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사회에 새롭게 출시되는 치료제들이 롱액팅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반감기를 늘려 빈번한 주사일수를 줄이는 치료제들이다. 매주 2-3차례에 거쳐 정맥주사를 해야 하는 혈우병 환자입장에서 볼 때 주사횟수를 줄인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향후, 8인자에서는 샤이어의 ‘아디노베이트’가 가장 안정적으로 교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디노베이트’는 이미 국내 몇몇 환자들이 임상을 거쳐 만족스러운 결과를 확보하고 있다. 다만 현재 ‘애드베이트’를 사용하는 환자들이 특별한 불편없이 치료받고 있기 때문에 롱액팅 ‘아디노베이트’의 출시 시기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유씨비제약의 롱액팅 ‘엘록테이트’의 출시 준비가 예사롭지 않다. 유씨비제약은 이미 지난 5월 말, 9인자 롱액팅 ‘알프로릭스’를 식약처로부터 시판허가를 받아 약가결정만 남은 상태이다. 유씨비는 ‘알프로릭스’와 유사한 시기에 ‘엘록테이트’도 식약처에 허가신청을 해 논 상태라 곧 식약처로부터 시판허가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SK케미칼도 ‘앱스틸라’의 존재를 언론을 통해 연일 소개하고 있다. ‘앱스틸라’는 우리 혈우사회에서 잘 알려진 ‘모노클레이트P(혈액제제, 한독)’를 생산하고 있는 CSL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글로벌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CSL에서 ‘앱스틸라’를 시판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SK케미칼이 직접 판매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8인자 치료제는 기존의 치료제에 비해 반감기 롱액팅이 기대만큼 길지 않다. 이에 따라 환자들의 치료에 획기적인 변화는 불분명하다.

반면, 9인자 치료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앞으로 출시될 치료제들은 반감기 롱액팅이 상당히 길어졌기 때문이다. 거의 10년 동안 화이자의 베네픽스가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롱액팅 치료제들의 출시준비로 9인자 치료제 시장은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먼저, 샤이어의 ‘릭수비스’가 국내 9인자 시장을 흔들어놨다. ‘릭수비스’는 ‘베네픽스’와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국제혈우사회에서는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다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릭수비스’는 국내 시장에서 약 20%에 육박한 시장점유률을 나타냈다는 것. 이같은 수치는 국제 혈우사회에서 한자리 수 점유율에 그친 것에 비하면 상당한 성과이다. 반감기가 긴 롱액팅은 아니지만 ‘릭수비스’가 이같은 성과를 거뒀다는 것은 국내 9인자 치료제시장은 매우 탄력적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릭스비스’와 ‘베네픽스’를 사용하는 환자들은 호불호가 있었다. ‘베네픽스’를 사용하는 환자들이 손꼽는 장점으로는 ‘간호사 케어’를 많이 언급했다. 정기적인 관리와 정보를 습득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예방요법을 하는 환자들은 처방량이 다소 많기 때문에 나눠서 주사하기도 용이하다는 점을 들었다.

‘릭스비스’를 사용하는 환자들은 “릭스비스로 예방해보니 하루정도는 (반감기가) 더 가는 것 같다”며, 가장 먼저 반감기를 언급했다. 물론, 환자의 체질이나 상태에 따라 치료제의 효능효과는 차이가 날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주치의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8인자 환자들에 비해 9인자 환자들은 그 수가 적다. 따라서 거의 10년 동안 ‘베네픽스’가 전세계 시장을 기술 우위적 독점을 해왔다. 그 기간 동안 경쟁사들의 연구가 꽤 많이 진행됐고 성과도 높았다. 그러면서 기존의 베네픽스, 릭수비수 등과는 차원이 다른 ‘알프로릭스’와 ‘아이델비온’과 같은 차세대 9인자 치료제가 국내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알프로릭스’와 ‘아이델비온’의 출시가 기대된다. 일주일에 한 두번 내지 두 세번 씩 투여하는 환자들에게 주 1~2회 내지 보름에 한 두 번이라는 치료방법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획기적인 환경을 가져올 수 있다. 나아가 이수앱지스에서 임상연구 중인 ‘ISU304’는 피하주사 방식으로 주사할 수 있는 치료환경을 제공한다. ‘피하주사’는 주사할 때마다 정맥을 찾아야 했던 환자들에게(또는 보호자) 매우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임상연구가 완료될 때까지 ‘피하주사’에 대한 기대는 아직 섣부른 상태이다.

◇ 어디까지 왔나? 유전자치료

이처럼 혈우병 치료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유전자 치료도 큰 관심을 갖게 한다. 유전자 치료는 반감기 롱액팅을 넘어 혈우병의 궁극적 완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임상 시험 등에서 단 1회의 투여로 영구적인 완치의 수준까지 기대 할 수 있다는 보고들이 나오고 있다.

