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환자들은 만성질환자들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특수성을 갖고 있다. 특히 혈우병은 세계혈우연맹(WFH)처럼 환자들이 국제 의료학회조직을 갖고 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인 의료학회는 전문가 즉, 의사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국제 혈우병 학회는 환자와 환자가족 그리고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과 전문자원봉사자들이 각자의 분명한 역할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세계혈우연맹은 혈우병 환자에 의해 직접설립 되었고, 회장은 환자 또는 환자가족이 그 대표성을 갖고 있다(현재 알랜웨일 회장은 혈우병 환자를 둔 아버지이며 그 전임 회장들은 혈우병 환자들이었다).

국내 혈우사회도 유사한 사례를 갖고 있다. 한국혈우재단(이사장 황태주)은 지난 90년 설립되었고, 그 이듬해부터 혈우재단의원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혈우병환자에 대한 치료와 의료지원사업, 교육사업 등을 지속해 왔다. 한국혈우재단의 설립과정을 살펴보면 혈우병 환자와 환자를 둔 보호자(어머니들)에 의해 재단설립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환자들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뛰어 다니며 마침내 혈우병 치료제를 생산하는 기업(녹십자, 故 허영섭 회장)이 사회 환원 차원에 나서주면서 재단설립이 완성됐다. 당시 이사회의 구성은 환자 보호자(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해서 혈우병 전문의료인들이 대거 참여했고, 이들은 만장일치로 故 허영섭 회장을 초대 재단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이런 가운데, 환자들은 스스로의 자립자활을 위해 한국코헴회를 설립하였고 각 지역에 대표성을 갖는 지역 대의원을 선출했다. 지난 8월 한국코헴회는 ‘응답하라 1987’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름캠프를 치렀다. 여기에서 말하는 ‘1987’은 코헴회의 첫 여름캠프가 치러진 해였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혈우병환자들은 지난 1987년부터 지금까지 3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성숙해 왔다. 이렇게 혈우사회가 한국코헴회와 한국혈우재단에 의해 발전을 거듭하면서 혈우병환자들은 여러 가지 사례경험을 거쳤다.

한국 혈우병단체는 이제 주니어가 아닌 시니어가 되었다. 자신의 치료제와 치료방법 심지어 수술방법 등 고난이도의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전문의와 상의하며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 치료제 역시 환자들의 요청에 의해 의료인이 처방하고 있으며, 환자와 의사는 검사와 데이터를 갖고 합리적인 치료법을 의논하기도 한다. 나아가 최신 치료제에 대한 임상도 의사와 환자들은 충분한 교류를 통해 사전점검이 이뤄지고 있다. 혈우병 치료에 대한 것은, 의료진에 의해서든 또는 환자의 지식에 의해서든 한쪽의 의견에 의해 무조건적 결정은 이뤄지지 않는다. 환자와 의사들의 ‘협의와 이해’가 그 어느 질환보다 매우 높다.

국내 혈우사회를 충분히 이해해 나가다 보면, 환자들의 ‘지적요구가 상당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자들은 혈우사회를 더욱 발전시키고, 의료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양질의 치료를 가져올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소위 ‘집단 이기적’ 주장을 넘어 ‘함께 사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한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환자들은 때에 따라 제약회사를 강력하게 압력해 ‘약가인하’를 이뤄내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약가인하로 인한 ‘재정확보’로 치료제 처방의 횟수를 늘리는 등 합리적 방법을 추진해 왔다.

아울러 환자단체에서는 ‘환자교육사업’, ‘환자의료지원사업’ 등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국가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공공부조’ 확보에 대한 활동처럼, 혈우병환자들은 혈우사회에서 자발적으로 공공재원은 마련하고 있다. 이들은 혈우사회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투명성 있게 운용하고 있다. 국가에서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 대해 모범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나 제제가 이런 선순환적 활동의 장애로 등장하며 방해되는 요소들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고 입법자가 나서야 할 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공정거래’와 같은 부분이 모호하게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다.

