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패러디

국내혈우사회를 대표하는 제약회사는 국내 녹십자를 비롯해서 한독과 글로벌 제약사 샤이어, 한국화이자제약 그리고 항체 치료제를 공급하는 노보노디스크가 있다. 이외에 바이엘코리아가 있지만 바이엘은 잠시 국내 혈우사회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수의 혈우병 환우들을 대상으로 8인자 치료제를 공급하면서 ‘실낱’은 잡고 있는듯해 보인다.

국내 혈우병 환자들은 약 2천여명이다. 그리 크지 않은 국내 혈우병 치료제 시장에 혈우병 글로벌 메이저 제약사들은 국내에서 지속적이면서도 새로운 도전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유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건강보험제도와 국가의 희귀난치 의료비지원 등의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신의 건강권과 치료보장을 지켜나가는 혈우병 환자 단체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다소 생소한 기업이 움직이고 있다. ‘한국유씨비제약’이라는 회사이다. 이 회사는 국내 식약처에 새로운 혈우병치료제 엘록테이트(8인자)와 알프롤릭스(9인자)에 대한 시판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고 전해진다.

이 회사를 통해 국내 혈우사회 환자들은 ‘반감기를 늘린 혈우병 치료제’ 시대를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물론 한국유씨비제약이 엘록테이트와 알프롤릭스를 직접 공급할지 아니면 샤이어처럼 녹십자를 통해서 공급될지는 미지수이다. 확인된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롱액팅 치료제의 잇점은 효과의 지속성 때문에 환자에게 투여하는 주사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롱액팅 치료제를 준비하는 제약사는 여러 곳이 있지만, 한국유씨비제약의 출시가 가장 빠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식약처에서 시판허가를 끝내더라도 복지부에서 가격과 기준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출시 일정이 다소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샤이어의 ‘릭수비스’는 식약처로부터 지난 2015년 4월경에 시판허가를 받고도 2016년 5월에서야 가격과 처방기준을 고시 받았다. 식약처 허가 후 만 1년이 넘도록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롱액팅 치료제는 이보다는 다소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게 관련자들의 중론이다.

출시 후, 어디서 판매하느냐 또는 어떤 것이 먼저 출시되느냐

출시가 되더라도 어디서 어떤 전략으로 환자들에게 어필하느냐가 달려있다. 국내의 독특한 환경 때문에 가능하면 “녹십자를 통해 공급되는 것이 안정적이지 않겠느냐”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녹십자를 통해서 공급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녹십자도 자사의 롱액팅 제품이 임상을 준비 중에 있다. 다만 아직 1상 임상을 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출시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자사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공백을 메꿀’ 롱액팅 제품이 필요하다. 타사의 롱액팅 치료제를 공급판매하면서 자사의 치료제가 나오면 동시에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녹십자의 파트너사인 샤이어의 파이프라인을 점검해 보면 ‘알프롤릭스’와 유사한 ‘아디노베이트’가 곧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혈우사회 내에서 롱액팅 치료제의 출시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아디노베이트’가 먼저 출시된다면 ‘엘록테이트’가 빛을 못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예컨대 ‘아디노베이트’가 먼저 출시된다면, ‘차세대 치료제’이기 때문에 한국혈우재단에 매우 빠른 속도로 런칭될 수 있다. 이렇게 재단에 아디노베이트가 런칭 된다면 ‘엘록테이트’는 후발 업체가 된다. 그러면 과거 ‘코지네이트FS’사례처럼 “이미 재단에서 처방되는 롱액팅 치료제가 있는데 굳이 또 다른 롱액팅 치료제가 있을 필요 있겠는가?”라는 논란의 주장이 나오면서 ‘엘록테이트’는 재단 런칭이 차일피일 늦어질 수 있다. 더구나 ‘아디노베이트’는 “국내임상도 진행했고, 이미 사용하는 환자도 있다”는 명분도 있기 때문에 ‘아디노베이트’가 국내 시장을 선점할 경우 국내 8인자 혈우병 환자들은 단일 롱액팅 치료제를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엘록테이트’가 먼저 출시되면, ‘아디노베이트’가 재단에 런칭 될 무렵, 두 약품 모두 재단에 삽입될 가능성이 있다. ‘릭수비스’가 재단에 런칭될 때 ‘진타’도 함께 재단에 입성했던 과거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두 약품의 종류는 다르지만 재단 런칭을 위한 메커니즘이 유사하다는 견해가 있다.

