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번불콩인터뷰
경복씨, 연륜에서 느껴지는 그만의 여유희수(稀壽)를 바라보며 “살아오면서 후회는 없었다”
유성연 기자  |  tjddus@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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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2  04: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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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미세먼지가 일상화되어 버린 거 같다. 요즘은 파란하늘보다 뿌옇게 변해버린 하늘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아~ 황사비라도 좋으니 먼지 좀 씻겨 나가게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도시를 벗어나면 공기가 좀 나으려나? 그렇다면 교외로 나가보자! 

오늘 만나볼 ‘번.불.콩’ 인터뷰의 주인공은 강원도 홍천에 살고 있는 박경복 환우이다. 서울에서 2시간 정도 내달렸더니 금방 홍천에 도착했다. 봄비 때문인지 자욱한 안개들로 둘려 쌓여있는 먼발치 산들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그곳의 한 까페에서 경복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을 친구들과 자주 찾는다고 했다. 그의 아지트인 한방차 까페에서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경복(68세·9인자)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홍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는 2남 1녀로 제가 장남이에요. 이번에 막내 여동생이 낳은 딸 중에서 작은조카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9인자로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큰 조카는 이번에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보인자가 아니라고 판정받았데요.”

   
▲항상 웃는 모습의 경복씨~ 그의 첫 느낌은 마음편하게 대화를 나눌수 있는 교회오빠? ⓒ사진=황정식 기자

유기자 : 최근에 홍천으로 이사오셨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경복씨 : 원래 이쪽(홍천)으로 이사 올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여동생이 자꾸 내려오라고 해서 왔어요. 막상 와보니까 너무 좋더라구요. 여기오기 전에는 남양주에서 살았었어요. 남양주도 예전에는 공기가 참 좋았었는데 주변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인구유입이 늘어나니까 서울마냥 (공기가) 안 좋아졌어요. 이곳은 도시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은 건 아니에요. 제가 워낙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주변에 돌아다닐 곳이 많아서 그건 좋더라구요. 차도 필요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니려면 꼭 필요하게 되었어요.

유기자 : 요즘 어떻게 지내시고 계시는지요?

경복씨 : 특별히 하는 일은 없어요. 일은 몇 년 전부터 은퇴한거나 마찬가지라~ 그전에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나이가 드니까 직장생활 하는 것도 버겁고 해서 차 한대 장만해서 물건 싣고 다니면서 팔았던 게 마지막이었던 거 같아요.

유기자 : 혈우병 진단은 처음 어떻게 받았나요?

경복씨 : 몸이 자꾸 아프다보니까 관심을 가지게 된 게 20년 전 인거 같은데... 적십자사에서 방송으로 혈우병에 대해서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찾아가서 비싸게 돈 내고 검사를 받아봤는데 별 다른 결과를 못 얻었어요. 그러고 나서 90년도쯤에 거제도에 갔다 오던 날 허벅지쪽에 긁힌 적이 있었어요. 그때 출혈이 엄청 심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다니던 위생병원에서 ‘혈우병 재단’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그곳에서) 정확하게 혈우병 진단을 받았어요.

   
▲ 2015년 10월 24일 청장년 세미나에서 회원들과 함께

유기자 : 관절수술을 받으신 적도 있으시죠?

경복씨 : 네. 15년 전에 왼쪽 무릎 수술을 받은 적 있는데, 아직까지는 괜찮은 거 같아요. 다리에 힘이 없으니까 자꾸 구부러지고 한쪽으로 치우쳐지게 되서 경희대에서 수술을 결정하게 됐어요. 의사선생님은 “좀 더 있다가 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아프고 힘들다 보니까 더 미루지 않고 그냥 수술해 버린거죠. 수술하고 통증은 좀 오래갔지만 따로 후유증 증상도 없었고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까 괜찮더라구요. (황기자: 왼쪽 무릎 외에 다른 쪽은 괜찮으세요?) 지금 오른쪽 무릎이 수술할 가능성이 높은데, 수술하기 싫어서 아직 미루고 있는 중이에요. 조만간에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백내장이 있는데, 늦게 하면 안 좋다고 의사선생님이 계속 수술을 권유하는데 이것도 (수술을) 생각중이에요.

황기자 :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경복씨 : 아~ 그전에는 예방을 안 하고 지냈었는데... 요즘은 4~5일에 2,000IU씩 한번정도 맞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8일정도 한 번씩 예방하고 있습니다. 출혈이라는 게 한 번 생길 때는 자주 나타나다가 기분이 좋을 때는 한 동안 안생기고 하더라구요. 예전에는 약을 타면 남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예방요법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남지 않더라구요. 나이가 들다보니까 예방에 더 신경이 쓰이게 되더라구요. 롱액팅 치료제가 나오면 한 달에 한번 꼴로 1년에 12번만 맞아도 훨씬 편하고 좋을 텐데...

