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더 파더>, 이 영화를 다 본 후 당신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있게 됩니다.

건강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을 때 가장 고민이 되는 질환이 무엇일까? 고혈압? 당뇨? 암? 치매? TV를 보면 하루 종일 귓전을 때리는 광고의 절반은 보험 광고이고 그 중의 절반은 치매 보험 광고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겠지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광고를 잘 만들어 ‘설마 나도, 혹은 우리 가족이?’라는 생각이 절로 나게 만든다.

▲ TV를 보다 보면 치매와 관련된 보험 광고가 너무나도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치매에 대한 두려움과 관심이 높다는 의미도 된다.(출처 – 유튜브 영상)

현대 의학의 발달로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진행 속도를 매우 느리게 하거나 발병을 미리 차단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질병이 바로 노인성 치매이다. 혈우병 환자들도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각종 성인병에 대한 고민은 물론 이러한 노인성 뇌질환에 대해서도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안소니는 본인의 아파트에서 은퇴한 삶을 사는 노인이다. 딸 앤은 가끔 아버지를 찾아 뵙지만 뭔가를(특히 손목시계) 자주 잃어버리고(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매번 두는 곳을 잊어버린 것일뿐…), 간병인과 매번 다투는 일로 고심이 많다.

할리우드의 대배우 ‘안소니 홉킨스’가 열연한 영화 <더 파더(The Father)>는 이러한 치매를 주제로한 영화이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안소니(극중 이름도 안소니다)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은퇴한 삶을 보내는 노인이다. 가끔 딸 앤이 찾아와 집안일을 도와주지만 자꾸 물건을 잃어버리는 데다가 간병인과 자꾸 다투는 것 때문에 걱정이다.

▲ 어느날 거실에 나가보니 왠지 모르는 남자가 태평하게 신문을 읽고 있다. 누구냐고 묻자 본인은 폴이라며 앤의 남편이라 한다. 앤은 제임스와 파리에 간다고 했는데… 게다가 10년전에 이혼하지 않았나… 아니 그건 그렇고 우리집에 왜 눌러 앉은거지? 나가라고 호통치자 딸 앤을 전화로 부른다. 하지만 집에 들어온 그녀는 안소니가 익히 알던 그녀가 아닌데…

그러던 어느날 안소니는 우연히 거실에 모르는 남자가 편안하게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을 폴이라고 소개한 남성, 안소니는 여기서 뭐하냐고 하니까 폴은 여기서 산다고 했다. 정신나간 말이라고 하자 앤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폴이 말한다. 그리곤 집에 돌아온 앤을 보자 안소니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가 알던 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것, 안소니는 황급히 폴을 다시 찾아보지만 그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점점 무엇인가 이상한 것을 느끼는 안소니,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는데…

▲ 자기 기억이 혼돈스러운 것을 알기 시작한 안소니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지 못해 무기력해진다. 이런 증상은 더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이 영화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입장에서 치매라는 질환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보통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치매는 간병인의 입장에서의 고통이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치매에 걸린 본인 당사자이며,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 역시 치매 당사자라는 것이다.

▲ 다음날 새로운 간병인을 소개하는 앤, 그녀의 이름은 로라라고 한다. 초면에 안소니는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는가 싶더니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아파트를 차지하려고 모르는 남자를 끌어들이고 간병인을 들이는 딸의 계략이라며 소리치고 방에 들어간다. 딸은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하지만 로라는 개의치 말라고 한다.

안소니 홉킨스는 안소니라는 캐릭터를 통해 분명 내가 잘 알고 기억했던 것들이 점점 공중분해 되어 가는 과정을 거침없이 보여주었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것들, 그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들인데 이것들이 실제로는 다르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가 그를 감싸게 되는 것이다.

▲ 전국, 아니 전세계의 치매 간병인이여! 누군들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았겠는가? 이 영화는 이러한 모든 측면에서의 상황을 재현해 놓았다. 그야말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영화는 안소니의 기억(대부분 대화로 구현이 된다)뿐만 아니라 영화 속의 미장센(소품, 가구 등)을 이용하여 치매가 진행되는 상황을 구현하게 된다. 점점 상황이 나빠짐에 따라 소중히 기억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들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프랑스의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가 쓴 희곡을 영화화한 것인데, 2016년도의 ‘아버지’란 제목으로 국립극단에서 연극으로 상영된적이 있었다. 연극 ‘아버지’에서는 배우 ‘박근형’이 주연을 맡았는데 이 연극에서도 아버지가 기억을 잃어감에 따라 연극 내의 가구가 하나씩 사라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는 평이 있다.

