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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치료제를 만드는 혈우병 환우’…목암연구소 황성호 박사를 만나다“주저하지 말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내자”
유성연 하석찬 기자  |  tjddus@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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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8  04: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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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혈우병 환우이면서 혈우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환우가 있다. 이미 많은 환우들에게 잘 알려진 황성호 박사이다. 우리 환우들이 사용하게 될 치료제이면서도 자신이 직접 사용하게 될 치료제. 이런 일을 하는 느낌은 어떨까?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근무하고 있는 목암연구소를 방문했다. 그를 만나보자.

유기자 : “박사님 안녕하세요.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황박사 : “안녕하세요~ 목암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성호입니다. 처음에 했던 인터뷰는 아주대학교에 있었을 때였고, 두 번째는 제가 목암연구소에서 1년 정도 근무했을 때였고, 오늘까지 포함하면 3번째가 되는 거 같네요.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저도 역시 혈우병 환자이고 지금 혈우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유기자 : “다둥이 아빠로 알려져 있는데 가족이 어떻게 되시나요?”

황박사 : 하하하 현재 아들 삼형제를 키우고 있구요.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가 4학년, 막내가 올해 1학년입니다. (유기자 : 혹시 아이들도 아버지가 혈우병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요?) 제가 따로 말해준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고 있을거에요. 아직 말을 해줘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어릴적부터 제가 주사 맞는 모습을 봐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냥 주사 맞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왜 맞나’라는 호기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유기자 : 남자 아이만 셋인데, 말썽은 안 피우나요?) 하하하 말썽 피우죠. 특별한 건 없을 것 같은데요.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기자 : 삼형제 중 누가 제일 많이 닮았나요?) 음~ 주관적으로 셋째가 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유기자 : “아이들과 같이 목욕탕도 자주 다니시나요? 느낌이 좀 남다를 거 같은데요?”

황박사 : 별 느낌이 없는데요. 하하하 제가 좀 무던한 성격인지 잘 못 느꼈어요. 김 기자님은 남다른 느낌이 있었나요? (김기자 : 저는 아이들과 같이 한 번 가봤는데요. 아이들이 너무 힘들게 해서 제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나온 거 같아요) 저희 아이들도 목욕탕에 가면 찬물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감정적인 것을 느낄 틈이 없던 것 같네요. 아마 나중에 아이들이 2~30대 정도 되면 뭔가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인터뷰 중인 황성호 박사와 헤모라이프 기자들(사진=김승근 주필)

유기자 : “목암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황박사 : 198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녹십자 선대 회장이신 허영섭 회장님이 설립하신 연구소 이구요. 그 당시 B형간염 치료제로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사회 환원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구소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연구를 진행했었고 현재는 녹십자에서 초기 연구하는 업무들을 주로 맡고 있는 상태입니다. 선대 회장님의 첫 번째 사회공헌이 이 연구소이고, 두 번째가 혈우재단이었던 거 같습니다. 목암연구소는 녹십자와 공동연구 협약을 통해 기초연구부터 개발연구까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로 운영되는 연구소는 국내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대부분 기업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연구소가 대부분이구요. 약간 성격이 독특한 연구소인 것 같습니다.

유기자 : “박사님은 언제부터 근무 하셨나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황박사 : 저는 2011년 11월에 입사했습니다. 웃긴 얘긴데요. 저는 목암연구소에 대해 구분하기 좀 어려웠고요. 입사하기 전까지도 몰랐어요. 2006년에 한국연구재단 과제를 제출할 때 기업이랑 매칭하는 제도가 있었어요. 매칭을 부탁드리면서 녹십자와 연구가 시작됐는데요. 그때부터 혈우병 연구를 수행하다가 2010년에 향후 진로를 공부를 그만할까 고민하던 중에 산업계로 전향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다른 회사에 지원 안하고 녹십자에 처음 지원해서 입사하게 됐고 많은 연구를 하게 됐죠.

   
▲전공을 잘 살려 연구소에 입사하게 된 황성호 박사, 천직이자 운명같은 일을 만나게 됐다. (사진=황정식 기자)

하기자 : ‘공부를 그만할까’ 고민하셨다는 건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하신건가요?

황박사 : 박사학위를 받고 포스닥(박사 후 과정)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많은 고민을 하시죠. 우리나라 수치는 정확히 잘 모르겠는데 미국에 한 해 박사과정이 약 8만 명이라고 가정하면, 그중에 포스닥까지 하는 사람은 6만 명 정도 된대요. 6만 명 중에 정규직 쉽게 말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사람은 2만 명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나머지 분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무언가 해야 돼요. 산업계가 아닌 다른데서 일하시거나 기타 비정규직으로 학교에 남아있거나... 이런 코스를 대부분 거치는데 저도 그 당시에 같은 고민을 했던 거 같아요. 계속 공부를 하기에는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부담 때문에 고민하다가 산업계가 아니면 아예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연구했으니깐 연구소에 지원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했었죠. 제가 했던 연구가 혈우병 연구이기 때문에 혈우병 연구는 국내에 하시는 분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녹십자에 지원하고 아니면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 했었죠.