며칠 전, 화이자는 본사에서 ‘Meet the Media’ 행사를 개최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이 자리에 글로벌 화이자의 희귀질환사업 총괄담당 마이클 고틀러 대표가 희귀질환사업부의 비전과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고 하는데, 앞서 본지에서도 소개가 됐던 스파크 테라퓨틱스와의 유전자 치료물질 개발 소식을 언급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마이클 고틀러 대표가 방한했다는 것 자체로도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 번째는 국내 혈우병 치료제 시장의 변화가 예고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치료제가 퇴보하면서 경쟁사들이 치고 올라오며 ‘새로운 치료’가 가시화됐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화이자 내부적으로는 경각심을 일깨우고, 대외적으로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화이자의 재도약을 다시 한번 알리는 자리가 됐을 것으로 본다.

두 번째는 국내 영업여건을 재점검해 보는 기회를 가졌을 것으로 본다. 8인자 치료제 진타가 예상 밖으로 고전하고 있는 이유, 9인자 베네픽스의 매출 하락의 가능성 점검, 그 이유와 대처방법 등이다. 아울러 포화상태인 혈우병 치료제 이외의 타 희귀질환 치료제의 국내 판매 전략과 전망 등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화이자는 최근 TTR-FAP 치료제 빈다켈의 허가와 함께, 림프관평활근종증(LAM) 치료제로 라파뮨의 추가 적응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 및 인프라를 통해 22개의 희귀질환 치료제와 20개 이상의 후보물질을 보유하고, 81개 국가에 치료제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방위 압박이 위협적으로 가해지는 가운데, 화이자가 쥐고 있는 카드는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반면, 샤이어의 파이프라인은 상당히 다양하다. 8인자 ‘애드베이트’는 국내에서 이미 상당부분 입지를 공고히 했고, 9인자 치료제인 ‘릭수비스’도 빠른 기간내에 안착했다.

여기에다 앞서 언급한 ‘아디노베이트’는 시장 여건만 되면 언제라도 뽑을 수 있는 카드이고, 항체치료제 ‘훼이바’도 꾸준히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나아가 항체치료를 위한 ITI용 ‘이뮤네이트’도 사실상 시장에 안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샤이어는 국내 혈우병 치료제의 ABC를 모두 안착 시킨 셈이다.

샤이어는 여기에 덧붙이는 비전제시가 또 하나 있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유전자 치료이다. 꺼낼 카드가 많다는 건 샤이어의 가장 큰 장점이다.

녹십자의 전략도 만만치 않다. 혈우사회에서 풍미를 누렸던 90년대를 다시 한번 회상하며, 리더로의 발돋움을 모색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현재 연구 개발 중인 롱액팅 8인자 9인자 혈우병 치료제는 현존하는 치료제 중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특히 피하주사까지 가능해 지면서 환자치료에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

혈우병 시장의 글로벌 확대도 나서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서 해외시장 개척에 광폭횡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녹십자는 최근 5년간 연구·개발 비용을 2배가량 늘렸고 올해도 연구·개발 투자를 지난 해 대비 20% 이상 늘릴 방침이다.

◇ 혈우병 환자들의 선택, 치료의 중심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완치’에 대해선 물 건너 불구경해왔던 환자들도, 이제 유전자 치료소식이 희망고문 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반신반의’했던 환자도 조금씩 신뢰 쪽으로 기우는 듯한 양상이다. “그래 1년에 한 두번 주사하면 된다면 그것이 완치나 다름없지” “정말?” “설마 벌써?” 다양한 반응을 나타낸다.

정보에 앞선 환자들은 이제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이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혈우병 환자의 노후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의 환자들은 독거위주의 형태로 지내다가 조용히 삶을 마감했다면, 미래의 환자들은 라이프 삶을 즐기며 쾌적한 삶의 마감을 예비해야 한다는 거다.

혈우병이 불치의 병에서 난치의 병으로 바뀐지 오래됐고, 이제는 난치에서 예방 관리치료로 바뀌고 있다. 즉, 관리만 잘 하면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사보험’도 혈우병 환자에게 개방되고 있다. 실제로 한 혈우병 환자는 “유병자 보험에 가입했다”며 “보험사에 혈우병을 고지하고도 3개의 상품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으로 뇌출혈, 심경근색, 입원시 입원료 등을 수령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혈우병 환자에게 빈번히 발생되는 관절수술도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세상은 점차 바뀌고, 개선되어 간다.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놓쳐버린다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변화하는 환경을 면밀히 점검해 가면서, 우리 환자들에게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선두자들이 되어 보자.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