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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 된다"'대전에서 가장 행복한' 박한진 환우 인터뷰
김태일 기자  |  saltdoll@hemophil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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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8.22  20: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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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하면 힘겨운 투병생활만 떠오르던 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사회 곳곳에서 본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주어진 행복의 최대치를 누리며 사는 희귀질환 환자들의 모습이 너무도 많다. 혈우사회 내에서는 몇몇 사람을 만났을 때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고 표정에서부터 먼저 말을 건네고 싶게 만드는 일이 있는데,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도 그 중 하나라 하겠다. 코헴회 임원직에서 물러나 지금은 한 명의 회원으로서 꾸준히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박한진 환우를 소개한다.

▲ 박한진 환우를 그의 일터 애드모아 대표 집무실에서 만나 이야기 나눴다.

Q :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A : 네. 안녕하세요. 저는 66년 병오년생 말띠 대전에 거주하는 박한진이라고 합니다. 8인자가 부족한 중증이지만 마음으로는 8인자가 남는 것처럼 활동은 많이 하고 있고요.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공주, 넷이서 알콩달콩 살고 있어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해서 현재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 코헴 임원직 내려놓으신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A : 다른 단체 활동 계속하고 있지만 시간적 여유는 좀 더 갖게 됐다고 봐야죠.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와 장애인 단체도 몇 개 관여하고 있고, 또 경찰서 안보자문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여기는 탈북민들의 자립과 안정을 도모해 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탈북민들과 1년에 몇 번씩 안보견학으로 판문점도 가고 평택2함대 천안함 포격 전시장도 가고 4땅굴, 3땅굴, 거제 포로수용소 등등, 대한민국 두루두루 다니면서 나름 재밌어요. 보람도 있고.... 얼마전에는 대전 세종 지역 위원장들과 경찰청 관계자들과 내곡동 국정원에 가서 대한민국의 안보 현황 브리핑도 받고 실사격 연습도 했어요.

Q : 코헴회 일 내려놓으시니까 편하시죠?
A : 마음은 좀 편한 것도 있는데 신경을 많이 썼던 단체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은 자꾸 끌리네요. 그래서 지회 모임은 꼭 나가면서 대의원회 있다고 하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또 자연스럽게 가는 것 같더라고요.

Q : 충남지회는 역대 임원분들이 잘 해오셔서 그런지 회원분들이 지회 모임에 많이 만족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A : 임원분들이 잘 해 주신 것도 있고 또 우리 회원들이 잘 봐준 것도 있겠죠, 무슨 일이 있을 때 상담한다고 꾸준히 연락도 오고 그런 걸 보면 그래도 일 하면서 가졌던 인간관계가 아직은 유지되고 있구나 그런 생각도 하고 있죠. 저도 처음에는 우리 코헴에 대해서 좀 등한시하다가 임원 맡게 되면서부터 어떻게 보면 좀 늦게 참여했으니까 다른 회원들한테 해주고 싶은 게 더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잘 만나서 얘기도 해주고 그렇게 하죠.

Q : 굉장히 건실한 업체를 운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어떤 업체인가요?
A : 애드모아는 산업디자인 전문회사로 정부에 등록이 돼 있고 책자라든가 포스터, 회사 도록과 여러 가지 인쇄, 디자인 쪽을 전문으로 하고 있죠. 세종에도 사업자가 있는데 세종은 관공서와 학교 즉 초등학교부터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 세종에 있는 학교는 거의 다 거래처라고 보면 돼요. 또 세종 청사는 서울에서 온 업체들이 너무 쟁쟁하기 때문에 뚫고 들어가기 힘들지만 간혹가다 하나 둘씩 일을 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 2015년 장로 임직때 목사님, 사모님과

Q : 언제부터 이 일을 하시게 됐나요?
A : 대학교 졸업하고 사업자 낸 게 94년이었고 90년도부터 이쪽 일은 시작을 했네요. 졸업하고 직장생활 조금 했었죠. 모 기획실이었는데 사장님이 너무 포부만 크셔서 얼마 못갔어요.(웃음) 지금 애드모아가 있는 이 골목이 인쇄 거리인데 처음에는 저 위쪽에서 운영했다가 세 번 정도 자리를 옮겨 이곳에 자리 잡았죠.

Q : 대전 토박이세요?
A : 아니요. 충남 청양. 어쨌거나 충청도.(웃음) 청양고추하고 구기자 그걸 많이 하죠. 처음에는 누나들이 다 서울 살고 있고 남는 방도 있어서 서울로 갔었거든요. 거기가 용산 산천동이었는데 취업하려고 서울대역 쪽에 면접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1시간 남겨 두고 가면 되겠지 했는데 갔더니 면접 다 끝나고 벌써 철수했더라고요. 그래서 충청도 사람이 서울에선 못 살겠구나. 지하철에서도 사람들이 그냥 타고 가는 게 아니고 막 5호차 6호차 걸어 갔다 뛰어다니고 그렇게 하잖아요. 거기는 사람 사는 게 아니고 완전히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이겠다 생각을 해서 서울은 좀 그렇고 대전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지역에서 제일 큰 도시이고 몸이 아프니까 시골 같은 데서 일하는 것은 힘들고 좀 큰 도시가 여기다 해서 오게 됐던 거죠.

