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개봉 2016.12.08./ 장르 드라마/ 국가 영국, 프랑스, 벨기에/ 러닝타임 100분/ 감독 켄 로치/ 다니엘 역 데이브 존스/ 케이티 역 헤일리 스콰이어

“가난하게 살지 않고,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라”라고?

우리는 너무나 쉽게, 당연한 듯이 말한다. 그런데 정말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하고 부자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반대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삶의 수준을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라면, 성공한 부자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았다는 것일까?”라고 말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이다.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스토리가 주는 메시지의 묵직함은 만만치 않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내가 사는 모든 사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 할아버지는 목공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어느 날 심장병으로 병원 주치의에게 일을 계속하기엔 위험하다는 진단을 듣는다.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국가복지정책에 따라 질병 수당을 받기 위해 의료 전문가의 진단을 받으려는데 거기서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의료 전문가는 전화번호를 누를 수 있는지, 자명종 시계 초침을 맞출 수 있는지 등 심장병과 관련없는 질문만을 앵무새처럼 말하고, 결국 사지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질병 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만 받게 된다. 이에 자신의 상황을 설득시키려고 했지만 찾아가는 어떤 복지센터에서도 합당한 대우와 답변을 듣지 못한다.

수당을 신청하고, 신청에 떨어졌다면 판정에 항고하고, 항고는 인터넷에서 신청해야 한다고 안내하기만 하는 그들에게 ‘블레이크’는 화가 났다. 그렇지만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한 개인이 국가의 시스템이라는 큰 벽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점점 이야기는 막막해지기 시작한다.

매뉴얼, 시스템, 원칙..... 영화는 보면 볼수록 마치 내가 블레이크의 가족이 된 것처럼 그것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이 치미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나 역시 늘 시스템과 정해진 매뉴얼이 있어야 체계적이며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고, 곳곳에 설치된 키오스크 기계처럼 인터넷과 기술로 편리한 세상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스템과 매뉴얼, 인터넷이 오히려 그들의 진입을 막고, 차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전, 헤모필리아라이프 기사에 나왔던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 때문에 시위하던 엄마들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기사를 읽으며 처음엔 “혈관주사나 피하주사나 그까짓 거 치료만 잘 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면서 “아프면 재단병원엘 가면 되고 많이 아프면 큰 병원 가면 되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혈관주사를 하지 못해서 아이가 밤새 아파했고 이곳저곳 주사바늘을 찌르면서 엄마도 울고 아이도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졌을 뿐이지 나와 나의 부모 역시 그런 고통을 똑같이 겪고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이 발전해 다양한 치료제가 나오고 적은 고통으로 더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방식이 보급되고 있지만 의료 시스템은 그저 책상 위에서 예산을 저울질하고 의료계와 제약업계를 어르고 달래느라 정작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의 손을 놓아버리는 관행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내는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사람을 소외시키고, 오히려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영화를 통해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자신의 일조차 힘든 상황에서 같은 센터를 찾은 생판 남인 미혼모 케이티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돕는 블레이크의 모습이 기계처럼 응답하고 관망하는 센터 직원들의 모습과 겹쳐지며, 그제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I, Daniel Blake‘ 관공소 건물 벽에, 저항을 의미하는 그래피티를 남기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개가 아니며, 사람‘이다. 고로 누구나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시스템을 마련해놓고 그 시스템이 정말 사람의 삶을 살피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사회를 우리도 함께 생각해볼만 하다.

[hemolife bravomy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