관련업계 종사자들에 따르면 ‘롱액팅’ 치료제의 출시 시기로는 ‘엘록테이트’가 ‘아디노베이트’ 출시보다 다소 빠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혈우사회에서 롱액팅에 대한 옵션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8인자 롱액팅 시장은 단일 치료제가 되느냐 아니면 옵션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두 가지 이상의 약품이 런칭되느냐가 관전 포인트가 될듯하다.

녹십자에서 엘록테이트를 공급한다? 엉뚱한 전망일까?

앞서, 말한바와 같이 녹십자는 샤이어와 파트너관계이다. 그러나 샤이어의 ‘롱액팅 치료제’인 ‘아디노베이트’와 판매계약을 맺지 않고 한국유씨비제약의 ‘엘록테이트’와 공급체결을 맺게 된다면? 이게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왜 일까?

녹십자와 샤이어간에 ‘롱액팅’에 대한 명확한 계약이 없다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8인자 ‘엘록테이트’때문이 아니라 9인자 치료제인 ‘알프롤릭스’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녹십자는 8인자 치료제 시장에서 자사의 치료제인 ‘그린모노’와 ‘그린진F’를 판매하면서, 파트너사인 샤이어의 ‘애드베이트’를 동시에 판매하고 있다. 반면 녹십자는 9인자 제품으로 혈액복합제제인 ‘훽나인’밖에 없다. 녹십자는 9인자 유전자재조합제제가 없다. 다만 샤이어의 ‘릭수비스’를 공급받아 판매하고 있지만, ‘비슷한 제품’으로 경쟁사의 9인자 치료제인 ‘베네픽스’ 아성을 무너뜨리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알프롤릭스’는 녹십자에게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있다.

9인자 롱액팅은 8인자 롱액팅 보다 월등한 반감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주사 횟수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저명한 학회지 등에 따르면 월 2~3회 정도 투여로 환우가 일상생활을 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9인자 환우들은 7회에서 10회 내외의 프로플락시스(예방유지요법)를 하고 있는데, “보름에 한번 꼴로 투여하면 해결된다”는 임상보고는 환우의 삶에 매우 큰 변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녹십자가 한국유씨비제약과 판매협약을 맺고 알프롤릭스와 엘록테이트를 판매하겠다고 나선다면 국내 혈우사회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해결되야 하는데, 즉 시기적인 제한이다. 지난해 5월, 녹십자는 샤이어의 9인자 치료제 ‘릭수비스’를 향후 ‘3년간’ 공급받아 판매하겠다는 계약을 맺었다. 따라서 오는 2019년 5월까지는 녹십자와 샤이어는 9인자 치료제가 묶여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계약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롱액팅’ 범주까지 계약에 포함되는가? 아닌가에 대한 부분은 알려진 바가 없다. 8인자 또는 9인자의 판매공급 계약조건에 차세대 치료제인 ‘롱액팅’까지 구체적인 언급이 있었을까?

