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귀질환 의료지비원기준, 건강 위한 사다리 돼야”환자 치료 역행하게 하는 부양의무자기준 등 불합리한 제도에 대해
한국코헴회 이남일 선임간사  |  hemo@hemophil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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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5  23: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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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코헴회 이남일 선임간사

전세계적으로 6,000여 종이 넘는 희귀질환이 보고되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이 적절한 치료법 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단조차 받기 어려워 평균 일곱 번의 오진 끝에 비슷한 병명을 부여받게 된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희귀질환자들은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며 ‘의료 난민’과도 같은 삶을 살아오고 있다. 다행히 몇몇 질환에 대해서는 비록 완치까지는 아니지만 기적처럼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으며 최근의 유전자치료기술 발전으로 희귀질환자들은 어쩌면 완치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자존을 지키는 데 계단이 너무 높다

혈우병을 포함한 130여개 희귀질환 환우들은 2001년 정부의 ‘희귀난치성질환 의료비지원제도’가 시행되면서 값비싼 치료비용으로부터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이제 ‘생존의 기로’를 넘어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자존의 길’을 걸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치료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모든 환우가정에 동등하게 열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질병관리본부는 매년 ‘희귀질환 의료비지원제도’를 시행하면서 대상 환우가정에 대한 소득과 재산 등의 자격기준을 ‘기준 중위소득’에 근거하여 마련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일정 자격기준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정작 당사자인 희귀질환 환자가정의 특성을 잘 반영하지 못해 이들의 건강한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면, 심지어 건강을 악화시키고 가정불화의 원인으로까지 된다면 제도의 사회적 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희귀질환 환우가정의 특성을 반영해야

혈우병을 위시로 한 많은 희귀질환의 경우 유전에 의해 발병하면서 적지 않은 가정이 이혼이나 별거의 상황을 맞기도 하며 환우 세대에서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자녀를 낳지 않고 생활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술적으로만 계산되어진 환자가구, 부양의무자가구 재산소득기준을 갖다 대는 것은 아픔을 겪고 있는 환우가정에 이중 삼중의 짐을 지어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부양의무자가구 기준은 태어날 때부터 아픔을 안고 태어난 환아와 그 부양책임을 홀로 견뎌온 한부모 가정의 경우, 환우가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2년마다 상처를 헤짚어야 하는 가혹한 형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각종 사회복지제도에 있어 혹독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주거급여 등 일부 분야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는 등 진전이 있었다고는 하나 다른 분야에서의 폐지는 ‘먼 미래의 완화’수준으로 격하되었고, 생명과도 직결된 우리 희귀질환 부문에서는 논의조차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 혈우병 환자단체 한국코헴회(회장 박정서)는 전현희 의원(더불어민주당 / 서울 강남을)과 공동주최로 ‘세계 혈우인의 날’을 맞아 4월17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제도의 그늘, 환우가정엔 근심의 그늘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 아니더라도 불합리하게 지원제도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경우는 많다. 처분할 수도, 깎아서 먹을 수도 없는 집과 농지 가격이 몇 년 새의 부동산 열풍과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내몰려 갑자기 솟구쳐 올라 약값을 지원받지 못하게 된 가정이 너무도 많다. 서울에서 겨우겨우 집 한 채를 마련하거나 젊은 환우가 눈물겹게 양가의 허락을 얻어 결혼을 한 후 맞벌이를 이어가면 지원에서 탈락하는 것은 자동적이다. 부동산이 늘었다고, 소득이 늘었다고 좋아할 수 없는 이유다.

지원범위 안에 들어있는 환우들에게 역시 부모로부터 세대를 독립한지 30년이 넘었으나 재산조사 때마다 부모의 재산공개를 요구하며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경우나 반대로 시집 장가 간 자녀를 불러다가 2년마다 조목조목 소득이며 빚, 아파트 값과 자동차 시세를 물어야 하는 환우들의 숙제는 너무도 비인간적인, 가축적인(“아들아, 네가 나를 길러주는데 가난하니까 나라에서 약은 준다더라”) 관계를 강요한다. 이것이 보건당국에서 원하는 희귀질환 환우들의 ‘자존’인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희귀질환 의료비지원제도의 맹점은 기준에서 탈락해 약값을 못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의 적극적인 진료를 가로막아 그나마도 건강이 악화되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데에 있다. 특히 혈우병 약값은 고가이다. 성인의 경우 한 번 처방받을 때에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약값을 지불하고 나와야 하는데 한 달에 이러한 처방을 두 번 이상 받아야 적절한 유지요법이 가능하다. 1년 후에 일부 돌려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지불능력을 항상 유지하는 환우가정이 얼마나 될지 따져봐야겠다. 이렇다보니 환우들에게선 이 제도가 재력이 되는 일부에게 본인부담을 지도록 하기 위한 제도인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치료제의 소비를 억지로 짓누르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지원제외’ 환우들이 약을 적절히 쓰지 못해 관절이 망가지고 장애를 안게 돼 더 큰 치료를 요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되고 있다.

[한국코헴회 이남일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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