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제 4세대 혈우병 치료제라 불리는 반감기가 길어진 ‘롱액팅’ 치료제를 놓고 국내기업간 특허권 분쟁이 본격화 되고 있다. 혈우사회에서 보면 이번 특허권 분쟁은 각 사의 사활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SK케미칼 입장에서 보면, 미국에 이어 유럽의약품청의 최종 시판허가까지 받은 '앱스틸라'의 제조법에 대한 특허로써 이미 출시까지 끝낸 치료제에 대해 녹십자가 발목을 잡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반면, 녹십자 입장에서 보면, 전임상까지 끝내고 내년 경부터 임상을 시작하려던 ‘롱액팅’ 제품이 SK케미칼의 특허 인정기간인 2023년 또는 2027년까지 출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녹십자가 지난 해 9월, SK케미칼에 대한 특허 무효를 제기해 올해 1월에 녹십자가 승소했다. 이에 SK케미칼 측에서 곧바로 항소를 제기하면서 특허 분쟁이 본격화 된 것이다.

◇ 국내 혈우병 환자들의 생각은?

90년도 말, 한국혈우재단이 설립되고 지금까지 녹십자사 등에서 제조공급 된 치료제를 사용해 왔던 국내 혈우병 환자들에게 ‘SK케미칼’이라는 회사는 매우 쌩뚱맞은 회사가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경향신문> 1973년 7월 13일자 보도에 보면 “희귀 혈우병 형제에 특효약 공수작전”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국내에서 혈우병 환자가 치료받은 첫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어 <경향신문> 1973년 9월 15일자에서는 “혈우병 치료제 항혈우인자 내년부터 국내생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녹십자사가 제조해서 혈우병 환자들에게 평생무료로 공급하겠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이후 녹십자는 항응고인자 AHF, 옥타비, 그린에이트, 그린모노, 그린진F까지 지속적으로 개선된 혈우병 치료제를 공급해왔다. 특히 1999년까지는 녹십자에서 환자 자부담까지 지원하면서 혈우병환자들의 치료환경을 개선해 왔고 2000년부터는 국가의 희귀난치성의료비 지원 정책에 따라 국가보조금으로 혈우병 환자의 자부담 지원이 시작됐다.

이렇게 70년도부터 지금까지 40여년동안 녹십자는 혈우사회에서 혈우병 환자들에게 작지않은 기여를 해왔고 국내 혈우병 치료역사를 환자들과 함께 기록해 왔다. 이런 가운데, ‘SK케미칼’이라는 회사가 혈우병 치료제를 들고 나타났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SK케미칼’의 특허 때문에 녹십자에서 향후 개선된 ‘롱액팅’ 치료제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국내 혈우병 역사 속에 단 한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신생회사(혈우사회의 시각)가 국내 환자에게 단 한번도 치료제를 공급하지도 않았던 회사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특허를 주장하는 모양새이다.

물론 법리적인 해석은 매우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업의 특허에 대한 부분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제품개발에 투자됐던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니 십분 이해될 수 있다. 반면 혈우사회에서는 ‘SK케미칼’의 특허주장은 무척 당황스럽다. 아니 황당한 상황이다. 40여년 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어떤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내가 당신 자식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교될 수 있을까?

현재 국내 혈우사회는 우리기업인 녹십자를 비롯해서 글로벌 기업인 샤이어 한국화이자제약 노보노디스크제약 한독 CSL 바이엘 등이 어울어져 호흡하고 있다. 나아가 향후 국내에 바이오젠사의 혈우병 치료제를 런칭하고자 하는 유씨비, 처음으로 국내에서 ‘1상 임상’을 계획하고 있는 이수앱지스까지 혈우사회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다.

이처럼 적어도 ‘SK케미칼’은 혈우사회에 통성명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특허분쟁’ 때문에 국내 혈우환자들이 개선된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 만큼은 피해야 할 것이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