황기자 : 혈우병으로 심하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으시다면?

경복씨 : 허벅지 쪽 출혈로 엄청 부었을 때 병원에서 두달 정도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는데도 효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퇴원하고 집에서 쉬면서 안정을 찾았어요. 그때는 의사 선생님도 혈우병이라는 걸 알고 치료를 해준 게 아니었던거라 그때가 제일 고생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코에서 출혈이 생겼을 때, 혈뇨를 너무 많이 흘렸을 때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구요. 한번은 길을 걸어가다가 빈혈로 쓰러진 적이 있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구요. 그때마다 ‘이런식으로 살아가야’라는 생각이 한 두번 들었던 게 아니었죠. (황기자 : 코피는 몇 살 때까지 흘리셨어요?) 한 30대 후반까지 흘렸던 거 같아요. 한 번 나오면 며칠씩 나오니까... 나올 때까지 나오다 멈췄구나 싶을 때 하품만 하면 또 다시 터지면서 며칠씩 또 나오고... 나중에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약솜을 코에 강제로 넣고 점막을 지지는 것을 1년에 한번씩 3년 동안 하고 나니까 코막이 단단해지면서 코피가 나와도 양도 적고 그냥 멈추더라구요.

유기자 : 약 공급이 없던 시절 어떻게 관리하셨는지?

경복씨 : 보통 관절출혈이 한번 생기면 7~10일정도 고통 속에서 살다가 딱 10일정도 지나면 괜찮아지고 했었죠. 그리고 코 쪽으로 출혈이 자주 생겼어요. 코에서 출혈이 생기면 일주일정도 코피 흘리고, 잇몸출혈도 며칠씩... 이때도 고생 엄청 했어요. 출혈 때문에 일할 의욕도 안 생기더라구요. 91년도에 혈우재단이 생기고 나서 약(훽나인)을 한번 맞았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까 출혈이 멈췄어요.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인생도 180도 달라졌구요. 그 뒤부터 지금까지 남한테 신세 안지고 내 능력으로 살고 있어요.

유기자 : 바둑 소모임 회장도 하시고 그러셨잖아요? 바둑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셨나요?

경복씨 : 바둑은 제가 17살 때부터 책을 보면서 조금씩 공부하면서 배웠어요. 지역에서 열리는 바둑대회에 나가서 메달도 몇 개 딴 적 있어요. (실력이 어느 정도 되세요?) 인터넷 바둑으로 치면 6단 정도 되고, 기원 급으로 하면 2급 정도 되는 거 같네요. 예전에는 1급 정도 되는 실력인데, 지금은 2급으로 낮춰서 얘기해요. 동네 복지관에 가서 노인들과 같이 두면 거의 상급에 속해요.

   
▲ 2016년 4월 9일 모꼬지 오목대회에서 심판으로

유기자 : 취미로 사진도 배우신다구요?

경복씨 : 네... 사진 찍는 거는 20년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 카메라들 접한 건 1년 정도 됐어요. 아직까지는 초보로 걸음마 단계에 속하죠. 제가 찍은 사진 중에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게 있어도 보는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 틀리니까요. 하하하 (유기자 : 사진 찍는 장소로는 어디를 자주 다니세요?) 사진 찍는 곳은 딱히 정해 두지는 않아요. 새벽에 일찍 출발해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식이에요. 홍천 근처에도 사진 찍을 장소는 여러 군데 있어요. 수타사라는 절도 있고, 북쪽으로 가면 생태연구원이라고 있는데 거기도 볼거리가 많아서 사진 찍기에 좋아요. 그리고 여름에는 무궁화가 많이 피는 공원이 있어서 무궁화를 주제로 한 사진도 많이 찍더라구요.

유기자 : 경치 좋은 곳 많이 보실 거 같은데, 추천해 줄 만한 곳 좀 소개해주세요.

경복씨 : 글쎄요~ 북방 쪽에 가면 무궁화 공원이라고 있어요. 꼭 무궁화가 아니어도 봄이 되면 여러 가지 들꽃이 많이 피니까 기분 전환하러 다녀오기에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10km 정도 더 나가면 '수타사'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더라구요.

유기자 : 결혼은 아직 안하셨지만, 연애는 하셨을 거 같은데요. 연애사 좀 들려주세요.

