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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묵군 "혈우병은 이제 제 삶에서 no 비중"인터뷰 : 긴 터널 지나 캠퍼스생활 만끽하는 '톨킨 번역가'
하석찬 기자  |  newlove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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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20  17: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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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넘어져 차가운 바닥에 몸을 대고 있으면 쉽게 일어날 기운을 내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때 아주 작은 온기나 같은 편이라 느껴지는 시선만 있더라도 영영 그 바닥에 누워있진 않아도 되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게 사람 아닐까 싶다. 혈우병 항체라는, 특히 항체약품도 잘 듣지 않아 막막한 긴 터널을 지나 온 한 환우를 소개하는 날이다. 최근 여러 매체와 뉴스를 통해 이 청년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힘을 전하고 있다. 인터뷰를 읽은 후 더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Q. 본인 소개 좀 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인문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박현묵입니다.

Q. 요즘 날이 많이 따뜻해졌는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A. 주중에는 수업을 듣고 저녁에 남는 시간에 주로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밤이 되면 기숙사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죠. 왜냐하면, 제가 이번 학기에 학교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밀린 공부를 하기 위해 캠퍼스에 머물다 가는 게 좋아요. 그래서 늦은 시간까지 보통 캠퍼스 생활하고 있습니다.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머물면서 놀거나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죠.

▲ 서울대 캠퍼스 내 '아방궁'이라 별칭이 붙은 쉼터에서 인터뷰 중이에요.

Q. 혈우병 치료는 어떻게 받고 있나요?
A. 19년도부터 작년 초까지 피투시란이라는 약을 정기적으로 맞다가 지금은 헴리브라를 정기적으로 맞고 있고 그 외에 물리치료 같은 건 지금 하고 있는 게 없어요. 물리치료보다는 그냥 개인적으로 운동이나 스트레칭 같은 것 위주로 지금은 얘기가 되고 있지만 보통은 제가 까먹어서 그냥 잊고 넘기는 경우가 많죠.

Q. 약을 바꾼 이후로 특별하게 출혈 같은 건 없었나요?
A. 네, 지금까지 특별한 출혈은 없었습니다. 중간에 피투시란 임상시험이 중단된 적이 있어서 헴리브라로 갈아타기 전까지 그 텀 동안 겪었던 출혈을 빼면 딱히 없어요. 다만 일상적 생활에서 가끔 관절이 뻐근해진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 생각에는 관절염이 아닐까 생각이 돼요.

Q. 지금 본인 몸 중에 제일 불편한 곳은 어디예요?
A. 한 두 군데가 아니긴 하지만 가장 불편한 곳이라면 지금은 오른쪽 고관절이 매우 불편해요. 고관절 가동 범위도 심각하게 적어졌고 힘도 많이 빠져서 90도로 구부리는 것도 힘들어요. 걸터앉는 것만 가능한 상태죠.

▲ 주로 수업을 듣는 인문관 입구

Q. 정형외과 수술을 계획하고 있거나 그러지는 않고요?
A. 당장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없어요. 조만간 정형외과 진료를 잡아야지 하는 그런 생각은 있지만 제가 좀 뭐냐 거시적인 계획이 있으면 많이 미루는 타입이라서요.

Q. 나에게 혈우병이란 무엇인가요?
A. 혈우병이란 글쎄요. 굳이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릴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아! 그냥 예전에는 저를 많이 괴롭혔는데 지금은 약도 있다 보니까 혈우병이라는 것 자체는 사실 제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어졌죠. 다만 정형외과적 후유증만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Q. 수술 방법도 많이 좋아질 거니까 차츰차츰 계획을 좀 잡아보면 좋을 것 같네요.
A. 사실 2019년에 신약을 맞기 이전까지만 해도 저는 보통 약을 놔도 잘 듣지도 않고 그렇다 보니까 혈우병이라는 게 되게 큰 걸림돌이긴 했어요.

▲ 서울대학교 강의실 모습. 다른 학교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Q. 약을 맞아도 지혈이 되지 않았으면 많이 힘들었을텐데 어땠나요?
A. 맞아도 영 제대로 효과도 안 느껴지고 그런 세월이 반복되다 보니까 나중에는 차라리 약을 맞는 게 더 귀찮다는 수준까지 체념하게 됐죠. 그래서 한 몇 년 동안은 그냥 아파도 냉찜질 정도만 하고 그냥 견디는 게 일상이었어요. 아파서 학교도 안 가고 해서 남아도는 게 시간이기도 했고 아프긴 한데 제가 학교에 다니거나 아니면 뭔가 활동을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거나 했다면 그 아픈 게 굉장히 문제가 됐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한 몇 년 동안은 집안에서 칩거하고 있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아파도 방해는 그렇게 되지 않았죠. 뭔가 삶에 대한 방해는 별로 되지 않았어요.

Q.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A. 힘든 시기를 견뎠다 라고 하는 것부터가 좀 애매해요. 저는 차라리 제가 그 시절을 견딘 건 아니고 그냥저냥 시간을 보냈다 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거든요. 별 생각 없이 살았어요. 정말 거시적으로 보면 그 시기에 장래라든지 앞으로의 내 삶이라든지 이런 걸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집 안에만 있었고 가끔 어디 출혈이 나서 아프다 보니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지냈죠. 정말 가끔 재밌는 책을 본다든가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Q. 서울대 인문학부에 다니는 걸로 아는데 거기서는 어떤 공부를 하나요?
A. 그냥 인문학이라는 키워드로 묶여 있는 과목들이 많은데 원하는 수업을 골라서 듣죠. 주로 목표하는 과가 있으면 그 과 위주로 저는 듣고 있어요. 현재 언어학 위주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 세부 전공을 선택해야 되고 사실 이번 학기에 전공 진입 기간이 오면 전공 선택을 해야 해요.