실제 예를 들어보면, 환자들의 보냉가방(이동중 약품을 보관하는 가방)의 경우 일정 금액을 초과하여 제작할 수 없다. 또한 간호사방문 써비스 프로그램도 해당 치료제를 사용하는 환자 이외에 타사 제품을 사용하는 환자에게 써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제약회사는 더욱 소극적인 활동을 보일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이 모씨는 혈우사회에 새로운 치료제가 생산판매 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치료제의 정보를 얻기 위해 관련 브로셔를 해당 제약회사에 요청했다. 그러나 제약회사는 “전문의약품이므로 직접소비자인 환자에게 전달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이에 이 모씨는 해외 사이트를 통해 해당 치료제의 정보를 확인하고 수집했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보면, 김 모씨는 해외에서 혈우병환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해 사용하는 치료정보 솔루션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국내 해당 제약회사에게 프로그램의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해당 제약회사 담당자는 “DTC(소비자 직접홍보)규정에 위반될 수 있어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김 모씨는 “그러면 그 프로그램은 당초 어떤 홍보용으로 만들어졌는가?”라며 회사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제약회사에서 ‘리베이트’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물론 혈우사회의 일은 아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리베이트’ 사건의 대부분은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행위들이다. 건강보험 EDI청구 금액의 일정부분을 되돌려주는 행위 등 약품매출에 대해 수수료 같은 형태로 일정부분을 의료인에게 되돌려주는 행위였고, 일부에서는 의사에게 골프회원권을 제공하기도 했다.

먼저 ‘리베이트’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지급한 상품이나 용역의 대가 일부를 다시 그 지급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위 또는 금액”을 뜻한다. 즉 물건을 팔기 위해 악용되는 행위로 자유경쟁 시장을 악순환시키는 불법행위이다.

그러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선의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의료진들에게 돌아오고 도덕적 비판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환자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기부까지 위축되면서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보건당국의 무분별한 ‘리베이트’ 단속 때문에 말 그대로 ‘벼룩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 불법행위가 만연한 곳에서의 ‘리베이트’ 단속은 환영할만 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혈우사회처럼 공정한 시스템이 구축된 모범사례까지 기부 지원이 위축되어선 안 된다. 환자들의 건강과 자활자립을 위한 활동프로그램 지원도 막연하게 ‘리베이트’로 간주하게 되면, 사적 기부가 아닌 공적 예산을 확보하고 환자들 지원사업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국가는 이같은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먼저 해법을 내 놔야 할 것이다.

한 제약회사 종사자는 “환자들에 대한 순수한 후원조차도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면서 금년 상반기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정부의 ‘리베이트’ 단속강화에 불만을 나타냈다. 회사 입장에서는 수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것인데도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제약회사 종사자는 “지원사업 예산이 많이 남아있지만 지원하지 않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볼 때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일부 회사 담당자는 “도무지 지원 방법을 찾지 못했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때문에 <혈우사회>에서의 기부도 쉽지 않은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소비자 직접 홍보(DTC), 불공정거래 등이 해석에 따라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웃지 못 할 일이 취재 중에 발생했다. 한 제보자에 따르면, 혈우사회에서 ‘불공정 의혹’ 사례에 대한 이의제기는 ‘혈우사회에서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즉 A사가 환자지원 사업을 진행하면, B사에서 ‘불공정 의혹’을 제기하고, B사에서 환자지원 사업을 추진하려면 C사에서 ‘불공정 의혹’을 제기하면서, 경쟁제약사 간에 ‘불공정 의혹’을 제기하기 때문에 특정회사에서 ‘환자지원 사업’을 추진하려고 해도 경쟁사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같은 지적이 사실이라면, 혈우사회에 부합하지 못한 특정 제약회사가 급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혈우사회의 발목을 잡는 격이 된다. 이에 그 수준은 미숙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보충 취재가 이어지고 있으나, 혈우사회의 긍정적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같은 경쟁사 간 ‘의혹제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소모적 행태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헤모필리아라이프 김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