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외국환우이야기
"할 수 없는 일 배제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남는다"“소거법적 사고”로 역경을 이긴 시오다씨
조은주 기자  |  cap38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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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30  16: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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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혈우병 환자 시오다씨(직장인/관동거주) & 약혼자 아라쿠라 메구미씨와의 인터뷰-

♣ 집이나 학교 양호실에 주사 제제 상비.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보충요법을 시행 (시오다씨)

너무 어린시절의 일이라 거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혈우병A 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아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보충요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습니다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는 학교선생님께 질병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자택에 있는 냉장고 뿐만 아니라, 학교 양호실 냉장고에도 주사제제를 상비해 두고 출혈이 일어났을 경우나 혹은 통증이나 위화감이 생겨서 출혈 가능성이 발생할 경우, 그 자리에서 보충요법을 실시하였습니다.

초·중학생 시절에는 자택에서는 부모님께서, 학교에서는 양호선생님께서 주사를 놔주셨습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에 참석했을 때는 만일에 대비해서 양호선생님께서 제제를 아이스박스에 넣어두고 저를 케어해 주셨습니다. 자가 주사는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연습을 시작했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집이나 학교에서도 직접 주사를 놓았습니다.

당시에는 정기 보충요법이 새로운 보충요법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항체 발생의 문제가 우려되어 출혈 가능성이 있는 활동을 할 경우에 예비적 보충요법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출혈이 발생하거나 출혈 가능성이 생길 경우에도 보충요법을 기본으로 활용하였고 정기 보충요법은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성격적으로 밖에서 뛰어노는 타입이 아니고 실내에서 책을 읽거나 블록 놀이를 좋아하는 타입이라 크게 다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왼쪽 발목이 아팠고, 그런 저런 사이에 오른쪽 발목까지 아파서 걸을 수 없게 되면서 목발을 사용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부모님께는 왼쪽 발목이 아프면 곧바로 주사를 놔주셨고, 실제로 주사를 맞기만 하면 발목이 아프거나 걸을 수 없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가 주사가 가능해진 후에는 발목이 아프면, 안정→냉각(찜질)→압박(보호대) 등의 순서로 응급처치를 하고 바로 자가 주사를 실시했습니다.

지금도 정기 보충요법은 실시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예비 보충요법과 출혈 시 보충요법을 철저하게 실천한 덕분에 관절에 장애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부모님, 학교 선생님, 친구 등 주위에서 저의 질병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계절 관동지방의 단풍은 후지산과 함께 가장 아름답다


♣ 학교에서 혈우병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 친구들에게 도움 받을 때가 많았다. (시오다 씨)

제가 다른 사람에 비해 피가 잘 멈추지 않는 병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입니다. 학교 선생님께는 부모님께서 저의 질병에 대해 전달하셨고, 저는 저 나름대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시절 학급 친구들에게 "나는 상처를 입으면, 죽는 체질이야", "나는 차에 치이면 바로 죽는 타입이야" 이런 식의 농담조로 병에 대해 커밍아웃을 했답니다.

질병에 대해 커밍아웃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께서 질병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셨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가, 저의 학년이, 그리고 우리반 아이들이 간질이나 천식, 아토피 피부염 등을 포함해서 질병에 대해 커밍아웃 하기 쉬운 분위기였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어쨌거나, 저의 질병에 대해 솔직하게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한 덕분에 여러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친구와 싸움이 날 것 같으면 리더격인 친구가 시오다는 약하니까 때리면 안 된다며 중재에 나서 주기도 했고, 소풍으로 등산을 갔을 때에는 모두가 제 짐을 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 모든 가능성에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배제하더라도 반드시 몇 가지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남는다. 그것을 열심히 하면 된다.(시오다 씨)

저는 공부를 무척이나 열심히 했고 저를 서포트해 준 친구에게 은혜도 갚았습니다. 솔직히 보충요법은 귀찮았고,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체육은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좋고 싫음을 따진다면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발목을 금방 다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서 체육수업을 쉴 때가 많았던 탓에 우수한 성적을 받지는 못했어요. 비록 체육은 할 수가 없지만, 공부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동아리활동도 야구부나 축구부 같은 운동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초등학생 시절에는 부모님께서 허락해주지 않으셔서 합창부에 들어갔고, 중학교에서는 운동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 하에 미술부에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낳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히 여기지 않고, 혈액응고인자가 결핍되고 피가 잘 멈추지 않는 체질인 것에 대해 부모님께 불평만 하는 비생산적인 것을 무척 싫어하는 타입이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못한다고 못하는 부분에 대해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잘 할 수 있는 공부나 합창, 미술 같은 것을 운동 대신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저는 '소거법적 사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소거법적 사고란? 모든 가능성을 열거한 후,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빼고, 나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지금은 이 소거법적 사고가 나의 기본적인 철학이 되었습니다. 이 사고가 혈우병 뿐만 아니라, 일상의 트러블이나 가족의 불행 등이 잇따라 겹쳐 마음이 아플 때에도 저를 버티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 깊은 어둠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프로그래머로 활동 개시.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소중한 여인과도 만났다. (시오다 씨)

제가 가슴앓이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그래머로 활약하던 7년차 때입니다. 장기 입원 치료를 거, 자택에서 요양을 하던 중,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30대를 맞이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소거법적 사고를 바탕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노력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NEET 주식회사입니다.