경복씨 : 연애를 했다기보다는 사귀는 여성분이 있기는 있었어요. 제가 40대 초에 어린이 바둑교실에 좀 다닌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여성분이었어요. 근데 제가 몸이 안 좋으니까 여성분한테 맘이 잘 안가 게 되면서 마음도 멀어지게 되더라구요. (황기자 : 아련하게 떠오르는 첫사랑도 없으세요?) 하하하 미안하게도~ 그런 여성분이 전혀 없네요. 하하하 제가 이쪽방면으로는 좀 쑥맥에 속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결혼을 안 한 것도 후회는 없어요. 혼자 사는게 좀 외롭긴 해도 맘이 편해서 더 좋은 거 같네요. (유기자 : 간혹 술친구가 생각나실 때는 없으세요?) 여기 이사온 지 몇 년 안되다 보니까, 주변에 친구는 몇 명 있어도 제가 술을 안 좋아하다보니까 터놓고 얘기할 기회가 없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제 여동생이 살기 때문에 주말마다 놀러가고 조카손자들이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하하하

   
▲경복씨의 아지트인 한방차 까페. 그는 이곳을 친구들과 자주 찾는다고 했다.
   
 

황기자 :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순간이 있었다면?

경복씨 : 혈우병으로 고생했었지만 병이라 팔자려니 생각하고 하하하~. 특별하게 후회스러웠던 거는 없었어요. 사람도 잘사는 사람이 있으면 못사는 사람도 있는 거고,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인생이 그러려니~ 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하하하 (유기자 : 얼굴이 항상 밝아 보여요. 웃음을 잃지 않는 것도 하나의 노하우이세요?) 하하하 노하우라기보다는 사실은 제가 화를 잘 내지 못해요. 언짢은 일이 있어도 그냥 웃으면서 얘기를 해요. 상대방이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말을 해도 웬만해서는 반응을 안 해요. 그런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예전부터 차분한 성격이었어요.

유기자 : 환우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시는 게 있다면?

경복씨 : 치료제 횟수처방 제한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제한을 두지 않으면 일부러 더 많이 가져갈 사람이 없을 거 같아요. (오히려 지금은 제한을 두니까 일부러) 사람들이 다 받아가잖아요. 저도 예전에는 매달 약을 안탔었는데, 지금은 모자랄까봐 겁나서 추가분까지 다 받고 있어요. 하지만 제한을 풀어놓으면 약을 덜 쓸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젊었을 때는 젊다고 몸을 너무 굴리다보면 관절이 다 망가지니까 30대쯤 철이 들면 몸도 조심해야할 거 같더라구요. 저는 워낙 조심스럽게 살아왔던지라 지금 이 나이가 되서도 몸 상태가 이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관절상태가 안 좋은 친구들은 지금 당장이라고 수술 받으라고 권장해주고 싶어요. 좀 더 늦게 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없으니까 고생할 필요도 없고 근육도 있을 때 하는 게 회복력도 좋으니까요. 수술이후 삶의 질이 달라지잖아요. 재활치료도 타임이 있듯이 꾸준히 잘 만 받으면 좋아지는 걸 느낄 거에요. 저는 수술 받고 나서 한동안 꾸준히 잘 받았었는데, 치료를 (꾸준히) 안하고 멈추니까 (관절 굽히는) 각도가 안 나오면서 다리가 벌어지더라구요. 수술 받은 분들에게 듣는 노하우도 잘 들어놓으면 도움이 될거 같아요.

   
▲ 2015년 5월 23일 서경지회 가정의 달 행사때 지회원들과 함께

조신조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경복씨~ ”누구한테 악한 소리 한번 내보지 못했다“고 한 말처럼 그의 첫인상에서도 차분한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몸이 아프고 힘들면 누구나 표현의 방식이 평소보다 더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인생이 그러려니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언짢았던 기분도 이내 풀린다“고 했다. 삶의 노하우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표현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모나거나 둥글둥글 해지기 마련이다. 올해 68세... 적지 않은 세월만큼 뒤돌아 온 시간도 많다. 간직하고 싶은 첫 사랑 추억거리도 들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인생을 참 둥글게 살아오셨다. 그래도 나름 뒤돌아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만의 추억거리는 있지 않을까? 나이에서 묻어나는 연륜이라는 여유. 그에게 그런 느낌이 있다. 그래서일까? 경복씨는 시간에 쫓기는 것보다 시간을 조절하며 즐기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요즘 취미생활로 사진 찍는 것에 도전하고 계신다는 경복씨~ 언젠가는 대중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헤모라이프 유성연 기자 황정식 기자]

 

[쿠키영상] 영상으로 만나는 큰 형님~ 경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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