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과 달리 혈우병 환우들은 ‘만성질환’이라는 보따리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 처음엔 삶의 무게가 무척 벅차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거나 타인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장벽을 스스로 만든다. 이런 생각 속에 갇히게 되면 다른 이들이 내 곁을 떠나려는 게 아니라, 환우가 스스로 일반사회를 벗어나게 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정보의 차단을 스스로 자행하며 수 많은 무리들을 자신의 잣대로 따돌려 버린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지고 ‘우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나’의 공간만을 갖으려한다. 그러나 삶은 매우 오랜 터널을 걸어야 한다. 그 터널을 혼자서 걷기란 쉽지 않다. 처음엔 그것이 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평생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서는 안 된다. 빠른 시간 내에 파트너를 만들어야 하고 공동체 안에서 호흡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혈우병 환우아동을 둔 부모의 역할은 ‘환우 혼자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일깨워 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만성질환’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혈우사회는 다행스럽게도 ‘코헴회’라는 공동체가 있다. 이 공동체 안에서는 ‘혈우병’에 대한 ‘만성질환’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울타리이다. 이런 울타리는 다른 만성질환과 많이 다르다. ‘코헴회’라는 혈우사회 공동체는 혈우병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그 어느 곳보다 정확하고 명확하고 빠르게 알게 되는 매우 중요한 집단이다.

혈우병으로 태어나면 가장먼저 혈우병 전문 의료인으로부터 병에 대한 정보와 치료제에 대한 설명 그리고 주사방법 등을 배우게 된다. 출혈이 발생하면 필요에 따라 적절한 대처 방법도 얻게 된다. 혈우사회는 이처럼 혈우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수많은 정보들이 가득 차 있다. 환우 아이들이 성장해 가면서 의사나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인뿐 아니라 선배환우들의 경험과 각기 다른 치료경험 부작용 심리적인 문제 학교문제 학교에서 교우들과의 관계 나아가 이성교제와 장래문제를 나누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동체는 ‘숨 쉬는 생물’과 같아서 새로운 정보들이 업데이트되고 있고, 실수와 오류들도 수시로 개선되어 가고 있다. 혈우병을 갖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정답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새롭게 업데이트 되는 내용을 놓치지 않도록 혈우사회 안에서 함께 호흡해야 한다. 예컨대 어떤 환우가 혈우병으로 오랫동안 살았다고 해서 그 환우의 잣대가 혈우병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2017년 현재 ‘혈우병 완치’가 이야기되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환우들이 매우 많다. 그것은 혈우병 최신정보에 민감한 공동체 활동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코헴회’라는 혈우병 공동체 안에 있다 보면 때에 따라 종종 언짢은 일도 있고, 마음이 무척 아픈 경우도 있다. 반면 즐겁거나 위로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과정은 바로 ‘공동체’라는 것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혈우병이라는 ‘우리’ 안에서는 매우 정직하고 솔찍하며 개방적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간혹 속고 속이는 자들이 서로 갖고 있는 것을 뺏으려고 위장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코헴회’라는 혈우병 울타리 내에서는 이러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이 겪었던 출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보다 나은 처치방법으로 교류하는 등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하고 싶은 질문을 솔질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매우 훌륭한 공간이다.

코헴회가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갖게 되면서 공동체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지식이 높아졌다. 그러다보니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 어느 곳을 가던지 혈우사회 공동체가 공고히 연결되고 있다. 도움을 받기 위해 문을 두드리면 어떤 결과든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정확히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혈우병에 대해 더욱 알기를 원하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혈우사회 공동체 안에 모여 있는 환우들은 ‘100점짜리 혈우병 환자들’이 아니라 혈우병을 더 알기 원하는 이들이 계속 공존하면서 호흡하는 곳이다.

공동체를 벗어나면 자칫 과거에 갇히는 수가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금까지의 정보를 갖고 다른 이들을 가르치려는 습성이 생긴다. 그러나 혈우사회는 이러한 일반적인 공동체와 다르다. 스스로가 미약함을 알고 더 알고자하는 이들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과거에 갇히지 않게 되며 또한 그렇다고 너무 먼 미래만 지향하지도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고통스런 경험조차 함께 나눠야 하는 곳이 바로 혈우사회 공동체이다.

혈우병으로 진단받게 됐다면, 하루라도 속히 코헴회라는 혈우사회 공동체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혈우병을 갖고 있는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20년을 혈우병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혈우사회 공동체를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혈우사회 공동체를 통해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라고.

‘코헴회’라는 곳은 우리나라 혈우병 환자들과 가족들이 모인 집합체이다. 이곳을 통해 혈우병이라는 특별한 자신의 삶 속에, 희망을 갖고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시스템’이고 ‘창구’가 되는 것이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