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코헴회(회장 박정서) 주최로 열린 제 1회 코헴 부모 워크숍

혈우병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열렸다.

그동안 혈우사회에서 부모의 역할은, 환우들의 뒤치다꺼리 하는 사람 정도로 그 역할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바로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자리가 마련된 거다.

전국에서 지회의 추천을 통해 참석하게 된 8가구 등 40여명이 충북 음성소재의 한독연수원에 모여들었다. 28일부터 29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참석한 환우 부모는 서로 인사를 나누며 닫쳐있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가 화두로 던져질까?

가장 공통된 주제는 예상됐던 것처럼 자녀의 건강문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척되면서 환우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무개 엄마’, ‘아무개 아빠’라는 타이틀을 떼고, 자신들의 이야기가 시작된 거다.

그렇다. 그동안 자녀를 심적 육체적 고통을 어루만지며 눈동자처럼 아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왔지만,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는 자신의 문제를 어루만지며 뒤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내 인생에 가장 화려했던 시작점을 짚어보면서, ‘나’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진솔하고 주관적인 감정을 실어냈다.

남편이 고맙고, 아내가 사랑스럽고, 스스로 역경을 이겨내며 서른, 마흔, 쉰 이라는 나이를 보내고 있는,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환우 아동의 삶도 스스로 해쳐나가야 할 아들의 몫인 것처럼, 부모들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거다.

“이런 자리는 지금까지 없었다. 너무 좋았다. 처음엔 그저 캠프처럼 생각했다. 올까 말까 고민도 많았다. 그런데 참석하고 나서 보니 정말 좋았다. 자리를 마련해준 회장님과 코헴회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번 행사 프로그램은 타이트하지 않은 가운데 적절한 프로그램으로 배치됐다. 먼저 윤은정 심리치료사가 환우 어머니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심리적 지지를 갖는 시간이 진행됐다. 윤 심리치료사는 많은 이야기를 던지지 않았다. 참여자들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고 다른 참여자의 생각을 나누며 어머니들 간 대화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진행해 나갔다. 진행자의 멘트가 길어지면 자칫 지루한 강의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들의 대화, 윤은정 심리치료사의 진행으로 가슴 속 멍에를 풀어버린 자리

자신을 꽃으로 비유해 보기도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박수와 함께 함박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때론 절제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눈시울이 축축하게 젖기도 했다. “저는 결혼할 무렵이 제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 같아요.”라고 회상하면서도, 때로는 “저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래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인거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그래요. 지금까지 수많은 그 과정을 넘겨왔는데 왜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려운 과정을 넘기며 대견스레 자신을 돌아보며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원래 저는 쎄지 않은데 쎄 보이는 게 조금 억울하다”라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건 예쁜 사람이 ‘쎄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라는 다른 참가자의 조언에 금방 화색이 돌기도 했다.

어머니들의 대화가 진행될 무렵, 아버지들은 자녀와 함께 ‘연날리기’ ‘주사교육’ 등을 진행했다. 평소에 아이들과 자주 어울리며 놀아주는 아버지가 있었던 반면, 그렇지 않았던 아버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연을 날리며 아빠와 같이 뛰어 다니며, 말 그대로 ‘신바람’나게 놀았다.

▲ 아빠와 아들이 함께 뛰노는 시간, 연날리기

“너무 재미있었어요.”

한 환우아동의 이야기다. ‘연날리기’ 그 자체가 재미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연날리기’를 아빠와 함께 했기 때문에, 그 아이에겐 더 신나고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땀이 나도록 뛰어 보며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하늘 높이 연을 올려보기도 하고, 아빠를 따라 뛰어보기도 하면서 아빠와 아들이 한 곳을 바라보는 그 모습은, 다른 사람이 멀리서 보기에도 마냥 즐겁다.

이어, 아빠와 아들이 함께하는 주사 교육시간이 됐다. 혈우재단 박혜련 간호사의 설명에 따라 정맥을 찾아보기도 하고 바늘을 찔러 보기도 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아빠들의 눈동자는 마치 초등학생들처럼 초롱초롱하게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진한 시간을 보냈다. 얼마 후, 한 아버지의 감탄사가 나왔다. ‘아! 생전 처음 성공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첫 성공을 거둬낸 그 아버지는 오늘 이 자리가 평생의 감동적인 추억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혈우재단 박혜련 간호사 진행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주사교육시간이 열렸다.

첫날 해질녘, 한독연수원에서 저녁식사가 진행됐다. 삼겹살을 구워 얹은 밥한 술 속에 하루의 일과가 녹녹히 묻어났다. 식사 후 마련된 저녁 자유시간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됐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잘 어울렸고, 부모는 부모들끼리 소통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이튿날, 조찬에 이어 산책을 하면서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는 시간이다. 여유롭기도 하고 한가롭기도 하면서 한 시간쯤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아이들은 코헴 간사들의 손을 잡고 박물관을 견학했다. 그러자 또 다른 간사의 안내에 따라 부모들이 한 장소로 모여들었다.

▲ 코헴 회장과 이야기를 나눕시다~

박정서 코헴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더욱 깊은 소통의 자리로 이끌었다. 첫날엔 아버지 어머니가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슴 속에 묻어둔 것을 털어 냈다면, 둘째 날 이 자리에서는 부모가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시선을 맞추는 시간이 진행됐다. 박 회장이 먼저 마음을 열자, 부모들은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어느 곳에서 꺼내 놓을 수가 있을까? 멍에를 풀어 버릴 수 있는 대화의 장이었다. 이 자리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였고, 성숙해가는 혈우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장면이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감사했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스럽게 안아주는 시간. 1박 일정의 행사를 마무리하며 <제1회 부모워크숍> 수료식을 끝으로 행사가 마무리됐다. 한 어머니의 마지막 멘트는 “어머! 우리 같은 깃수됐어~” 이렇게 또 한 타래의 단단한 실 뭉치가 탄생됐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

▲모든 일정을 마친 뒤 수료식이 진행됐다. 이번 참석자들에게는 제 1기 생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