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혈우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안전성’이었다면, 최근 혈우사회의 이슈는 ‘편리성’일 것이다. 어떤 혈우병 치료제가 환자들이 투여하기 쉽게 고안되어 있는가? 라는 거다.
최근 녹십자에서는 프리필드 시린지 타입의 그린진-에프를 출시하면서 ‘편리성’ 이슈에 편승했다. 물론 국내에 도입된 치료제 중에 편리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치료제는 한국화이자제약의 진타-솔로퓨즈이다. 이 치료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약품교체라는 허들을 넘어야 하지만, 일단 그 허들을 넘고 나면 신세계를 맞이한 것처럼 너무나도 편하다는 것이 진타-솔로퓨즈를 사용하고 있는 환우들의 평가이다.
녹십자 그린진-에프에는 프리필드시린지가 있고, 화이자 진타-솔로퓨즈에는 올인원타입의 듀얼챔버시린지가 있다. 그러면 샤이어 애드베이트에는 무엇이 있을까? 글로벌에 출시된 애드베이트에는 ‘박스젯3’가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국내에는 구형 디바이스인 ‘박스젯2’가 장착되어 시판되고 있다. 왜 샤이어는 ‘박스젯3’를 공급하지 않을까?
△박스젯3가 적용된 애드베이트 영상
우리는 여기서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시장 절대 지배자의 태만 또는 매너리즘을 지적할 수 있다. 즉, 굳이 “바꾸지 않아도 문제없다”는 태도이다. 사실 환자들이 현재의 제품에 적응이 되어 있으면 개선된 디바이스가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는 자기합리화, 또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디바이스는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등 최신 디바이스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를 에둘러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속내를 비치지 않으므로 어떤 이유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과거 샤이어가 애드베이트를 국내에 런칭하면서 자사의 치료제 리콤비네이트와 동등한 가격으로 국내공급을 결정한바 있다. 리콤비네이트는 1세대 치료제였고 애드베이트는 3세대 치료제였다. 이렇게 세대를 구분하더라고 상당히 개선된 치료제임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가격으로 국내에 공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샤이어가 환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먼저 액션한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도입을 진행한 것일까?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
당시 바이엘의 코지네이트FS가 국내에 런칭을 하기 직전이었는데 해당 치료제는 2세대로 구분이 됐다. 2세대 코지네이트FS가 런칭하면서 1세대 리콤비네이트 보다 가격을 낮춰 국내에 런칭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샤이어는 자사의 3세대 치료제인 애드베이트를 1세대인 리콤비네이트와 같은 가격으로 런칭하면서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시장 디펜스를 이뤄낸 것이다.
이같은 과거 사례를 보면, 샤이어는 적절한 자극과 긴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샤이어는 왠만한 자극으로 개선된 디바이스를 도입시기는 어렵다. 사실 샤이어는 혈우병 치료제의 파이프라인이 세계혈우사회에서 절대강자로 꼽히기 때문이다. 디바이스만이 아니다. 롱액팅 치료제도 한발 앞서 국내출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든카드 ‘아디노베이트’도 샤이어의 감춰진 카드 중에 하나이다. 현재 국내 혈우병 환자 중 소수가 ‘아디노베이트’를 사용하고 있다. 임상이라는 차원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치료제는 기존의 치료제보다 반감기가 길다. 반감기가 길다는 뜻은 프로플락시스(예방요법)로 계산한다면 연간 투여횟수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시말해서 치료제 투여횟수가 적어 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혈우병 완치시대로 접어드는 초석이 된다.
이처럼 샤이어는 어마무시한 비장의 무기들이 줄지어 포진되어 있다. 더구나 아직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새로운 치료제까지 임상을 상당부분 진척시켜 놨다. 이런 점에서 샤이어는 세계혈우사회의 ‘절대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샤이어는 이제 절대강자라는 위치에 걸 맞는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 경제원리를 적용한 계산적인 셈법이 아니라 파이오니아 적인 혈우병 치료제 선두기업에 걸 맞는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단지 ‘박스젯3’와 같은 디바이스만을 서둘러 도입해달라는 취지가 아니다. 글로벌과 차이없이 국내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사의 제품이 세계최고라는 확신이 있다면 어떤 장애물이라도 강하게 부딪혀서 글로벌과 국내혈우사회가 격차없는 의료환경이 되도록 국내 혈우환우들을 존중해 줘야한다는 취지이다. 감질나게 애만 태우면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게, 슬렁슬렁 거리는 모습은, 마치 경주용 개처럼 먹이를 머릿맡에 달고 뛰게 하는 모습이다. 이것을 우리는 농단이라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박수를 보낸다. 이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크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샤이어가 지닌 혈우사회의 다양한 카드를 눈치 살피듯 시기를 가늠하지 않고 온전히 혈우사회에 쏟아 낼 때, 혈우환우들은 비로써 혈우사회의 일류기업 샤이어라는 찬사를 아낌없이 보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