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녹십자의 신약 'MG1121A(임상후보물질명)'의 ‘전임상 완료’ 소식은 국내혈우병 환자들이 사용하게 될 치료제가 머지않아 변경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시그널이다.

녹십자에서 전임상 단계를 완료한 혈우병 신약은, 8인자 치료제로써 반감기를 늘린 ‘롱액팅’ 치료제이다. ‘롱액팅’ 치료제는 환자들의 주사 횟수를 줄여준다. 알려진 신약은 기존 치료제 보다 3배가량 반감기가 늘어났다고 하니 수치만으로 보더라도, 한 달에 10번 주사를 맞는 환자라면 주사횟수를 3번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국제 혈우사회에서 반감기를 늘린 ‘롱액팅’ 혈우병 치료제가 시판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자, 우리나라 도입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가를 놓고 막연하게 “한 10년은 걸리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어느 덧 국내 제약사인 녹십자가 ‘롱액팅’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구체적으로 흘러나오면서 ‘롱액팅’ 치료제의 도입이 카운트 다운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외국산 ‘롱액팅’ 치료제들도 국내에서 우리 환우들을 대상으로 임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 차세대 치료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에미시주맙(emicizumab, ACE910)의 약동학 수치

◇ 출시 시기는 ‘약가’ 결정이 관건?

국내에서는 혈우병 ‘롱액팅’ 치료제의 가격이 산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얼마의 가격이 합리적일지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은 9인자 치료제 ‘릭수비수’가 복지부로부터 가격 고시를 받은 과정에서 예상해 볼 수 있다.

지난 해 5월, 복지부는 혈우병 9인자 치료제 ‘릭수비스’의 가격을 고시하면서 심평원의 ‘약제의 요양급여대상여부 등의 평가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해 895원이라는 가격으로 고시했다.

당시 9인자 유전자재조합 제제는 베네픽스가 유일했고, 가격은 IU당 807원이었다. 베네픽스에 비해 ‘릭수비스’가 높은 가격을 받은 이유에 대해, 복지부는 “연간 총 치료비용을 계산해 본 결과 용법용량에 따라 ‘릭수비스’ 사용량이 다소 적게 나왔다”고 밝혔다.

이같은 평가기준을 적용하게 된다면 현재 8인자 가격을 기준으로 ‘연간 총 치료비용’을 적용하게 되면 롱액팅 가격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기존 치료제보다 산술적으로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롱액팅’ 치료제가 2배정도 지속된다면 ‘롱액팅’ 치료제의 가격은 기존 치료제의 2배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고, 3배정도 지속되는 효과가 있다면 기존 치료제의 3배로 산정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롱액팅’ 치료제로 환자들이 치료를 받게 되더라도 총 치료비용이 종전과 똑같게 된다.

예산에 따른 간단함 셈법은 이렇게 나온다. 반면 ‘신약’이라는 것과 환자 치료에 개선을 이룬 점, 연구개발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제약회사로써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지난 1999년경 ‘단일클론 모노크로날’ 혈우병 치료제가 도입될 무렵, 혈우병의 새로운 치료제는 종전 치료제의 가격보다 약 3배(그린에이트에서 모노클레이트-피 또는 그린모노)가량 높은 가격으로 고시가 이뤄졌다. 당시 복지부는 환자의 ‘총 치료비용’이라는 계산보다는 혈우병 환자들의 ‘안전성’에 초점을 맞추고 약가를 산정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국내 혈우사회는 오염혈액과 심각한 감염사태 등으로 안전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따라서 가격이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정부도, 혈우사회도, 환자들의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복지부는 고가의 치료제 임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안전한 치료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이번에는 안전성보다는 치료의 패턴 변화이다. 환자들에게 개선된 의료환경을 제공하고 선진의료 기술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응급조치적 치료개념을 벗어나 장기간 지속 치료로의 전환이다. 이처럼 과거사례를 적용해서 단순하게 ‘롱액팅’ 치료제의 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 지난 1월 19일 서울경기지회의 목암연구소(녹십자) 견학에서 한 연구원이 'MG1121A(임상후보물질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롱액팅 도입 서두르려면 ‘릭수비스’ 약가고시 사례 적용해야?

기존 치료제 보다 2배 효과, 3배 효과, 단순히 이같은 효과라면 지금의 가격에서 동등한 배율대로 적용하면 된다. 연간 총 치료비용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자(보건당국) 입장에서 적정가는 ‘동등한 치료비용’ 수준이 해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이같은 조건은 공급자(제약사)측에서 수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합리적인 방법을 ‘보험급여’ 기준고시로 해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즉 롱액팅 신약의 가격은 산술적인 수치에 따르고, 다만 ‘처방횟수 제한’ 규제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지금 보험급여 인정기준은 8인자 환자의 경우, 나이에 따라 원내에서 월 10회내지 12회라는 처방제한을 두고 있다. 그러나 ‘롱액팅’ 치료제는 이같은 개념적용이 합리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횟수제한 기준은 삭제하고 의료진의 처방에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울러 선진국에서도 모든 치료제를 롱액팅으로 전환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환자의 치료소견에 따라 기존의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예방요법으로는 롱액팅 치료제가 고려될 수 있지만, 출혈시 치료법으로는 현재의 치료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외국에서도 혈우병 치료제 처방시 병행처방을 하고 있다. 롱액팅 치료제로 예방요법을 하면서도 출혈이 발생되면 기존의 치료제를 투여하는 방법으로 처치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예산을 크게 지출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치료제한 규제를 풀어준다’는 명분이 생긴다. 아울러 제약사는 새로운 치료제를 조속히 런칭하면서도 안정적인 매출확보가 가능해 진다. 나아가, 의료진과 환자들도 치료의 옵션이 넓어지면서 원하는 패턴(롱액팅 또는 출혈시 처치)으로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약가’로 해법을 찾는 것 보다는 규제해소와 의료환경 개선 등으로 접근해 보면,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합리적인 아이디어가 접목된다면, ‘롱액팅’ 치료제의 도입은 국내 혈우병 치료환경이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헤모라이프 김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