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치료제, 바꾸고 싶은데...”

어찌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매우 간단할 수 있다. “그럼 바꿔~”라고.

그러나 간단한 질문 같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매우 복잡한 함수가 얽혀있다. 마치 혈우사회에서 불문처럼 말이다. 물으면 안 되고 답하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정말 그럴까? 그럴만한 이유는 여기 있다.

약 바꿀 때, 말하기 곤란해?

외국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혈우병 전문 의사들은 혈우병 치료제에 대해 전적으로 환자의 선택을 따라 준다. 국내라고 다른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혈우병 전문 의사들은 외국 혈우병 전문의들과 유사하다. 그 이유는 혈우병치료제가 좋은 치료제 나쁜 치료제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8인자, 9인자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환우들만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라고 느낄 때가 많다. 약을 바꿔달라고 하면 의사들은 환자의 의견에 따라 처방을 해준다. 간혹 의견을 주는 의료인이 있는데 그 경우는 특정 제약사와의 유착관계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현재 재고가 없는 경우, 병원에서 약품코드가 잡혀있지 않는 경우, 뭐 대부분이 이런 경우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부 환우들의 오해(리베이트를 고려해 특정한 치료제만 처방하려는) 때문이 아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지금부터 그 이유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병원에서 새로운 약품을 처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가 있다. 큰 병원에서는 더욱 그 절차가 복잡하다. 환자들이 잘 이해해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다. 병원에서 혈우병 약품을 처방하기 위해서는 ‘원내처방’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약을 구입해 놔야 한다. 혈우병 치료제 말고 대체적으로 다른 약품의 경우, 병원에서는 처방전만 끊어 주면 된다. 환자가 그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사면되니까. 하지만 혈우병 치료제는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원내처방’이다. 이런 점을 환자들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병원은 혈우병 치료제를 구입할 때, 거의 당월 결제를 해주게 된다. 즉 미리 구매해 놓고 약이 처방되든 안 되는 구입한 치료제 비용을 병원에서 도매상(또는 제약사)에게 결제를 해준다. 그리고 병원은 환자에게 처방하고 의료보험 공단에 청구하고 서너달 후에 대금을 받는다. 이렇게 되니까 병원은 당월에 약품 대금을 회수하지 못한다. 몇 개월이 지나야 공단에서 입금이 되기 때문이다. 의약분업 때문에 당연히 병원은 약가 마진이 없다.

특히, 환자가 그 병원을 꾸준하게 이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병원에서 환자가 오면 바로바로 약을 처방해 줘야하기 때문에 약품을 미리 구비해 놨는데 그 환자가 한 두 번 오다가 말면? 병원에서는 난감해 지는 경우가 발생된다. 아까 말한 것처럼 혈우병 치료제는 거의 당월결제 해줘야 하는데 환자가 오다말다 그러면 병원은 약품 재고만 갖고 있게 되고 대금을 결제해 줘야 한다. 더욱이 여러 환자들이 여러 가지 치료제를 원하고 있다면 병원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 여러 종류의 치료제를 구비해 놓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모든 병원들이 모든 약을 다 처방할 수 없는 이유가 이런 경제적인 원리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만 보면, 병원은 환자가 이용하고 환자는 원하는 치료를 요구할 수 있으니까, “내가 쓰고 싶은 약을 병원에서 준비해 놔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혈우사회라는 건 환자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 이해관계가 엮여 있기 때문에 환자들도 폭넓게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 병원 그리고 제약사 그리고 환자. 이 삼각관계를 경제논리로 풀어보면 제약사는 약품을 병원에 공급하고 병원은 최종소비자인 환자에게 처방한다. 대금결제는 병원에서 환자의 진료비를 공단에 청구하고 공단은 몇 개월이 지난 뒤에 병원에게 청구대금을 입금해 준다. 여기서 자금회전이 문제가 발생된다. 제약회사는 납품된 치료제를 매월 받아야 하고 병원은 매달 입금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환자가 더욱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병원에서의 자금회전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병원 그리고 제약사 그리고 환자. 이 삼각관계 사이에 도매상이 등장하게 되는데 도매상의 역할은 제약회사로부터 약품을 공급받아서 병원에 납품하는 중간상이다. 사실상 도매상의 중요한 역할은 바로 자금회전을 감당하는 기관이다. 병원들이 공단으로부터 대금을 받을 때까지 약품을 여신으로 제공해주는 역할자이다. 즉 도매상은 제약회사에게 매월 대금을 결제해 주고, 병원으로부터 3-4개월 후에 심지어는 그 이상 기다렸다가 대급을 받게 된다. 다행히도 도매상은 법적으로 약품에 대한 도매마진을 가져갈 수 있다. 이윤이 발생하기 때문에 도매상들이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총 4단계의 관계로 인해, 환자들이 병원에서 약품을 처방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면 약품이 다양해지고 회전해야 할 금액이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병원마다 도매상을 여러 곳과 거래하게 되고 병원은 안정적인 자금회전을 담보하여 환자들이 원하는 치료제를 미리 구비해 놓을 수 있게 된다.