유기자 : “그런 고민을 하던 시기에 인연을 갖고 공동연구를 했던 녹십자쪽에 지원을 해보셨던 거군요.”

황박사 : 2006년에 연구 할 때 재미있었던 게 거기서 했던 과제가 문제해결이랑 인력양성 과제연계 라는 코스였어요. (김기자 : 항체에 관련된 거였죠?) 맞아요. 항체가 왜 생기는가에 대해 사실은 저를 포함한 많은 혈우병 연구자들이 고민이었죠. 첫 번째는 항체 연구보다는 유전자 분석을 먼저 해야겠다고, 돌연변이 조사를 해보고 싶어서 지원을 했고 많은 샘플링이 필요했었는데요.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광주에 갔었죠. 잘 아시는 이강안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죠. 광주의원에 가면 도와줄 수 있도록 얘기를 해주겠다. 그래서 광주로 갔죠. 한번 설명회를 하고 동의서 작성과 연구 참여 설명문을 드렸습니다. 그 어머님 성함이 기억이 안 나네요. 많이 도와주신 분이데, 본인이 채혈한 걸 모아서 광주 버스터미널에서 택배로 보내주시면 수원에서 픽업해서 분석하는 실험을 했는데 정말 그때 많이 도와주셨죠.

환우분들도 그렇고 어머님들도 많이 도와주셔서 그때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유전자형 조사하고 항체가 왜 생길까 연구하고 일련의 일들을 쭉 했었죠. 원래 저는 혈우병 연구를 한 게 아니라 박사과정 할 때 처음에는 근위축병 연구를 했었어요. 그런데 2006년도에 벤쿠버 WFH총회에 참석해서 보니까 연구할 수 있는 게 많이 있더라고요. 벤쿠버 이후에 연구과제 제안을 10월인가 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혈우병 연구를 시작하게 됐죠. 이제까지 하던 연구주제를 확 바꾸는 거여서 고민됐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걸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2006년도가 환우회와 재단이 갈등의 시기이기도 했었지만 저를 위해선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었던 것 같았죠.

하기자 : “현재 진행하고 계신 연구는?”

황박사 : 녹십자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죠. 차세대 혈우병 치료제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에 대해서 저 오기 전에도 몇분들이 연구를 하고 계셨었는데 제가 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됐었습니다. 2012년도에 9인자 롱액팅 연구를 하다가 어려움이 있어 접었고, 그 다음 2013년도에 했던 게 지금 하고있는 ‘Anti-TFPI’라는 과제를 했고 또 얼마 후 ‘라페이트’ 롱액팅 팩터8 과제 시작을 도와주었습니다. 아마 저에게 2006년도가 변곡점이 되고 그 이후에 연구가 이어지다 보니까 녹십자에 또 다른 치료제를 개발하는 중요한 변화가 됐던 것 같아요. 돌아보니 되게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하더라고요. 현재 녹십자에서는 차세대 혈우병 치료제로서 Anti-TFPI랑 라페이트를 동시에 연구하고 있습니다.

유기자 : “연구하시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황박사 : 어려운 점이 어렵습니다. 하하. 일단은 저희가 전임상으로 동물실험을 한다고 해도 이후 사람에게 투여했을 때 얼마나 작용을 할지, 안전성이 확보가 될지가 중요한 포인트거든요. 저의 우려죠. 사실은 제가 (치료 주사를) 맞기도 하고 저와 같은 친구들도 맞을 약이기 때문에 다양한 동물모델에서 확인하고 싶은데 충분히 하기 어렵다는 게 저의 고민이고 어려운 점인 것 같습니다.

   
▲지난 2017년, 한국코헴회 서울경기지역 청소년 회원과 보호자들은 녹십자의 치료제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목암연구소를 방문해 개발과정과 연구소 일대를 둘러보고 연구원들과 장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황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목암연구소를 견학하고 있는 서울경기지회 청소년 환우들과 보호자들 모습

김기자 : 글로벌 혈우병치료제 개발의 최근 동향은 어떤가요?

