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최초의 혈우병 비응고인자제제(피하주사)인 '헴리브라'가 글로벌 공급 5년만에 국내 혈우병A 환자에게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오는 8월부터 '그린진에프' 등의 응고인자제제(정맥주사)의 처방용량 급여기준이 확대될 예정에 있어 치료제 종류에 관계 없이 전반적인 혈우병 치료 여건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비응고인자제제와 유전자치료제 등 신의료기술이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수십년간 혈우병 환자의 표준치료로 자리잡아 온 응고인자 보충요법은 앞으로도 중요한 치료옵션으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는 전문 의료진들의 의견과도 일치하는 것이기도 해 더욱 주목할만한 현황이다.

▲ 4월7일 앰배서더서울호텔, 2023 동아시아 혈우병 포럼(East Asia Hemophilia Forum, EAHF)에서 강동경희대 박영실 교수를 만나 혈우병 치료제의 발전 현황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혈우병포럼에서 강동경희대 소아청소년과 박영실 교수는 '신약과 함께 기존 응고인자 치료도 계속 균형 있게 발전할 거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환자마다 생활패턴과 출혈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응고인자와 비응고인자는 당분간은 같이 발전할 것 같다"면서 "환자별로 최적의 치료를 할 수 있는 옵션이 늘어나서 좋고, 치료를 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옵션을 어떻게 적용할지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주 혈우병A 유전자재조합 응고인자제제의 외래처방 용량을 몸무게 kg당 30 IU 이상까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구체화함으로써 환자 상태에 따른 적극적인 치료와 유지요법이 가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8월 1일부터는 약물동태학(PK) 검사를 통해, 표준반감기제제(진타 등)의 경우 투여 후 48시간, 반감기연장제제(앱스틸라 등)의 경우 72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체내 응고인자 활성도가 1% 미만으로 떨어지는 환자에게는 최대 약품별 허가기준에 명시된 용량까지 처방이 가능하게 된다.

비응고인자제제의 보급 확대와 함께 응고인자제제의 처방용량이 현실화되는 '윈윈게임' 형태로 혈우병 치료환경이 개선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비응고인자제제는 정부와의 위험분담제(치료비용이 기존보다 큰 폭으로 소요될 경우 제약사 수익의 일부를 정부에 환원하는 제도)로, 응고인자제제는 제약사의 자진 약가인하로 재정건전성을 지키며 나아가고 있는 것은 현재의 변화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또한 혈우병 신약 개발이 비응고인자나 유전자치료에만 국한되지 않고 8인자제제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체내 유지기간을 비약적으로 늘려 주 1회 투여(알투비오)로 유지요법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도 제시되고 있어 정맥주사제에 대한 관심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영실 교수는 동아시아포럼에서의 미팅 말미에 "혈우병은 환자나 가족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이겨내야 하는 질환이다"라면서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같이 힘을 합쳐서 치료 여건도 개선하고 허들을 넘으면 우리 세대에 좋은 시기가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 새로운 기전의 혈우병 치료제들과 함께 기존의 응고인자제제들도 여전히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박영실 교수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