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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씨, 그만... 헤어져"한국혈우재단을 바라보는 여섯개의 시선① -신의성실
김태일 기자  |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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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1  15: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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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더 가까이, 한 걸음 더 높이. 혈우환우의 보람된 삶에 기여하는 혈우병 관리의 글로벌 리더가 되겠습니다."

한국혈우재단의 홈페이지 '주요사업' 면에 걸려있는 슬로건이다. 가훈처럼 다 이루어지는 집안이 어디 있겠으며, 급훈처럼 배워서 남주는 학생들이 얼나마 있을까마는, 국내 유일하게 단일 희귀질환만을 위해 설립되어 운영되는 사회복지법인으로서 그 역할을 진심어리게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적어도 당사자인 혈우환우와 가족들이 관심있게 들여다 보는 게 지나친 관심은 아닐 것이다.

혈우재단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점 중 오늘은 혈우사회 내 '신의성실'(信義誠實)의 입장에서 비추어보고자 한다. 너무 순진한 기대를 거는 걸까 싶을 수 있지만 일방적인 '수혜자'로서가 아니라 혈우사회 내의 동등한 인격체이자 파트너로서 환우들이 존중받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라고 하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1990년 한국혈우재단의 태동은 혈우가족들과 녹십자(당시 고 허영섭 회장)의 합작으로 일궈낸 결과물이었다. 녹십자의 후원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녹십자 약을 투여하는 환자들이 재단을 통해 당시 본인부담금을 보전받는 식이었다. 설명하는데 2박3일은 걸릴 것 같은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환자들은 녹십자의 약 외에 바이러스로부터 더 안전한 수입약품의 사용도 함께 원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환자가족들은 재단의 요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재단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타사 치료제도 취급하기 시작했고, 환자사회는 안전과 공정경쟁이라는 가치를 혈우사회 운영의 주도권과 맞바꾼 셈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 혈우재단의 운영은 시장원리(맘에 들진 않지만)에 맞춰, '공정하게' 까지는 아니어도 '보편타당하게' 되어 왔는가? 석연찮은 2세대 유전자재조합제제 처방거부, 3년 가까이 지연된 올인원제제의 뒤늦은 심의허가(후발 녹십자 판매제제와 동시허가)와 같은 시장개입은 차치하자. 몇 대 째 이어져오고 있는 녹십자 퇴직임원의 재단전무직 낙하산과 철저히 배타적인 재단 이사 선출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자정기능이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몇 해 전, 오랜 관행을 깨고 재단 송종호 현 재단전무가 후원금을 녹십자 외 다른 기업이나 기관을 통해 확보해보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변화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가져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을 핑계로 변화는 뒷전이 되었고 그런 진정성 있는 노력이 시도되기는 했는가 궁금한 지경이다. 슬로건처럼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게 아니라 '지금 이대로'를 되내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혈우재단의 활동이 환자 치료의 '편리성' 면에서는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혈우병 치료가 고도화되고 합병증 관리 등 개인별 맞춤치료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지금, 편리한 치료가 능사는 아니지 않을까? 종합병원을 통한 포괄적 혈우병 관리 시스템을 함께 만들고, 매번은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환우들이 종합적인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권장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보건당국의 제도 변화도 이끌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펴야 할텐데 그런 도전도 인원도 보이지 않는다.

▲ 녹십자사의 한 발표자료에는 혈우재단을 설립해 공헌하고 있으며 현재 코헴회 사업인 '코헴의집'과 '여름캠프'도 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최근 몇 년간 예기치 않게 발생한 '재단의원 방문진료 불법 논란', '간호사 처방 영업정지 위기' 등의 사건 때마다 환자단체, 언론사를 포함한 전체 혈우사회가 발벗고 나서 보건당국과 사법당국을 설득하며 재단 구명에 적극 나섰고 그 결과 별 탈 없이 지나갔다. '환자 진료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혈우사회에서 재단을 옹호하는 기본적인 바탕임은 분명하나, 재단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오로지 그것 하나이고 또한 그것만으로 재단이 이 사회에 지지를 호소하려고 한다면 이 일방적인 '신의성실'을 벗어나 이제는 다른 대안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올 여름, HCV소송에 참여했던 환우들이 적십자사로부터 정의롭지 못한 소송비 청구를 당해 패닉에 빠졌을 때 사회 각곳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지원사격을 해 주어 성공적으로 청구가 철회된 적 있다. 그런 때에 혈우재단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현재의 의료지원과 경제적 지원만으로 재단이 그 존재가치를 다하고 있다고 한다면 '혈우환우의 보람된 삶에 기여하는 혈우병 관리의 글로벌리더'로서 환우들의 자존을 높이고 비혈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돕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역할자의 모습은 아예 기대를 하지 말아야겠다.

게다가 최근에는 HCV(C형간염 바이러스) 감염 혈우환우들이 녹십자를 상대로 14년간 법정공방을 이어오고 있는 소송에서, 녹십자측 대리인 '김&장 법률사무소'가 법원에 신청한 문서제출명령에 대해 혈우재단이 감염 환우들의 의무기록 전체를 제출하겠다고 의견을 밝히면서 혈우사회가 술렁이기도 했다. 14년 동안 환우들이 감염에 대한 아무런 원인도 규명받지 못한 채 간질환 합병증으로 숱하게 세상을 떠나는 중에도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침묵으로 일관하던 혈우재단이 말이다. '부끄러운 중립' 마저도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논란 이후 재단은 '의무기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면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005년 10월은 녹십자 혈장유래 혈우병치료제의 원료로 에이즈환자의 혈액이 섞여들어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힌 때였다. 이를 계기로 상대적 안전이 보장되는 유전자재조합제제 급여확대(당시 나이로 사용제한)에 대한 요구가 급격하게 일어났고, 이에 반대입장을 내건 혈우재단에 대해서 '혈우재단 바로세우기 운동'이 촉발되기도 했다. 치료제 생산회사와 혈우재단의 역학관계를 알기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편리한 치료'에 위안받던 환자사회가 인내의 한계에 부닥쳤던 때였다.

▲ 당시 '에이즈혈액 사건' MBC뉴스데스크 보도장면

13년이 지난 지금, 환자가족들이 선진치료에 눈뜨고 최신정보에 쉽게 접근하게 되면서 이들과 의료진이 비교적 평등한 위치에서 치료법을 선택하고 적극적 질환관리를 해 나가게 되었지만, 혈우재단이 환우들 삶의 질 향상 측면에서 최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혹여 재단의 태생적인 한계, 너무 오래된 슬픈 인연 때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겠다.

바둑에선 한 귀의 미생을 살리기 위해 오랫동안 잡아왔던 중원을 버리기도 한단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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