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관리에 관한 다양한 정보는 환자의 유년기 초년기에 맞춰있다.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산전검사를 통해 미리 태아의 정보를 확인해서 관리를 준비하기도 한다. 이같이 이유는 혈우병 환자의 유년기 생활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절 관리부터 보충요법 등으로 최대한 정상적인 중장년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혈우병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중년이후 노년기에 대한 정보가 사실상 전무한 상태이다. 혈우병 국제사회에서는 혈우병 환자들은 노년기를 일찍 준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으나, 국내에서의 대부분의 의료 써비스 시스템은 ‘새로운 환자’와 ‘소아 환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누구나 맞이하게 될 노년기 생활. 혈우환우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 의료진과의 잦은 만남과 체계적 관리

혈우병 환우들은 유치원에 진학할 쯤 되면 ‘자가요법’에 대한 교육을 통해 초등학교시절부터 ‘자가주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부모가 주사를 놔 주다가 스스로 주사하게 되면 상당부분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혈우환우에게 ‘자가주사’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미취학 아동일 경우 부모의 역할이 크지만,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좀 더 많아 진다. 자신이 사용하는 치료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 물리치료와 근력강화운동법, 의료 상담을 언제라도 받을 수 있는 의사선생님, 약품을 탈수 있는 병원과, 수술 또는 응급상황이 발생됐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우들(인근에 거주하는)과 환우단체(한국코헴회)와의 관계는 평생을 함께 해야한다.

노년기에 접어들기 전에 또 준비해야 할 것은 심리 상담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질풍노도와 같다’는 청소년기에 자신의 건강에 대해 정서적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노년기에 또 한 차례 찾아올 자신의 건강에 대한 박탈감을 준비해야 한다. 최근 혈우사회에서 심리요법에 대한 높은 관심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처럼 심리적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의료진을 확보해야 한다. 소아과 혈액내과 치과 정형외과 내과 등 다양한 진료과목에 더하여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자. 또한 치과를 잊어서는 안 된다. 외국의 혈우병센터(HTC)는 치과를 상시 운영하는 곳도 많다. 국내는 혈우재단의원(원장 유기영)을 통해 치과 협진을 의뢰할 수 있고, 김효철내과(원장 김효철)에서는 협진으로 혈우병 환자의 인플란트도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 독거형태의 환우관리 시스템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일반인들에 대한 노인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 보태어 ‘혈우환우’의 노령기는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닥쳐올 혈우환우의 노년기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혈우환우의 노년기는 온전한 가족의 형성이다.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가 있고 손자들이 있다면 안정적인 가족형성이 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수의 환우들은 아직 미혼인데 그들에게 독거형태의 관리 시스템을 제공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외국사례를 보면 사회보편적인 복지망 이외에 혈우환우대상의 다양한 써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료진의 정기적 가정방문부터 청소 세탁 음식(반찬) 공급 써비스가 있으며 야외 드라이브나 놀이시설 동반 써비스까지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대상자’ 관리 써비스처럼 인식될 수 있으나 써비스의 차원이 질적으로 다르다. ‘기초생활’에 대한 낮은 단계의 써비스가 아니라 ‘삶의 질’을 위한 향상된 써비스이다. 국내에서의 써비스 개념은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의료비 지원, 교육비 지원 등, 그저 ‘비용’으로만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혈우병 관리 시스템은 보다 진보한 개념이 필요하다. 물적지원 뿐만 아니라 정서지원을 넘어서, 라이프 플래닝까지 많은 부분에 맞춰져야 한다.

◇ 재정확보, 민간보험과 연계된 써비스 개발

국민건강보험은 선진국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민간보험의 시스템은 미비하다. 최근 혈우병환우들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이 나오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적금을 드는 수준과 유사하다. 따라서 혈우재단 등 기관에서 혈우환우들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수립이 필요하다. 민간보험과의 연계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 보험회사의 보험개발은 통계와 자료로 상품이 개발되는데, 혈우환우에 맞는 민간보험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혈우환우들의 치료이력에 대한 로우데이터가 필요하고 이 데이터를 통해 확보될 수 있는 재원규모를 측정해야 한다. 그리고 환우들에게 필요한 의료써비스 이외의 복지써비스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해야 한다.

혈우환우들에게 소요되는 의료비만 해도 연간 지출규모는 상당하다. 이 부분 중 일부를 적립하거나 외국의 선례처럼 기업에서의 적립펀딩이 도입되면 국내의 ‘민간보험’ 개발이 가능해 진다. 제원에 따라 70세 이상의 환우대상으로 무료 복지 써비스를 시작하면서 차츰 60세 이상의 환우 등으로 연령대를 낮춰지게 되면 혈우환우들에 대한 소아복지와 노령복지가 함께 제공될 수 있다.

◇ 혈우병 장수 프로젝트, ‘출혈 Zero, 고민 Zero, 노후 걱정도 Zero’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는 모두 갖고 있다. 신규 환우의 부모는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앞서 진단받은 환우 부모에게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다. 의료진보다 소통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청장년환우들도 마찬가지다. 대체적으로 선배를 통해 얻는 의료경험 상식이 더 높은 신뢰감을 준다. 통증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서로 공유하면서 진통제에 대한 정보는 나누기도 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에 대한 정보도 서로 교류한다.

그러나 우리 혈우사회는 바람직한 노령환우들의 삶에 대한 정보는 교과서적인 게 마련되지 못했다. 혈우환우가 장수한다는 것은 혈우사회의 모든 관계자가 바라는 지극히 공통된 관심사 일 것이다. 따라서 삶의 질이 낮은 단계로의 장수가 아닌, 혈우환우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삶의 질이 풍요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목표로 스페셜 써비스를 만들어가야하지 않겠는가. 일반인들도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가며 살고 있는데, 혈우환우들은 고된 삶의 터전속에서 노후까지 살펴볼 여유가 충분치 않다. 따라서 ‘나홀로’식 노후준비가 아닌 ‘공동체’적 노후준비가 필수적이라고 할수 있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