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치료를 제한 한다?”

한 마디로 ‘넌 센스’다. 21세기에 ‘생뚱’맞는 이 말은, 저 멀리 아프리카 콩고 민주공화국도 아니고 아시아의 후진국 방글라데시나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이야기다.

하나둘씩 조목조목 살펴보자.

먼저, 혈우병은 응고인자가 부족해서 지혈이 잘 안 되는 질환이다. 복잡한 질환이긴 한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족한 응고인자만 보충해주면 ‘일상생활에 거의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부족한 응고인자.’ 이것 하나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삶을 살게 된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혈우병은 ‘부족한 응고인자’만 유지해 주면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이치 때문에 혈우병은 다른 희귀질환과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혈우병은 ‘국가에서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치료비용이 ‘소모성으로 그치느냐’ 아니면 ‘생산성으로 이어지느냐’라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치료제를 적게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왜 혈우병 환자들이 불만이 많은가?”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적절치 못한 수준미달의 보험급여기준과 국가적 혈우병 치료시스템의 부재 때문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봐야 한다.

혈우병에 대한 ‘치료의 목적’은 무작정 ‘소모성 치료’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혈우병 환자들은 출혈로 인한 각종 2차 장애가 발생되면서 소모적 사회적비용은 급격히 늘어나게 되고 사회구성원으로써 정상적인 복귀는 꿈조차 꾸지 못하기도 한다.

혈우병, 보건당국의 제도적 장치와 엉성한 보험급여기준

보건복지부는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지원 사업’이라는 제도를 마련해, 혈우병 등 총 134종의 희귀질환에 대한 치료비지원을 해 오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의료비의 경제적 부담이 과중하여 가계의 사회·경제적 수준 저하가 우려되는 희귀·난치성질환자에 대해 의료비지원을 통하여 대상자와 그 가족의 사회경제적·심리적 안녕을 도모하고 국민건강 및 복지수준을 제고한다”는 취지이다.

특히 혈우병의 경우는 “그 가족의 사회경제적·심리적 안녕을 도모하고 국민건강 및 복지수준을 제고한다”는 것을 넘어서 “정상적인 삶과 사회적 활동”을 의미한다.

혈우병환자들에게 발생되는 치료제의 본인부담은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지원 사업’으로 국가에서 책임을 질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혈우병 치료의 제한’이라는 뜻은 치료제의 ‘보험급여기준’을 놓고 불거져 나오는 말인데, 왜냐하면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지원 사업’은 ‘보험급여를 적용받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혈우병 체료제의 ‘보험급여기준’을 정확히 살펴봐야 한다.

현행 보험급여기준에는 혈우병 A형 환자가 병원에서 매월 10회분(15세이하의 경우 12회분)까지 치료제의 보험급여를 적용받게 되어있다. 혈우병 B형 환자는 7회분(15세이하의 경우 12회분)으로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치료제 급여제한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비용’을 떠올릴 것이다. “비용 때문에 제한하자”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1차원 ‘아메바’적 사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2차 장애가 발생하고 2차 장애가 발생하면 사회적 비용은 더욱 크다고 강조한바 있다. 이 부분을 간과한 것이다. 더구나 횟수의 제한을 두게 되면서 발생되는 오류를 생각지 못한 것이다.

제한된 ‘처방횟수’ 때문에 오히려, 치료제가 필요하든 아니든 제한된 최고횟수까지 처방을 받게 된다. 그러나 횟수의 제한이 없다면, 필요할 때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한된 최고 횟수까지 처방을 받는다’는 개념이 없어진다. 전문 의료진에 따라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처치에 필요한 만큼 처방을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넌 센스’같은 횟수제한은 있을 필요가 없다.

‘재정을 아끼겠다’며 혈우병환자들에게 ‘치료제한’을 둔 것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 내외 혈우사회에서 저명한 혈우병 한 전문의는 혈우병을 놓고 잣대를 잘못 적용한 심평원의 과거 오류를 꼬집었다. 그는 “1999년 혈우병 약 처방을 한 달에 3일 제한적 사용허가로 인해서 혈우병을 잘 치료해 주던 대학병원들이 년 2억씩 삭감 당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되어 많은 대학병원들이 혈우병환자 치료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정 전문의를 언급하며 “전문의가 전과하는 경우도 발생됐다”고 덧붙였다. 학생이 다른 과목으로 교과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문의가 ‘삭감’ 때문에 다른 진료과목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횟수제한’ 조정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지금의 10회~12회라는 식의 치료제 처방제한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메바’같은 기준이 마련되면서, 대학병원들은 ‘보험급여기준’만 적용하면 외래에서는 삭감당하는 일이 급격히 줄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환자들의 건강상태는 어찌됐을까? 아메바같은 기준을 정확히 따라가는 환자들의 몸은 거의 아메바 수준이 되어가고, 추가처방을 놓고 환자와 의료진이 얼굴 붉히며 다툼을 벌이는 일도 발생했다. 그러다가도 ‘환자가 갈 병원은 없어진다’는 다른 환자들의 눈총을 받으면 그 환자는 환자 사회에서도 멀어지게된다. 결국 아프던 안 아프던 무조건 ‘최고 처방량’까지 “악착같이 약 타자”라는 생각으로 ‘스팀 팩 맞은 마린’처럼 전투 모드로 급변한다.

