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제제에서 유전자재조합제제로, 그리고 이제는 롱액팅 시대로의 변화의 조짐 일고 있다. 장단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도 여러 혈우병 치료제조사들은 마치 ‘롱액팅’제품에 사활을 걸듯 뛰어 들고 있다.

국제혈우사회에서는 혈우병치료제 선두업체로 샤이어의 전신이었던 박스터를 꼽는다. 유전자재조합제제 1세대부터 3세대까지 혈우병 치료제 시장을 선점했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혈우병 환자들에게 앞선 치료제를 선보였다. 국내혈우사회에서는 녹십자의 기여가 꽤 높았다. 국내 혈우병환자들이 획기적인 치료변화에 중심이 됐던 한국혈우재단의 설립. 그 배경에는 녹십자의 기여가 크다.

2000년이 되면서 국내 혈우사회는 조금씩 글로벌 시장의 문을 열었다. 그 후 지금 우리 혈우사회는 녹십자를 비롯해 샤이어 화이자 한독 노보노디스크 등 익숙한 제약회사가 혈우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혈우병 치료제 선점의 역사

70년대, 녹십자가 혈우병 혜안을 갖고 혈우병 치료제 시장을 개척했다. 그 결과 국내외의 도움으로 30년간 독주해왔다. 밀레니엄시대를 앞둔 90년대 말 무렵 한독약품이 혈액제제를 수입공급하면서 후발업체로 부각됐다. 그러나 녹십자의 선점의 벽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혈액제제 시대가 끝나갈 쯤, 유전자재조합제제 선점은 샤이어의 전신이었던 박스터였다. 녹십자의 유전자재조합제제 출시가 늦어지면서, 녹십자는 혈액제제 시장을 박스터는 유전자재조합제제 시장을 각각 나눠가졌다. 연령제한이라는 반헌법적 규정에 따라 점유율은 거의 절반씩 녹십자와 박스터가 차지했다.

점차 유전자재조합제제의 시장이 커지면서 바이엘이 유전자재조합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같은 시기에 헌법재판소에서 ‘연령제한’을 풀면서 유전자재조합 시장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후발주자였던 바이엘은 박스터의 선점시장을 뛰어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어 화이자에서 3세대 유전자재조합 제제에 획기적인 디바이스(주사도구)를 장착한 진타(개선된 후속제품으로는 진타-솔로퓨즈)를 국내에 런칭했다. 그러나 박스터의 선점의 효과는 지속됐다.

국내 혈액제제의 선점은 녹십자였고, 유전자재조합제제의 선점은 박스터였다. 그들의 아성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제 곧 롱액팅 치료제 시장이 열린다. 그러면 과연 누가 롱액팅 시장을 선점 할 것인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샤이어와 UCB가 치열하게 경합할 것으로 보인다. 샤이어는 박스터로부터 분리된 박스앨타를 인수한 회사이다. UCB는 바이오젠사의 혈우병 치료제를 국내에 공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회사이다. 둘 다 생소한 회사로 보이지만 각 회사의 전투(?) 인력은 이미 혈우사회의 노련한 구성원들이다.

‘돌고 도는’ 혈우사회 인력

한국 샤이어의 총괄대표는 문희석 사장이다. 그러나 혈우병 분야로 특화된 샤이어 총책은 김나경 사장이다. 또한 UCB는 이번에 롱액팅 혈우병 치료제를 런칭하기 위해 구원투수로 내세운 인물이 서명석 팀장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서 팀장은 김 사장보다 앞서 문 사장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그 시점은 코지네이트FS의 런칭시기 때였다. 두 사람은 바이엘코리아에서 함께 몸담고 ‘코지네이트FS’를 성공적으로 런칭한 경험이 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서 팀장은 한독약품에서 모노클레이트P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서 팀장은 혈우병 치료제에 대해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서 팀장은 새로운 치료제 런칭을 위한 최적의 대관업무 적임자로 볼 수 있다.

국내 롱액팅 선점은 누가먼저 차지하나?