NEET 주식회사는 구성원 전원이 이사가 되어, 각각의 멤버가 제안·기획한 모든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회사입니다. 이사들이 회의장에 모여 대면회의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회사내부의 일에 대해서는 니코니코 생방송/동영상이나 Ustream으로 전달이 되고, 이사들끼리의 커뮤니케인션은 Skype통신으로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택에서도 충분히 사업에 종사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아날로그 게임 제작에 관심이 있던 저는 NEET주식회사 이사로서 아날로그 게임 사업부에 소속되어 아날로그 게임의 개발 및 판매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작권이 없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타로를 모티브로 한 '아가 듀엘'이라는 아날로그 게임을 제작했습니다.

뒤이어 '다이아몬드를 파자'라는 아날로그 게임 제작을 시작했는데, 카드에 사용하는 일러스트를 그려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고 급하게 일러스트레이터를 찾고 있던 차, 우연히 참석한 주주 총회에서 회사내 공식 방송 어시스턴트를 맡고 있던 지금의 약혼자 아라쿠라 메구미씨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단순한 동료 사이에 지나지않았는데, '다이아몬드를 파자'라는 게임을 만들면서 자연과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와의 장래를 고려해 볼 때, 성과에 따른 임원 보수로는 생활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NEET 주식회사를 사임하고, 재택근무 계약사원으로 취업이 가능한 회사에 프로그래머로서 재취업했습니다.

♣ 의사에게 혈우병이란 어떤 병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물어보고, 내가 살아가는 시대보다 손자의 시대에는 혈우병이 절대적으로 안전해 질 것이라는 것을 믿고, 그녀와 결혼을 결심했다. (시오다씨)

물론 혈우병은 유전성 질환이기 때문에 그녀와의 장래에 불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주치의 선생님께 다시 한 번 혈우병이 어떤 질병인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특히 유전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은 내 아이 대에는 혈우병이 발병하지 않더라도 손자에게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혈우병은 과거 어린 시절에는 약간의 부상으로도 쉽게 목숨을 잃는 질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충요법이 확립되면서 더이상 목숨을 잃게 되는 질병이 아니게 되었죠. 하지만 감염의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 또한 지금은 해결이 되었으며, 주사제제는 보다 컴팩트하고 사용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 의학 발달의 혜택을 많이 받았고 손자 대에 이르면 더욱 의학은 진보할 것이며 그로인한 혜택들을 많이 받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설령 손자가 혈우병에 걸린다 해도 저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해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포기하거나 아이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와 살림을 시작했고, 둘이 함께 있게 되면서 이전보다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가능성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 혈우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그냥 둘이서 잘 헤쳐 나가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라쿠라씨)

교제를 시작하고 나서 시오다씨에게 '혈우병이란 유전적 질병으로, 선천적으로 피가 멈추기 어려운 병이라는 것', '지금은 피를 멈추는 치료법이 있다는 것', '하지만 관절에 내출혈이 반복되면, 점차 관절의 가동범위가 좁아져,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 등등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뭔가 문제가 생기면 둘이 도와서 극복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사실, 제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서 주변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칩거 생활을 하고 있던 중에,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NEET 주식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주 1회 간격으로 회사내의 공식 방송인 니코니코 생방송/동영상을 전달하는 어시스턴트를 맡게 되었죠.

시오타씨는 그 동영상을 전달받아서 봤기 때문에 저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주주 총회를 겸한 이사회의에서 직접 만나게 되었고 '다이아몬드를 파자'라는 카드 게임의 카드 일러스트를 그려 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일러스트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예전부터 일러스트를 자주 그렸기 때문에 제가 그 일을 맡기로 했습니다.

이후 Skype로 연락을 자주하면서 둘이서 게임을 완성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고, 그때문에 작업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시오타씨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만들자” 이런 식으로 가이드 라인을 정해주었고 저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시오타씨의 이런 지지와 격려가 있었기 때문에, 일러스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장래에 시오타씨에게 장애가 생긴다면 그건 제가 커버하면 됩니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시오타씨와 사귀기 시작했고,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둘이서 함께 있으면 여러가지 일을 할 수가 있어서 좋아요. 예를 들면 지금은 시오타씨와 항상 함께 외출하고 있고, 그가 다리가 아플 때는 제가 짐을 들고 다닙니다. 시오타씨가 그러더군요. 예전에는 오도가도 못하게 될까봐 외출도 자제했었는데 지금은 둘이서 외출을 하니까 안심하고 먼 길을 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그리고 저희는 '헬프 마크'에서 힌트를 얻어 혈우병이라는 사실을 주위에 알리고, 주변의 도움이나 배려를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로고(사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로고는 시오타씨가 초안을 생각해냈고 제가 수정해서 만들었습니다.

혈우병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병에 걸린 것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주변에 커밍아웃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병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 보다 적절한 도움이나 배려를 받기가 수월하죠. 지금부터 둘이서 이 로고를 널리널리 전파해서 본인이 혈우병이라는 사실을 주위에 좀처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 둘이 함께 만든 응급시 혈우병 알림 로고

♣ 주위 사람들이 병에 대해 알고 있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본인이 직접 전달하지 못할 경우의 수단으로 이용하면 좋을 듯 (시오다씨)

혈우병이라는 유전적 질병을 오픈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혈우병이라는 병에 대해 정확히 알고, 어떤 경우가 위험한지를 미리 알고 있으면 적절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친구들도 그 아이들 나름대로 제 질병을 잘 이해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신체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와 같은 혈우병 환자분들께서는 가능하면 용기를 내서 주위 사람들에게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선 우리가 만든 로고를 사용해 주시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로고로 인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살다 보면 고민되는 일이 혈우병에 관한 것 뿐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혈우병과는 상관없는, 마음의 병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고민이 생긴다면 그때 소거법적 사고를 떠올렸으면 합니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고 해서 가능성이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한두 가지는 남을 것입니다. 제가 그렇듯이, 혹시 하나 밖에 남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길은 반드시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헤모라이프 조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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