저의 예측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 해주시고요. 최근 동향은 환자 투여 편의성을 증가시켜주는 게 방향인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피하주사 그리고 프리필드시린지 이 두 가지가 대세입니다. 이미 프리필드시린지는 정착되어 가는 단계고, TFPI랑 AEC910이라고 하는 에미시주맙 이런 것들이 서브큐(피하주사)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가 앨라일람이라고 하는 RNAI 기술을 이용하는 회사도 있는데 거기도 서브큐로 피튜시란이라는 제품을 임상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투여 간격을 늘려주는 게 세 번째 개발 동향인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우려스럽기도 해요. 우리가 예방요법을 하더라도 첫 번째, 두 번째 날은 안전한 거 같은데 삼일 째 날은 뭔가 불안하기도 하고 어떨 땐 예방요법을 하더라도 출혈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하기자 : 글로벌 동향 중 유전자 치료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황박사 : 많이 연구하고 있더라고요. 여러 번 얘기 했지만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임을 강조하면서... 유전자 치료는 개인적으로 반대 하는 상태입니다. 반대라는 표현 보다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될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유전자 치료 회사들이 처음에 시도하는 게 혈우병 분야에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답은 되게 쉽게 나와요. 적은 단백질만으로도 발현이 되도 되고 혈액 내에서 검출이 가능하고 효과가 금방 보일 수 있어요. 다른 질환의 유전자 치료라고 하면 세포를 교정해주거나 암을 죽이거나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려운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혈우병을 대상으로 많이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9인자가 8인자 보다 유전자 사이즈가 작아서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9인자 유전자치료를 먼저 시도하는데, 9인자 롱액팅 약품은 반감기가 다섯 배나 되고 임상을 많이 해봤는데 위험요소가 별로 없더라고요. 지금도 일주일 또는 열흘에 한 번만 주사해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데 굳이 내가 유전자 치료를 해야 될까 하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들고... 저라면 안할 거에요. 또 하나의 허들로 생각되는 것은, 유전자 치료로 교정된 정상세포의 수는 점점 감소하게 될 것이고 이때 다시 한 번 유전자 치료를 수행해야 하는데 기술적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세 번째 허들은 비용입니다. 정확한 값은 모르겠지만 한번 시술에 3~4억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건강보험으로 커버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기자 : “5월 WFH총회,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황박사 : 글쎄요~ 따로 가진 목표는 없구요. 열심히 참석해서 열심히 듣고 보고 배우고 얘기하다 오는 게 다 인 것 같아요. (김기자 : 학술세션 외에 둘러보고 싶은 곳을 검색해 보시진 않았나요?) 아니요. 힘들어서 돌아다니지 못할 것 같아요. 하하하 심지어 숙소도 학회장 바로 옆으로 잡았어요. 어딜 간다는 계획을 잡기 보다는 오히려 이번 학회의 동향을 많이 파악해 오는 게 목표가 될 것 같네요.

   
▲2016년 올란도 WFH학술대회에서 
   
▲2016년 올란도 WFH학술대회에서 김승근 주필(우)과 김태일 기자(좌)함께 (사진은 ‘건방진녀석들’ 이라는 컨셉^^;;)

유기자 : “살아오면서 박사님께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나 인물이 있다면?”

황박사 :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2006년도 벤쿠버 WFH총회에 참석했던 때가 제 삶에 있어서 가장 변곡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참석한 학회에서 여러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고요. 김효철 선생님도 그때 처음 뵈었는데, 그 이후로 연구할 때도 선생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고, 연도가 정확히 생각이 안 나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혈액학회에 같이 데려가 주시기도 하셨어요. 제가 크게 영향받은 인물을 꼽자면 김효철 선생님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기자 : 박사님의 보물 1호는?

황박사 : 보물 1호라... 제가 지금까지 써왔던 플래너, 기록들이 보물에 해당될 것 같아요. 친구가 2004년 정도에 처음 프랭클린 플래너라는 것을 선물로 준 적 있었어요. 그때 그 친구가 한 말이, ‘프랭클린 플래너를 주는 건 수첩을 선물하는 게 아니라 성공을 선물하는 거’라고... 처음으로 업무나 일에 대해서 시스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저한테 보물이 되었어요. 최근에는 만년필을 선물로 받았는데, 시간기록 시스템과 같이 만년필도 보물 1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황기자 : “한국 혈우사회에 전하고픈 메시지 한마디 해주세요”

황박사 : 저를 이미 많이 보신 분들도 계실 거고, 같이 여름캠프 가셨던 분들도 계실텐데... 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렇게 되었네요. 지금은 혈우병을 어떻게 하면 잘 치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약물 연구를 하고 있구요. 나중에 임상시험 할 때 많이 참여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제가 혈우사회 구성원들께 하고 싶은 말은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어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고 그 시간을 돌아봤을 때 본인에게 소중할거라고 생각돼요. 본인에게 충분히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으니까 너무 주저하거나 우려하지 마시고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년 한국코헴회 여름캠프에서 강연하고 있는 황성호 박사

황 박사와의 인터뷰를 마칠 쯤, 창밖으로는 비가내리고 있었다. 한동안 탁한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모처럼 대기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오늘 황 박사와의 만남도 이 같은 비처럼 마음을 정화시키는 대화가 오고갔다. 우리 혈우사회의 미래는 황 박사와 같은 인재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도전 때문에 청신호가 켜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응해주신 황성호 환우박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헤모라이프] 유성연 기자 하석찬 기자 (사진영상=황정식 기자 김태일 기자)

   
▲ 헤모라이프 편집부 기자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황성호 박사와 기념 촬영을 가졌다.

 

[쿠키사진 / 기자메모]

한 시간 남짓 인터뷰를 마치고 신축된 목암연구소 내에 구내식당에서 오찬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니 꽤 많은 직원들이 식당으로 모였다. 대규모 인원들이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할수 있는 구내식당은 규모가 상당히 컸다. 줄을 서서 자신이 먹을 만큼씩 식판에 덜어 자리에 앉았다. 외국에서 온 연구원들도 꽤 많이 보였다. 

   
▲점심식사는 A코스 B코스 두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하게 된다. 사진은 김기자님이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장면
   
▲아하! 잔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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