▲ 앤이 남자친구라고 저녁식사에 초대한 사람이 지난번에 아파트에서 남편이라고 만난 사람과 다르다. 하지만 안소니는 그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이 남자가 잃어버린 자기의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소니 홉킨스의 명연기에도 불구하고 작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는 우리에게 와칸다 포에버로 친숙한 ‘채드윅 보즈먼’에게 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왜냐하면 <마 레이니의 블랙 버텀>에서 레니역을 맡아 명연기를 보여주었으나 대장암 말기인 것을 뒤늦게 밝히고 아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다크나이트>의 조커역을 맡았던 ‘히스 레저’처럼 사후 수상을 받게 되지 않겠느냐 예상했지만 오스카는 안소니 홉킨스의 신들린 연기력에 손을 들어주었다. 솔직히 누가 상을 받아도 아깝지 않은 연기력이다.

▲ 결국 손목시계 때문에 한바탕 한 안소니는 앤과 함께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간다. 옛 기억은 놀라울만큼 잘 대답하는 안소니, 하지만 몇 일 전, 아니 어제의 일은 까마득하다.

안소니 홉킨스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 외에도 많은 기록이 나온 시상식이었다. 우리로서는 윤여정이 아시아계로는 두번째, 우리나라 배우 처음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안소니 홉킨스는 최고령 수상자로 기록을 갱신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윤여정 역시 사실적인 치매 환자 연기로 수상했다는 점이다.(아카데미는 왠지 치매, 에이즈, 동성애자 등 평범하지 않은 연기를 한 배우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다)

▲ 이젠 혼자 옷 입는 것도 힘들어진 안소니, 하지만 앤은 불평 한마디 없이 아버지를 돕는다. 안소니도 이런 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하지만 가끔 폴을 만나면 아파트를 노리고 있다고 소리치는건…

혈우병 환자도 치매라는 질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과거 혈우병 환자의 평균수명은 길지 않았지만 치료제의 눈부신 발달로 인하여 수명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에 따라 혈우 환자들도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오게 된 것이다.

▲ 앤의 남자친구 폴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안소니, 이제는 요양원에 가셔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앤에게 몰래 말하는 것을 안소니가 우연찮게 엿듣는다.

어느 누구도 치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이가 들어 퇴행성으로 오는 치매든 뇌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오는 치매든 어느쪽이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일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것 역시 치매이다. 준비된 상태에서 두려움에 닥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치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 어느날 아침, 둘째딸이 그려주어 아끼던 그림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안소니, 그림이 어딨냐고 소리치며 난리를 부리지만 그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아니, 그 귀여워하던 둘째딸조차 못본지 오래이다.

혈우병을 가지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도 치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다. 하지만 왠지 혈우 환자들은 치매는 물론 노인성 질환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당장의 출혈에 대한 치료가 급해서일까, 아니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서일까? 어느쪽이든 언젠가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오게 될 것이다.

▲ 그래도 간병인 로라는 프로다. 안소니가 어떤 악담을 하더라도 치매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간병인인가보다. 안소니와 때로는 말동무가 되어주며 그를 돌봐주는데…

<더 파더>는 개봉한지 좀 지난 영화이다. 하지만 아직도 TV에서 치매 광고가 나오는 날이면 안소니가 생각날 정도로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잃어버리는 것이 많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 어느날 거실에서 우는 소리를 내어 앤이 황급히 뛰어가보니 안소니가 서서 울고 있었다. 앤은 어쩔줄 몰라하고 폴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안소니는 지금이 몇시인지, 뭐하고 있었는지, 빌은 어디가고 갑자기 폴이 나타났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해 어린아이처럼 울고 만다.

이런 분들께 추천!

- 안소니 홉킨스의 신들린 연기를 감상하고 싶다면!

- 치매에 대해 알고 싶다면?

- 아버지께 전화 한번 드려야겠어요…

▲ 영화에서는 이렇게 고개숙인 안소니의 뒷모습과 그를 지켜보는 간병인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사실 치매라는 것이 기억을 점차 잃어버리는데,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더더욱 힘든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분들은 좀…

- 액션, 스릴러 영화가 아니자나!

- 무거운 주제는 좀…

▲ 결국 홀로 남겨진 안소니와 초췌해진 그의 모습… 마지막 클라이막스는 그에게 오스카를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본 기자도 치매라는 질환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안소니 홉킨스, 그의 연기를 통해 정말로 피부에 와 닿는 바가 많았다. 물론 직접 당사자가 된다면 지금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하겠지만 말이다.

[헤모라이프 황정식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