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은 출혈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신체 어디에선가에서 출혈이 되면 지혈시키는 자연치유가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가벼운 타박상에도 쉽게 부어올라 며칠을 고생하기도 하고 관절부위가 붓게 되면 움직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때에 따라선 내부 장기에 출혈이 생기거나 머리 부위에 출혈이 생기게 되면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혈우병 증상을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끝도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치료제가 개발되어 적절하게 사용하게 되면 큰 문제없이 정상생활을 할 수도 있다. 흔히 ‘모 아니면 도’라는 말까지 어울릴 정도다. 그러다보니 학생 때는 꾀병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짱하던 아이가 오늘 움직이지 못해?” 또는 “아파서 화장실도 못 간다더니 오늘은 말짱하네?” 당사자가 아니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출혈들이 많다.

혈우병은 출혈에 의한 불편함뿐만 아니라 그 통증은 이루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통증의 한계라는 게 없다는 걸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혈우병 환우들은 그 한계치를 평생 샐 수없이 겪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의료 환경이 정말 많이 개선됐다. 적절한 치료라는 것, 날짜를 맞춰 치료제를 보충해 주는 것, 혈우병 전문의들의 지속적인 관심, 보건당국의 관심, 이러한 여건들이 개선되면서 환자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필요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혈우병 환우들이 항상 감사하면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다.

인간적 존엄이 있고 우리나라 국민이기에 우리는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재정과 가치와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환우들은 여기에 더하여 의료과학의 발달 등 어려가지 추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아무리 재정이 많다고 해도 의료과학이 발전하지 못하게 되면 치료제가 존재하지 못한다. 의료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필요의 타당성과 가치와 관심이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하나의 완성단계에 이르게 된다. 예컨대 지금도 치료제 조차 없는 수많은 희귀병이나 난치병 환우들이 밤을 세우며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들은 남은 수명조차 가늠할 수 없는 존재로 그저 ‘신의 기적’만 바라는 이들이 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 은행을 찾아가 기회를 달라고 토로한다. 다행히 담당자를 설득했다면 단지 얼마라도 받아오게 된다. 그러면 날짜를 계산하고 이자까지 계산해서 갚게 된다. 이웃에게 음식이라도 나눠받게 되면 다음엔 반찬이라도 나눠준다. 동료에게 술 한 잔 사주면 그는 후일 밥이라도 산다. 세상은 이렇듯 받은 게 있으면 돌려줘야 하는 게 이치이다.

이렇듯 혈우병 환우들은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없던 것을 누군가에게 거저 받은 거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할, 일종의 채무의식을 있어야 한다. 대상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체무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채무는 재정적인 부채와는 조금 다르다. 갚아야 할 빚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 마음가짐부터 가져보자는 거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 대상을 각자 마음 속에 그려보는 것도 좋다. 이웃에 감사하거나, 나라에 감사하거나 주변 환우에게 감사하거나 치료의사 또는 부모나 형제 등 그 대상이 누구라도 좋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빚진자의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

이런 삶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혈우병 환자들의 마음가짐이 되는 날, 우리 혈우사회가 한층 더 성숙해 진 것에 또 한번 놀라게 될 것이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