반면, 아메바 같은 보험급여기준을 무시하고, 전문 의료인이 제시한 ‘혈우병 정공법’으로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의 건강상태는 호전될 수밖에 없다. 전문의사의 정확한 진단에 따라 예방요법을 철저히 하고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예방요법’ 보험급여기준은 논란의 여지없이 ‘왕따’시켜야 하는 기준

냉정하게 말해보면, 단언컨대 지금 건강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성인 혈우병 환자들은 대부분 건강보험급여 기준을 무시한 환자임에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범법자만 생존하게 되는 혈우병 사회라는 뜻이다.

이 말은 또 무슨 말인고 하니, ‘예방요법(보충유지요법)’을 말하는 것인데, 먼저 전제해 둘 것은 여기서 말하는 ‘예방’이라는 것은 ‘미래에 문제될 것을 미리 준비한다’라는 단순한 뜻이 아니다. 감기예방 같은 차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혈우병에서 ‘예방요법’이라는 것은 프로플락시스(prophylaxis)라고 해서, 혈중 응고활성 농도를 정상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물론 '정상농도'라고 해서 100%까지 올리라는 게 아니다. ‘자연출혈’이 없을 정도만큼만 혈중 응고인자 농도를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국제혈우사회에서 혈우병 치료의 기본이다. [이와 반대로 출혈됐을 때 주사 맞는 것을 온-디멘드(on-demand)라고 말한다.]

국내에서도 혈우병 교과서 등 일체의 혈우병 관련 문헌에서는 혈우병 치료의 기본을 ‘프로플락시스’로 못 박아 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행 보험급여기준은 어떠한가? 프로플락시스는 혈우병환자에게 ‘연령제한’으로 묶어 놓고 있다. 성인 환자에게는 플로플락시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미 혈우병 환자들에게 ‘예방요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교육하고 그렇게 치료를 해왔는데, 난데없이 ‘연령제한’으로 ‘예방요법’의 보험급여 기준을 적용한 것은 엉성해도 너무 심할 만큼 엉성한 보험급여 기준이다.

이와 관련해서 혈우병 한 전문의는 “(혈우병 환자에게)출혈은 출생부터 살아가는 동안 평생 발생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 경제적 여건으로 2011년 예방치료의 시작에는 만 14세로 제한했다”며 “2년 후 17세 미만으로 확대되었으나, 점차 연령제한의 철폐 필요성이 있다. 선진국의 예로는 연령제한을 두지 않고 진료의사가 재량으로 실시하고 삭감의 예는 없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심평원에서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제한’을 뒀단다. 매우 코미디같은 경우다. 게다가 몇 년 후에는 또다시 17세로 18세로~ 이렇게 계속 고시를 바꿔가면서 코미디빅리그를 펼치고 있다. 이런 황당한 기준을 그대로 따른다면 혈우병 환자가 18살까지는 예방요법을 하다가 19살이 되면 예방요법을 못하게 되는, 완전 도토리묵 같은 일이 발생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출생년도로 제한’을 뒀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주장하는 ‘경제적인 면’도 급격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을 테고,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됐을 것이다. 여기서도 1차원 ‘아메바’적 사고의 보험급여 기준이 신랄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나이제한’이라는 발상이 어디서 나왔는지, 기막힌 노릇이다. 과거에는 복지부(특히 심평원)가 혈우병 환자들에게 혈액제제와 유전자재조합제제를 놓고 ‘나이제한’을 걸어 놓고 베팅을 한적이 있다. ‘러시안룰렛’도 아니고 왜 그런 기준을 만들어 놓고 환자들을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성난 혈우환자들의 헌법소원으로 결국 위헌판결을 받고는 꽁무니에 불이 붙어서 고시를 개정했다. 이런 전력이 있는 복지부가 이번에는 혈우병 환자의 기본적 치료인 ‘예방요법’을 놓고 얼토당토 나이제한을 걸어 뒀다.

기가 막히지만 어쨌든, 환자들은 이 기준을 완전 무시한다고 봐야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건강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환자들은 이런 어설픈 아매바 기준을 적용하면서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 이미 보험급여 기준과는 달리 전문의료진들에게 익혀왔던 ‘예방요법’으로 자신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심평원에서도 뭐라 ‘딴지’를 걸 수 있을까? 삭감의 칼을 들이댈까? 이미 환자와 혈우병 전문의들은 ‘예방요법’을 독려하며 ‘혈우병의 기본적 치료’ 교육이 되어 있는데? 이건 마치 의사와 환자가 똘똘 뭉쳐서 ‘나이제한 예방요법’이라는 아메바 기준고시를 왕따 놓고 있는 거다.

예방요법 연령제한, 처방 횟수제한, 게다가 횟수제한 처방 마저도 한번에 처방해 주는게 아니라 병원에 매월 2번에서 4번이상 내원해야 한다. 이렇게 겹겹 2중3중으로 혈우병 치료에 대한 ‘치료제한’ 조치를 걸어 두고 있으니 “치료를 제한하는 게 무슨 복지국가인가?”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겠는가?

일부에서는 지금 환우들의 몸 상태를 놓고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납득될 수 없는 말이다. 마치, 과거에는 환자들이 관절장애가 소아기 때부터 나타났지만, 지금은 청장년기때로 늦춰졌으니 개선된 것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근본적으로 2차 3차 장애를 없앨 생각은 않고 단지 뒤로 미뤄 놓겠다는 것인데 참 황당한 발상아닌가?

[헤모필리아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