환자들이 약품을 처방받기 위해서는 이처럼 복잡한 과정이 있다. 그러다 보니 때에 따라서는 재고문제, 자금 회전문제, 도매상 문제 등으로 인해 환자들이 원하는 치료제를 적기에 처방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게 된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간단하게 특정치료제만 처방하면 업무가 수월해 지기 때문에 가능한 치료제의 종류를 늘리지 않으려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규모가 큰 종합병원에서는 이런 유통 관리를 의사가 하는 게 아니라 약제과나 운영팀, 재단 등에서 관리하게 되는데 내부적으로 그 입김이 무척쎄다. 때에 따라서는 의사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인 경우도 많다. 다시 말하자면 의사가 특정한 약품을 처방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병원 재무운영관리팀에서 제제하는 경우가 많다. 코헴회나 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병원마다 처방가능한 치료제를 정리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병원이 모든 혈우병 치료제를 처방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혈우병의 모든 약품을 처방 한다는 곳이 있더라도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 할 것 있다. 병원에서 처음에는 많은 환자에게 편의를 돕기 위해 여러 치료제를 구비해 놨지만 환자들이 잘 이용하지 않거나 특정한 치료제만 사용하는 환자 비율이 높게 되면 잘 사용하지 않는 약품은 코드가 빠져버릴 수 있다. 코드가 빠진다는 것은 병원에서 처방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다니던 병원을 환자들이 꾸준히 다니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거다.

원점으로 돌아와 보자.

“혈우병 치료제 ‘바꾸고’ 싶은데...”

의사가 진료하는 중에 환자로부터 이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응은 어떨까? 여러 가지 치료제가 구비되어 있는 병원일 경우 약제과 등을 통해서 원내약국의 재고현황부터 확인해 본다. 큰 병원이거나 어려가지 치료제가 있는 병원일수록 담당 의사는 어렵지 않게 약품을 교체해 준다. 어떤 환우는 선생님한테 이야기도 꺼내보지 않고 ‘약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던데, 약 바꾸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규모가 작은 곳이나, 환자가 원하는 치료제가 없는 경우엔 담당의사의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진다. 재고현황과 구매관리 계획, 대급결제 예정일 등등 한꺼번에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잠시 생각을 해 보고는 무리가 없을 것 같으면 대부분 의사들은 환자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 처방코드가 없는 경우(병원에 해당 치료제가 없는 경우) 의사는 두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첫 번때는 복잡한 업무에 엮기고 싶지 않은 경우, 현재 처방 가능한 약품을 안내하고 그 중에 선택하게 한다. 두 번째는 능동적인 의사인데 응급약으로 수순을 밟고, 시일 내에 정식코드를 밟아서 병원에서 해당 치료제를 준비해 놓을 수 있게 처리해 주기도 한다. 코드가 없는 치료제를 처방하기 위해서는 담당의사의 노력도 있어야 하고, 환자도 해당 병원을 꾸준히 이용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환우 중 일부 환우들은 약품을 바꾸기 위해 없는 명분을 만들기도 한다. 즉 약 바꿀 때 ‘약이 잘 안 듣는 거 같아서 바꿔보려고 해요’라고 말하는 경우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의사 입장에서의 수순은 당연히 지금의 약에 의해 어떤 문제가 발생됐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따라서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할 수도 있고 항체검사를 해보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검사오더가 나오면 환우들은 뒤로 수군거리기도 한다. “저 선생은 약 안 바꿔 주려고 그러네...”라면서 말이다. 차라리 없는 명분을 만들지 말고, 솔직하게 선생님께 ‘약 바꿔 써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던지 ‘저 약을 쓰면 예방요법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던지. 있는 그대로 말하고 바꿔 달라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혈우병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의사들은 환자들이 약을 바꾸고 싶다면 가능한 그렇게 해 주는 게 좋겠다. 그리고 약을 바꿔줄만한 상황이 아니면 환자에게 상황설명을 해 주는 것이 오해가 없을 것 같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신뢰’의 바탕이 있어야 적절한 치료가 가능하다. 특히 혈우병 치료제를 바꾸고자 할 때도 ‘신뢰’를 바탕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진통제나 소화제 등 이런 약품을 교체하고나 처방받으려할 때를 생각해 보면, 의사와 환자는 아주 쉽고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혈우병 치료제는 왜 서로 부담스럽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 그럴 필요가 없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자~ 그럼 이번 주에 당장 약 바꿔 볼까?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