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으로 혈액응고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혈우병환자들에게 응고제제가 출시되면서 장수시대가 열린지 50년이 됐다. 혈우병의 완치는 아직 미래의 이야기이나, 장수시대는 열렸다. 이른바 혈우병 환자의 유병장수 시대이다. 나이가 많은 혈우병 환자들의 공통점은 관절장애를 가지고 있다. 지체장애로 보행이 어렵거나 팔꿈치나 어깨 등의 장애로 자신의 수족도 건사하기 쉽지 않다. 방편으로는 인공관절수술을 하거나 관절주변의 골극 제거술 등으로 조금 개선해 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혈우병으로 인한 관절장애의 극복은 한계가 있다.

관절장애에 이어, 치과치료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잘 먹어야 건강하게 산다는데... 혈우병 환자들에게 치과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혈우병 치료 선진국에서는 HTC(혈우병치료센터) 내에 치과를 두고 운영하는 사례가 많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협진 요청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혈우병 치료에 있어서 물리치료는 오랫동안 큰 관심을 가져왔고, 정형외과적 수술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지만 치과치료나 간염치료를 위한 순환기 내과를 비롯해서 신장내과, 심장혈관, 신경외과 등은 아직 혈우병 핫라인이 개설되지 않았다. 최근 미국 혈우병 환자들 중 응급실 이용 빈도를 조사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심장질환이 매우 높았다. 또한 혈우병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뇌출혈이나 혈전문제를 효과적으로 치료하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런 것을 일시에 협진체제로 구성해 혈우병 환자의 복합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다학제 치료’이다.

지금 우리나라 혈우병 치료 수준은 사실상 혈우병 치료제를 투여하는 게 전부이다. 태어나면서 치료제를 투여하고, 관절에 문제가 생기면 치료제를 투여하고, 예방요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치료제를 투여하고,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관절에 문제가 생기면 치료제를 투여하면서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재활을 위해서 치료제를 투여하고... 결국 치료제를 투여하는 게 전부이다. 무엇인가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주변에서 신장문제로 투석이야기까지 심심찮게 들리고 있고, 간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지금 이대로 라면 어린환자들의 거울이 장년환자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혈우병 심장 전문의, 혈우병 신장 전문의, 혈우병 간 전문의 등 혈우병 전문의사의 풀이 가득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혈우병 치료제는 지금처럼 혈우재단이나 혈액내과 또는 다니던 종합병원에서 처방 받으면 되고, 이외의 진료과를 다수의 환자들이 방문해서 정기검진을 받으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도 있다. 혈우재단이나 코헴회에서 의료비 지원사업을 폭넓게 진행하고 있는데, 치과나 간 검사 등 정기검진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도 고려해 볼만한다. 환자들이 분산되지 않도록 각 지정병원의 주치의와 상의를 거친 후 거점 진료과 담당의를 선정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한 혈우병 환자라면, 순환기내과에서 심장관련 질환을 정기검진하고, 순환기내과에서 대장질환이나 위질환, 간질환을 검진하고 신경과에서 두통이나 근육질환 뇌질환을 검진받고, 재활의학과에서 관절 신경통증을 검진 받고, 정형외과에서 관절관리를 할 수 있다. 이같은 진료과는 혈우병 치료제를 처방받듯 빈번하게 내원할 필요는 없다. 정기적으로 환자들이 검진을 받으면 된다. 물론 치과치료나 관리는 필수적이고 물리치료는 꾸준히 받는 게 좋겠다.

앞서, 본지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한바 있는데, 현재 한국혈우재단에서는 중앙대 소화기내과 이현웅 선생이 혈우병 환자의 간 기능을 정기 검진하고 있고, 재활의학과 김돈규 선생이 환자의 관절초음파 등 통증치료 등을 정기검진하고 있다.

혈우병 클리닉이라면, 적어도 치료제 처방 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혈우병환자의 치료가 가능해야 하지 않겠나. 무엇보다도 혈우병환자들은 자기관리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말끔한 의상이나 왁스로 세운 머릿결 등에 투자하라는 게 아니라 ‘건강백세’를 위한 신체 관리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거다.

비단, 위에 언급한 진료과 뿐 아니다. 혈우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진료과는 일반인들에게 필요한 진료과 모두가 해당된다. 모든 진료과목에서 혈우병 전문의 타이틀을 달수 있도록 환자들의 스마트한 병원 이용이 미래의 의료환경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의사 입장에서 혈우병 환자를 첫 대면할 때와 수차례 임상경험을 쌓은 후와는, 치료의 자신감이 달라지지 않겠나. 아직까지도 일선에서는 ‘혈우병 환자’라고 밝히면 ‘큰 병원으로 가세요’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환자들의 활발한 의료기관 이용으로 삶의 질도 높이고, 혈우병 전문의도 늘어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보자.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