쓸어 내줬는가 싶어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을 수 없었다.

▲ 다분히 연극적인 조명을 사용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이 영화, 라라랜드

영화관 좌석에 몸을 묻고 <라라랜드>로 걸어들어갔다. 무엇보다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었던 건 영화 속 조명의 쓰임 때문이라고 하겠다. 인물들이 피아노와 노래에 빠져들면서 변화되는 장면은 다른 영화들처럼 특수효과나 카메라워크를 통한 전환이 아닌 실제 전구와 소켓, 디머(연극에서 조명을 조절하는 장치)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조명과 동시녹음만으로도 시끄러운 술집은 콘서트장이 되고 면접실은 빠리 세느강변으로 변해, 포스터에서 말하던 "이 영화는 마법이다"라는 말을 실감시켰다. 마치 영화에 대한 정의를 '사람들의 못 이룬 꿈을 다시 꿈꾸게 해주는 예술'로 재차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 짜여진 각본이 아닌 자신만의 무대를 원했던 여주인공 미아의 도전

사실 스토리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비긴어게인>의 꿈에 대한 대화를 빌려온 듯 했고 <카페 소사이어티>의 남녀관계를 ctrl+c, ctrl+v 한 것처럼 낯익은 스토리이다. 그런데 어쩌면 어디선가 본듯한 그 스토리 때문에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한 불친절한 설명을 더 우리 각자의 삶에 비추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느꼈다.

누군가와의 이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LA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셀 수 없이 많다. 상대의 호의에 대한 무시, 땀흘려 준비한 결과물에 함께 해주지 못하는 바쁜 일상, 공유했던 꿈으로부터의 후퇴... 어쩌면 이 모든 것으로부터 사람(작게는 남녀)관계를 지켜주는 것은 오히려 가난과 결핍이 익숙한 청춘의 시절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청춘이 지나가고 현실을 찾아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해도 전혀 '배신'과 같은 거친 감정만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며, 그 시절을 아름답게 간직하는게 우리 인생의 무대를 더 값진 조명과 관객으로 채우는 것이리라.

▲ 영화 후반부의 5분은 우리에게 놓여진 수많은 이별의 가능성과 그럼에도 사랑을 이어가게 하는 힘에 대해 꿈을 빌려 이야기한다. 놀라운 장면들이었다.

'혈우'라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결핍으로 만난 우리 헤모인들의 인연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것을 예상한다. 서로 시기할 것 없고 꿈으로 가는 길이 다르다 해서 억지로 자신이 옳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잡아 끌 수 없는 것이다. 코헴회와 청심회의 통합 소식은 새해 가장 반가운 통전이다. 치열하게 모색하고 토론하며 혈우사회의 무대를 채워나가길 바라본다.

아, 제목인 '라라랜드'는 영화의 배경인 LA, 헐리웃을 다르게 부르는 애칭이라고 한다. 북미를 제외한 전세계 중 우리나라에서 흥행성적이 가장 좋다고 하니, 곧 배경으로 등장한 그리피스 천문대, 라이트하우스 카페 같은 곳이 한국인으로 북적거릴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 세바스찬과 미아가 첫키스를 나눈 LA의 그리피스 천문대

[글 혈우환우 모모씨 / 편집 헤모라이프 객원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