▲ 현묵군이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는 전동 휠체어~ 이것만 있으면 어디든 갈수 있다고 하네요.

Q. 언어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어떤 영문학쪽 인가요?
A. 작년에 영문학 수업을 하나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영문학은 저한테는 너무 힘들다고 느껴서 지금 언어학 위주로 수업을 듣고 있죠. 예를 들어서 문법적인 부분이라든지 아니면 역사라든지 아니면은 음성이라든지 이런 분야들이에요.

Q. 학교생활은 어떤가요?
A.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별일이 많죠. 사실 저는 지금 막 동아리라거나 아니면 모임 같은 건 거의 피하다시피 하고 있고 혼자 지내고 있는데도 매일매일 있는 숙제라든지 앞으로 장기적인 과제라든지 또는 슬슬 다가오는 시험이라든지 이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또 몇 분 지나서 바로 오늘 수업 끝나고 아니면 이번 주말에 놀 생각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게 됐다가 또 바로 몇 분 만에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기도 했다가 이렇게 하루하루가 계속 달라지는 순간의 연속이죠.

Q. 공부 말고 취미는 어떤게 있나요?
A. 대부분 영화 보기 아니면 가끔 진짜 꽂힌 책이 있으면 책 보기, 유튜브 보기 정도 취미가 있어요.

Q. 가족들이랑 나들이도 자주 가나요?
A. 전동휠체어를 작년에 장만했어요.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는데 맛들려 요즘은 가끔 혼자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하면 그냥 휠체어를 타고 나가는 걸 낙으로 삼고 있죠. 가족이랑은 보통 안 나가요. 가족이랑 함께 나가는 건 이미 20년 동안 수도 없이 해봤거든요. 이제 저 혼자 제가 내키는 대로 나갈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죠.

▲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으로 햄버거집으로~

Q. 혼자 나들이 갔던 곳 중에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인가요?
A. 이건 작년 일이에요. 제가 기숙사에 오기 이전에 집에 살던 시절 일인데 언젠가 한 번 정말 동네 외곽까지 그냥 휠체어만 타고 나가본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잠깐 멈춰 서서 그냥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니까 다 그게 굉장히 리프레시하고 좋더라고요. 말하자면 자유의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Q. 지금 번역 중인 J.R.R.톨킨의 책, '끝나지 않은 이야기' 어떤 건지 짧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A. 짧게 설명하기 힘든 책이지만 일종의 문집이에요. 어떤 문집이냐 하면 톨킨이 쓰다가 미완성으로 남게 된 글들 중에 몇 가지를 아들이 출판해서 미완성 상태 그대로 본인의 주석과 해설을 달아서 묶은 거죠. 한데 모아둔 진짜 문집이라고 밖에는 간단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그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면은 그때부터는 아주 장황하게 이야기해야 되거든요.

Q. 돌킨의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A. 제가 한창 톨킨이라는 작가에게 빠진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 작가에 대해서 이런 것 저런 걸 알아보는데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그 책들에 대한 일종의 도전 욕구 같은 게 생겼는데 마침 톨킨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한 번 이 책을 아마추어로 번역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그런 움직임이 생겼어요. 그래서 해외에서 직구를 해서 아주 느린 페이스로 읽으면서 실시간으로 번역을 조금씩 하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된 거죠.

▲ 기숙사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어요.

Q. 책 번역을 하려면 영어도 잘해야 하잖아요? 영어 공부를 어려서부터 했었나요?
A.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어쩌다 보니 유튜브 또는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서 영어를 접할 기회는 아주 많았죠. 그러다 보니 몸에 밴 게 있었는데 마침 그 상태에서 톨킨을 만나니까 제가 여태껏 본 적 없는 고난도의 문장이 쏟아졌죠. 처음에는 정말 읽는 페이스가 느렸어요. 한 30분 이상 걸려야 한 페이지를 간신히 읽을 수 있고 그런 수준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그런 걸 하다 보니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더라고요. 비유하자면 갑자기 10kg짜리 아령을 들기 시작하니까 근육이 삽시간에 불어나 버리는 것 같은.ㅎㅎㅎ

Q.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A. 저는 항상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처해요. 왜냐하면, 저는 명확한 꿈이랄 게 아직은 없어요. 입학하기 전에만 해도, 구체적으로는 피투시란을 맞으면서 삶의 질이 나아지기 전까지 그냥 진로라든지 앞날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거든요. 저는 마치 이제 부모 품 밖으로 나온 초등학생과 똑같은 상황이에요. 그래서 저한테는 명확히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할 꿈이랄 게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요. 지금도 그냥 매일매일 당장의 숙제 또는 오늘 좀 시간이 많이 남으니까 할 일을 하고 놀거나 당장 눈앞의 일들만을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을 뿐이죠.

Q. 학교생활도 잘하고 건강 관리도 잘하고 좋은 모습으로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네요.
A. 항상 건강 관리가 문제죠. 제가 건강을 위해서 매일 운동이라든지 스트레칭 같은 걸 좀 해야지 하다가도 잊어버리고 넘기는 경우가 많아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자신은 이제 막 부모 품 밖으로 나온 초등학생 같다는 현묵군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자도 오랜 시간 현묵군의 어머니를 알고 지내왔기에 현묵군의 겸손함과 따뜻함이 어디에서 묻어나온 것인지 그 말을 통해 더 짙게 알 수 있었습니다. 현묵군이 움츠렸던 날개를 한껏 펴 날아오르는 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헤모라이프 하석찬,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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