Q : 대전에 맛있는 것, 자랑할 만한 것 뭐가 있을까요?
A : 여기 대전역 앞에 칼국수집 얘기 많이 하던데 이 동네에는 칼국수가 그래도 유명하고 TV에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칼국수 종류도 많이 있어요. 충남대 유성 쪽으로 가면 좀 고급스러운 것도 많이 있고. 바로 옆에 있는 중국집 태화장 같은 경우는 전통도 오래됐고 되게 유명하죠. 이전에 백종원하고 성시경 그 사람들이 왔다가고선 11시만 되면 그때부터 매일 줄을 서야 해서 주변 사람들이 아주 피곤해해요, 옛날에 박정희 대통령도 왔었고요.

Q : 요새 코헴회가 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A :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더 멀리 뛰기 위한 우리 모두의 제스쳐라고 보고 싶네요. 누구든지 그렇지만 자기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말하는 게 달라지기 때문인 거 같아요. 예를들어 +를 보고 학생은 더하기라 하겠고 교통경찰은 교차로로 의사들은 병원으로 목사님들은 십자가라고 보는 게 당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듯이 코헴회 임원과 회원들은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좀 더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내 입장만을 끝까지 고수하다 보면 더 갈등만 생기게 되는 것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전체 회원들이 이로운 것을 찾아야 되는데 서로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서만 생각하다보면 회원들이 피해를 볼 수가 있겠죠. 지금처럼 이렇게 된 것은 좀 마음이 아프고 서로 자신의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자기 주장보다는 조금 서로 입장을 바꿔서 이해하려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저는 지금 대의원도 아니고 임원도 아니지만 최근 돌아가는걸 보면서 아쉬운게 있는데요, 이제까지 과거 코헴회에서 결정했던 그 의결사항들 있잖아요. 그것을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코헴회가 어떤 식으로 흘러왔나 보면서 큰 맥락 속에서 잘못된 것은 답습하지 않고 버리고 좀 건설적으로 가도록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 사람이 바뀔 때마다 단절되는 게 아니라 연속된 과거에서 배우면서 미래를 계획해나가자 이런 말씀이시네요. 코헴캠프가 4년 만에 다시 열리는데, 참석하시죠? (여름캠프 전 인터뷰 함)
A : 참석 신청했어요. 일단 오랜만에 보면 또 반갑잖아요. 반갑게 만나고 또 정해 놓고 사람 만나는 건 아니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또 그 속에서 서로 좋은 것도 얻을 수도 있고 그래서 캠프는 앞으로 잘 운영되었으면 좋겠고 그리되길 믿어요.

▲ 고향 청양에 8년 전 지은 우리 별장에서 아내가 꽃 내음을 맡고 있음

Q : 개인적인 꿈이 있으시다면 뭘까요?
A : 그냥 지금 하는거에서 한 걸음만 더 전진하면 좋겠다. 그 정도. 너무 큰 꿈은 그렇고. 그런데 일단은 자꾸 몸이 아프잖아요. 어깨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그래서 아픈 것이 좀 덜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그리고 고향 청양에 지금 집이 하나 있어요. 전원주택처럼 한 7년 전에 새로 지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거기 휴가 간다고 생각하고 그냥 집사람과 형제들과 놀다 오고 그렇게 하는데 나중에 사무실은 여기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면 시골에서 전원생활 한 이틀 하고 대전 와서 한 5일 있고 그렇게 그냥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게 소박한 꿈이라고 할까. 그래요. 또 교회에서 봉사할 것도 많이 있거든요. 우리 교회에서 처음으로 장로로 세움 받았으니까 또 장로로서 신앙생활하고 그렇게.

Q : 꼭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따님만 둘 이라고 하셨는데...
A : 네, 둘 다 보인자고 큰애는 18%, 작은애는 24%. (기자 : 8인자 수치가요?) 네. 어떻게 보면 40% 미만이 환자니까 둘 다 환자라고 할 수 있죠. 환자로 등록해도 되는데 안했어요. 딸보고 등록하라고 하기가 그래서. 병이랑 유전에 대해서는 딸한테 다 얘기했죠. 만약에 출혈됐을 때 아니면 나중에 결혼하고 출산할 때든지 만약에 아빠가 없을 때 무슨 사고 나든지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교육했어요. 그리고 작은애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우리 코헴 캠프나 송년회 할 때도 항상 오라고 해서 좀 같이 만나고 그랬어요. 어렵게 설명하고 교육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혈우가족들과 어울리고 이해하면 더 좋은 것 같더라고요.

Q : 혈우병 치료에 임하고 계신 의료진분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A : 우선 저희들을 치료해 주시는 우리 지회 유철우 교수님을 비롯해 모든 의사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른 질병과 달리 저희들은 환우와 가족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어져야 하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질병이니 만큼 신체적 정신적으로 함께 치료해야 하니까 더 힘드실건데 잘 치료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보통의 의료진들의 의술과 달리 우리 모든 선생님들은 의술에 인술 그리고 감술(감정까지 고치는 의료 기술)까지 해 주시는거 같아 더 고마움을 느낍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을 모두 직접 찾아가 뵙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려요.

▲ 작년 두 딸과 제주도에 가서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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