본격적으로 전망해보자, 먼저 샤이어의 롱액팅 치료제는 ‘아디노베이트’이다. 국제혈우사회에서 줄 곧 ‘최초시판’을 거듭했던 샤이어가 롱액팅 시장에서만큼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지 못했다. 바이오젠의 ‘엘록테이트’가 샤이어의 아성을 추월하면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잡았다. 여러 국가에 출시하면서 현재 국제사회는 3-4종의 롱액팅 치료제들이 시판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누가 먼저 시판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샤이어는 벌써 2년 전부터 국내임상을 비롯해서 다국적 임상을 진행해 오고 있다. 시판을 앞두고 제한적으로 진행된 임상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몇몇의 우리 환우들이 무상공급 받으면서 샤이어의 ‘아디노베이트’로 임상을 하고 있다. 반면 바이오젠의 ‘엘록테이트’ 글로벌 임상을 끝냈고 국내 식약처에 시판허가를 진행해왔다. 진행방법은 조금 달랐지만 두 곳 모두 발 빠른 행보를 해왔다.

두 약품에 차이는 Fc융합, PEG 페길화 등 다소 복잡한 차이를 주장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기존 치료제 보다 1.4~1.5배 정도 약효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주2회 또는 3~5일에 1회 정도 예방요법을 통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제품이 먼저 출시되는가를 놓고 취재해 본 결과, 아디노베이트 보다 엘록테이트가 먼저 출시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추정이었다. 출시 시기에 대해서도 정확성을 다소 떨어지지만 금년에 엘록테이트가 시판허가를 끝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마케팅 전략, 어디가 우세할까?

두 약품이 동시에 출시된다면 어느 곳이 우세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샤이어의 아디노베이트가 우세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속은 엘록테이트가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이유를 살펴보면, 샤이어는 한국혈우재단에서 자사의 치료제인 애드베이트를 이용하고 있는 환자수가 절대 다수이기 때문에 ‘애드베이트’를 사용하고 있는 환자들은 ‘원하다면’ 쉽게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즉 샤이어는 기존 ‘애드베이트’ 환자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롱액팅 치료제인 ‘아디노베이트’로 대체하는 것은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이익 면에서 보면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신약에 대한 글로벌 기준 가격이 있는데 ‘엘록테이트’가 저가공략을 펴게 되면 샤이어는 ‘아디노베이트’ 판매를 고려해봐야 할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반면, UCB의 엘록테이트는 샤이어처럼 기존 기반이 없는 상태이다. 이런 경우 국내 혈우사회에서는 녹십자와 협력해서 공급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은 쉽지 않다. 샤이어는 이미 녹십자와 ‘애드베이트’와 ‘릭수비스’의 공급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올액팅 치료제에 대한 협약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실속을 챙길 수 있는 곳은 UCB일까? 전무했던 혈우병치료제 시장을 개척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저가공략이 글로벌 본사에서 승인된다면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이다. 보건복지부에서도 혈우병 치료제를 저가로 공급한다면 ‘대환영’할 것이다. 혈우병 치료제의 도입은 추가로 더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치료제를 대체하는 효과이기 때문에 결국 예산절감의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국내 롱액팅 시장은 샤이어의 디펜스와 UCB의 공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봐야 한다.

샤이어에서는 혈우병 롱액팅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고가의 기술개발 비용이 투입됐는데 애드베이트를 대체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유쾌하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동등한 가격으로 리콤비네이트(1세대 유전자재조합제제)를 애드베이트(3세대 유전재자조합제제)로 대체공급하면서 유전자재조합제제 시장을 지켜왔던 것처럼 아디노베이트가 유사한 역할을 해 준다면 샤이어의 마케팅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UCB의 저가공세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샤이어는 매우 위협적인 상황을 맞게 될수도 있다. 더구나 UCB에서 어떤 ‘환자 프로그램’을 선보일지 관심이 높기 때문에 더욱 더 샤이어는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혈우병 치료제를 놓고 의료적인 이야기가 아닌,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을 가늠해본다는 것은 다소 모험적인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혈우병 환자들의 치료개선을 전제해 둔 상태해서 접근해 본다면 향후 우리 혈우사회가 어떤 지평을 열게 될지 흥미로운 전망이 되지 않을까? 환자들은 특정 제약회사의 ‘편’이 아니라 개선된 치료제의 ‘편’이기 때문이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