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호(좌) 회원을 소개하고 있는 표재근 부산경남지회장과 장원 대구경북지회장(우)

서울에서 6시간을 달려 내려간 간월산자연휴양림은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풍경소리 좋은 지역이었다. 휴양림 정문에서부터 행사장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돌아 올라가는 주행코스는 첫 번째 도전이었다. 마치 불끈거리는 젊음을 나타내듯 45도에 육박하는 비탈길을 숨소리 죽여 가며 올라갔다.

잠시 후 길 양옆으로 숙소가 나타났고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언덕에 차를 세우자 “행님~”이라는 소리와 함께 차문을 연건 내가 아니었다. 전국모임에서나 가끔 볼 수밖에 없었던 지역 환우들이 코헴여름캠프에 앞서 지역모임을 연 것이다.

한국코헴회 부산경남지회와 대구경북지회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역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의 아이디어로 자리가 마련됐다고 한다. 회원들은 어쨌든 이 자리가 좋았다. 공식행사에 앞서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그 시간동안 대화로 꽃을 피웠다. 새롭게 일을 시작한 환우도 있었고, 결혼하지 1년 된 환우도 있었다. 신부와 나이차이가 너무 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옆에 서성이던 한 청년은 결혼이라는 소리에 얼굴이 불거지기도 했다.

△표재근 부산경남 지회장

잠시 후 대구경북 장원 지회장의 안내에 따라 행사가 시작됐다. 장 지회장은 지역회원들의 도움으로 직장을 얻기도 했다며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이어 부산경북 표재근 지회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단단한 체구에 익살스러운 표정. 그가 체조선수출신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흔히 말하는 흰색 쫄바지를 입고 근육이 튀어나오는 나시 티를 입고 이리저리 다람쥐처럼 덤블링하는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두 지역 지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코헴회 박정서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언제나 간결하고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번엔 어떤 워딩이 나올지 수첩을 꺼내들고 주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굵고 강한 메시지가 나왔다. “성공하는 방법, 그것은 말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박 회장의 발언은 이번 지역청년 워크숍의 성사를 두고 말한 것이다. 표 지회장과 장 지회장은 지난 임원워크숍에서 지역모임을 함께 열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나눴고, 그렇게 나눈 의견이 바로 이날 행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한국코헴회 박정서 회장

커뮤니티에서는 무수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좀처럼 쉽지 않다. 우려의 목소리를 비롯해, 예산 마련과 행사 프로그램까지 여러 이야기들이 회자되면서 그 무게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슬그머니 내려놓게 되는 게 비일비재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디어와 함께 추진력까지 가세되면 이날 행사처럼 회원들에게 뜻 깊은 자리를 제공하게 된다.

이번 행사는 그야말로 청장년들의 이야기 보고와 같았다.

△장원 대구경북지회장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건강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수술해야 하는데 수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혼해야하는데 결혼할 때 어떻게 결혼까지 골인할 것인가, 결혼해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녀양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집안일은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그리고 직장 문제까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리고 고민하고 있는 수많은 키워드들이 쏟아졌다.”

대구경북 장원 지회장의 말이다. 그는 회원들이 나눈 사례발표를 귀기울여 듣고는 이 같은 말로 단번에 요약했다. 장 지회장의 요약은 더 이상 군더더기 없이 이번 행사를 깔끔하게 정리한 표현이다.

자신의 사례를 나눈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을 것 같았으나, 이 자리는 ‘남’들이 모인 자리가 아니였다. 형과 아우들이 모여서 대가족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는 그런 느낌이다.

△자신의 사례를 발표하고 있는 김동우 대구경북 대의원

“행님아~ 우리가 남이가?”
“그래 이 형은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 아우는 이런 상황이 되면 나보다 잘 대처하길 바래.”

김선경 복지사의 준비된 사례발표도 신선했다. 그는 커뮤니티에서 20여년 활동을 해왔고 최근 10년 동안은 전문 사회복지사로 혈우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따라서 수많은 실 사례를 경험했고 그 사례를 발표하는 시간은 이날 참여자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했다.

우리는 흔히 자신에게 처음 닥친 새로운 도전에 대해선 선배를 찾게 되거나 경험자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에게 닥친 문제를 하나둘 풀어간다. 이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 또는 겪어야 할 문제까지도, 이미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날 진행된 사례발표는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아까운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강안의원 이강안 원장의 등장은 ‘크라이맥스’였다. 환우들끼리 그저 건네고 받던 비의료적 상식이, 이 원장의 한바탕의 강연으로 의료적 상식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의 강연은 자신을 낮추고 시선을 낮추며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듯 진행됐다. 때에 따라서는 전문인으로써, 때에 따라서 환우 대 환우로써 “아내와 도망가라. 나도 도망갔다” 친구에게 조언하듯 편안한 강연은 참석자 모두의 강렬한 박수 속에 마무리 됐다.

△김철중 회원이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행님~ 오늘 가면 캠프때나 뵙겠네요?” 캠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이날 행사를 마무리하고 헤어진다는 아쉬움을 달래는데 도움이 됐다.

이날 청년들의 워크숍을 보면서 숨어 있는 조력자들이 꽤 많았다. 재정적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회원도 있는가 하면 1박2일 동안 먹거리를 준비해주고 뒷마무리를 정리해주던 어머니, 그리고 몸이 불편한 형들을 기꺼이 도와가며 잔심부름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아우환우들. 여기서는 봉사자라는 차원이 아니라 그저 형제간에 역할이 잘 나눠졌던 가족모임이었다는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이번 자리를 통해 ‘경험의 힘은 그 무엇보다 강했다’라는 걸 새삼 느껴본다. 우리들이 아직 접하지 못했던 과제들. 그 과제를 이미 겪었던 선배의 경험사례, 어쩌면 이 세상이 나에게만 살짝 보여주는 답안지일지도 모른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 사진=황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