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6.27 위헌판결’이 시사하는 또 다른 관점

“출생 시기는 임신, 출산과 같은 우연한 사정에 기인하는 결과일 뿐 이 같은 이유로 환자에 대한 치료제 급여 필요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불합리한 차별로 평등권을 침해한다”
- ‘복지부의 혈우병 치료제의 나이제한 급여적용’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판결문 中 2012. 6. 27

혈우병 환자들이 ‘나이제한 치료폐지’를 위해 투쟁했던 이 전쟁은, ‘영토’를 놓고 치열히 싸웠던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보다 더 긴 싸움이 아니었을까? 환자들의 싸움은 100년 전쟁보다 짧았을지 모르지만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겪었던 희생은 적지 않았다.

혈우병 환자들이 ‘복지부에서 묶어 놨던 나이제한’을 풀기위해 애쓴 기간 동안 환자단체인 코헴회 회장은 수차례 교체됐고 사무국장도 간사도 여러 이유로 교체되고 바뀌었다. 이 기간에 함께 싸웠던 환우 중 일부는 고인이 되기도 했다. ‘복지부의 나이제한 급여적용’은 환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넘어 갈기갈기 찢겨 분열해야했고 얼굴을 붉히며 서로의 가슴에 뽑지 못할 비수를 꽂기도 했다.

복지부에서 한치 앞을 보고 행정적 결정을 내렸어도 환자들의 참혹한 설혈전(舌血戰)과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증오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복지부는 한치 앞도 못 본 꼴이 됐고 환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힘없는 이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헌법재판소까지 갔다. 환자들은 바짓가랑이를 잡듯 처참하게 질질 끌려가서 ‘약품을 나이로 제한하면 안된다’는 결과를 마침내 받아냈다. 결국 당연한 결과를 이끌어 내기까지 지저분한 쓰레기만 잔득 쌓아 놓게 된 셈이다.

그 쓰레기들은 분노와 갈등 그리고 증오이다. 환자들 간의 갈등, 환자와 의사와의 갈등, 환자와 제약사와의 갈등, 환자와 복지부의 갈등... 즉 국가와 국민의 갈등 등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버렸다. 오랜기간 쌓여왔던 이 갈등의 산을, 그 쌓였던 기간만큼이나 오래 걸려야 치울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이제한 급여제한’이 헌재로부터 위헌결정 되자, 후련한 마음과 함께 미묘한 허탈함이 느껴진다. 허탈함, 그것은 ‘이겨야 본전’인 싸움이었기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아닌가 싶다. 이른바 복지부의 ‘혈우병 급여고시’를 살펴보면 오는 2013년 1월1일자로 나이제한보험급여가 풀리게 되어 있었다. 고작 6개월 정도 앞당긴 것이다. 그래서 이리도 허탈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6.27 위헌판결’이 시사하는 또 다른 중요한 관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지금까지 주장해온 환자들의 순수한 목소리가 ‘유의미 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여러 목소리에 더욱 무게 중심이 실리게 됐다. 환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비단 ‘치료제의 나이제한’ 뿐만 아니기에 귀 담아 듣고, 재조명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명분이 뚜렷해진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결과는 ‘이겨야 본전이었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니 끝낼 수 없다. 그동안 속병 앓고 쌓아두었던 것을 쏟아내고 환기시켜야 한다.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수많은 숙제들, 그 숙제들을 낱낱이 풀어놓자. 나이제한 급여확대를 ‘헌법소원’까지 미뤄놓게 만든 일부 만행자(蠻行者)들에게 분노를 표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