변수의 등장…신의 한 수, 최저의 ‘약가’ 제시

롱액팅의 변수는 이뿐만 아니다. 가격(약가)에서도 변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복지부입장에서 본다면 엘록테이트의 가격고시를 다소 늦추면서 시기를 지연 시킬 수도 있다. 이유는 아디노베이트와 가격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경쟁을 붙여 가격을 떨어뜨리게 되면 보험자도 좋고 환자도 좋고 일석이조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격경쟁력은 어디가 유리할까? 우위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환경적 요인을 살펴보면 한국유씨비제약이 가격인하 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유씨비 입장에서는 새로운 혈우병 치료제 시장의 개척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이 아니면 고전하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샤이어는 기존 시장을 지켜야하는 수비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약가인하에 대해, 글로벌 본사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8인자 유전자재조합제제 중에서 가장 비싼 치료제는 ‘그린진F’이다. 만약 엘록테이트가 이 가격까지 낮추겠다고 정부를 설득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환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녹십자가 ‘그린진F’의 가격을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있을까? 아울러 샤이어는 ‘아디노베이트’의 약가를 ‘엘록테이트’보다 더 낮출 수 있을까? 샤이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론상으로만 본다면 가격 면에서는 녹십자와 샤이어는 유씨비제약의 ‘엘록테이트’ 저가공략을 따라가기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유씨비제약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격전략은 ‘레드오션’인 8인자 시장에서 ‘엘록테이트’는 가격을 최대로 낮추고, ‘블루오션’인 9인자 롱액팅 시장에서 ‘알프롤릭스’로 휩쓸어보자는 계산이 섰을까?

사실 제약회사 입장에서 약가의 자진인하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과거 ‘코지네이트FS’의 가격협상을 보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당시 유전자재조합제제는 혈액제제보다 ‘무조건 비싸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그런데 ‘코지네이트FS’가 이런 통념을 깨버렸다. 물론 지금은 혈액제제가 관리비용 등 여러 요건 때문에 비싸지만, 예전에는 유전자재조합제제가 월등히 비쌌다. 이런 상황에서 ‘코지네이트FS’는 가격을 크게 낮췄다. 이에 경쟁사에서도 가격을 낮추면서 추격전을 폈으나, 이어지는 ‘코지네이트FS’의 약가 인하에 경쟁사들은 넉다운됐다. 그러면서 ‘코지네이트FS’가 국제가격보다도 훨씬 낮추면서 우리정부를 설득시켰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연령제한’까지도 일시에 모두 해결되는 큰 획을 그었다. 놀랍게도 이같은 경력의 소유자가 지금 한국유씨비제약에서 엘록테이트와 알프롤릭스의 국내런칭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녹십자, 샤이어 그리고 한국유씨비제약의 트라이앵글

녹십자와 샤이어가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로 자사 타사의 치료제를 모두 판매하는 구조에 대해 다소 불안해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국내 혈우사회에 안착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유씨비제약의 발빠른 진행으로 국내 혈우사회는 어쩌면 ‘한 지붕 세 가족’ 형태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유씨비제약에서 알프롤릭스와 엘록테이트를 빠르게 출시하면 혈우사회는 술렁일 수밖에 없다.

혹자는 “녹십자와 샤이어의 파트너쉽은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함께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추론하기도 한다. 물론 그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높다. 샤이어는 향후 혈우병 치료제 시장에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고 국내에서의 녹십자는 영업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손 발이 잘 맞는 ‘콤비’로써 손색없어 보인다. 반면 기업의 생리는 자사의 이익에 우선한다. 따라서 각 제약사는 자사를 중심으로 가장 합리적인 시나리오를 만들게 될 것이다.

잠시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샤이어에서 ‘릭수비스’를 출시할 무렵. ‘릭수비스’는 복지부로부터 가격과 기준 등의 모든 고시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녹십자는 곧바로 릭수비스의 판매계약을 맺지 않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5월 1일자 복지부 고시 이후, 약 20일이나 지나서 녹십자는 3년이라는 계약제한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샤이어와 ‘릭수비스’ 판매계약을 맺었다. “왜? 출시와 함께 바로 계약을 맺지 않았을까?”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한 관계자는 “2016년 봄부터 알프롤릭스 출시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들려왔고 2016년 가을이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를 넘겼다.

자. 이제 서서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17년을 살아가는 혈우사회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가 됐을까?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