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계는 이국종 교수발(發)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응급사고 발생시 촌각을 다투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회적으로 의료안정보장 장치의 제도마련이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혈우사회도 이와같은 문제를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다. 응급출혈 시 긴급한 처치가 필요한 혈우병환자들은 사실상 응고제제만 신속히 주입하면 상당부분은 심각한 문제를 넘길 수 있다는게 혈우병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실상 혈우병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는 병원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혈우병 환자단체인 한국코헴회(회장 박정서)와 환자지원 복지법인 한국혈우재단(이사장 황태주)의 홈페이지에 안내되어 있는 ‘치료제 취급병원’을 살펴보면 △서울 15개소 △경기 8개소 △강원 5개소 △충청 5개소 △전북 1개소 △전남 2개소 △경북 9개소 △경남 13개소 △제주 3개소 등이다. 이나마도 ‘응고인자가 비치되어 있지는 않지만 입원 치료 등 필요 시 응고인자 공급이 가능한 병원’이 상당수이기 때문에 나열된 모든 병원이 항시 혈우병 치료제를 비치해 논 곳은 아니다.

얼마 전, 뇌출혈의 자각증상을 느낀 한 혈우병 환자는 주변 지인에게 연락해 병원 후송을 요청하곤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환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제 빠르게 가까운 병원으로 의식없는 환자를 후송했으나 병원에 혈우병 치료제가 없어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혈우병 등 혈액응고장애를 갖고 있는 많은 환자들이 이처럼 돌발적인 상황에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거나 심각한 후유장애를 얻게 되는 일이 있는데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정 규모이상의 병원은 혈우병 등 혈액응고장애 환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응급 치료제를 비치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것이 혈우병 환자들에 대한 응급의료체계 구축의 일환이다.

문제는 이뿐 아니다. A병원에 혈우병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어도 B병원으로 해당치료제를 전달해 줄 수 없는 행정적 오류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예를 들면 사경을 헤매던 혈우병 환자가 B병원으로 후송되어 왔는데 B병원은 혈우병 치료제가 없지만 인근 A병원에 치료제가 있을 경우 치료제를 A병원에서 B병원으로 옮길 수 없는 제도의 문제가 있다.

만약 응급상황 시 환자를 A병원으로 후송하는 것보다 가까운 B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다고 해도 ‘병원 간 치료제 이동’은 절차와 제도 때문에 불가한 맹점이 있다. 혈우병 치료제는 ‘생물학적 의약품’이기 때문에 현행법상 병원 간 이동이 안 된다는 거다. 사람이 ‘죽고 사느냐’라는 기로에 서 있을 때 이같은 탁상공론 때문에 소중한 생명을 잃어서야 되겠는가?

생물학적 의약품은 ‘반품과 재입고가 안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있는데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서 예외조항은 분명히 필요하다. 사람을 살리는데 절차를 논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혈우병의 응급의료체계 구축은 대형병원의 혈우병 치료제 비치 의무화와 병원 간 혈우병 치료제의 이동이 가능해져한다.

대형병원(지역별 치료 사각지대가 없도록)의 혈우병 치료제 비치 의무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예산 문제를 우려하는 주장도 있지만, 제도로 규정하고 혈우병 치료제 생산자의 의무조항을 단서로 제시할 수 있다. 퇴장방지 의약품처럼 희귀전문의약품 등 현행 약물의 규제 범위에서 혈우사회의 합의만 이끌어낸다면 아무리 민간 사업체라 하더라도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여에 참여할 수 있다.

심지어 적지 않은 환자들은 “내 치료제를 여러 병원에 기증해서 사고로 응급실을 찾게 되는 다른 환자가 있다면 그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싶다”라고도 한다. 절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

▲응급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