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외국환우이야기
"두려웠던 자가 주사.. 불가능한 건 없었다"[일본 혈우환자 인터뷰] 도후쿠 거주 중학생 B군과 어머니
조은주 기자  |  cap3882@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9.30  16:43:0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생후 6개월경 혈우병이라는 진단 (어머니)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또 불안해서 계속 울기만 했죠. 아들이 생후 6개월 무렵, 팔 부분에 손가락 자국 같은 멍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곧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없어지지 않아서 걱정이 되어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내원해서 바로 혈액검사를 받았고, 아이의 증상과 검사결과를 본 주치의 선생님께서 혈우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고 이대로 돌아가면 위험하니 입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이가 입원 중에도 퇴원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제 마음을 세심하게 살펴 주시면서 아들의 병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복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의 병을 알고 나서 처음에는 매일이 불안하고 또 불안해서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 받은 책자에는, 다른 환자분이나 가족의 체험담이 쓰여 있었고 그 체험담을 읽고는, 「맞아, 그러네! 우리 아이와 똑같잖아」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며 울고 또 울고…..

일주일에 2번 응고인자 정기 보충요법을 위해 병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머리를 살짝 부딪치거나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을 때에는 걱정이 돼서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한밤중에 응급 외래로 뛰어간 적도 있습니다.

♣ 주치의 선생님의 세심한 설명과 친절함 덕분에 가정 요법이 시작될 무렵부터 불안감이 서서히 누그러졌다. (어머니)

혈우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일주일에 2번 정기 보충요법을 받기 위해 통원 하던 시절에는 수없이 병원에 전화하거나 진찰을 받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병세나 예후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실 뿐만 아니라, 제 기분까지 살펴주시고 「괜찮으니 마음 놓으세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주시고…..걱정되면 언제든지 병원에 와도 좋으니까요」 하고, 안심시켜 주시고 위로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드디어 정기 보충 요법이 통원에서 가정 요법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제가 아들에게 잘 주사하지 못하고, 특히 추운 날씨에는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서너 번 실패하고, 결국 병원으로 달려가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반복적으로 주사를 하다 보니 저도 아들에게 주사를 잘 놓게 되고,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제가 바로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제 마음이 상당히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주사 맞는 것에 강한 의문을 갖게 된 B군

어릴 때부터 병원에 다니며 주사를 자주 맞았기 때문에, 주사는 맞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왜 나만 주사를 맞아야 되는 거지?' 하는 마음이 강해졌고,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엄마에게 '왜?' '도대체 왜?'하고 반복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때 주치의 선생님께서 제가 혈우병이라는 사실과 피를 멈추기 위한 응고 인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충하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설명을 들었다고 해서 바로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역시 주사는 맞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4학년부터 야구부 클럽활동을 시작, 운동회나 수학여행도 즐겁게 참가 (B군)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운동량이 늘어나서 정기 보충 요법을 주 3회로 늘렸습니다. 그 외에 운동회나 야구 대회 등 이벤트가 있을 때는 미리 예비 보충 요법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몸을 어딘가에 부딪치거나 했을 때도 즉시 예비 보충 요법을 실시하고 있죠. 필요한 경우에는 예비 보충 요법을 한 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정기 보충 요법과 예비 보충 요법을 잘만 하면 무조건 괜찮다고 하셔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클럽활동으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또 야구 연습이 없는 겨울철에는 배구를 했습니다. 그 밖에도 야구 연습과 겹치기 때문에 지금은 그만 두었지만, 수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운동회에서는 100미터 달리기, 1000미터 계주, 반별 대항 계주, 줄다리기 등을 즐겼습니다. 수학여행도 반 친구 6~7명이서 조를 짜서 직접 계획한 여정으로 관광을 즐기기도 했답니다.

♣ 병원과 학교 선생님들께서 도와 주셔서 아들이 원하는 대로 뭐든 다 시켰다. (어머니)

초등학교 시절에는 주치의 선생님께 치료만 잘 받으면 괜찮다는 확답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이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시켰습니다. 야구부에서 투수를 했기 때문에 어깨 상태가 안좋아지거나 연습을 하다 공이 코에 부딪치거나 한 적은 있었습니다만, 별탈없이 무사히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거나 다쳐서 피가 멈추지 않는 위중한 상황을 제외하면 병원에는 2개월에 한번 정도 정기 통원만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은, 주치의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께서 아들의 연령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을 잘 해주셨고 학교 선생님들, 특히 담임 선생님이나 보건 선생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점은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질병에 대해 많이 이해해주시고, 아들을 서포트해 주고 계십니다. 수학여행에서는 보건 선생님께서 약재와 함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상담할 병원의 목록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아들과 계속 동행해 주셨다고 합니다.

♣ 몸도 꼼꼼하게 체크할 수 없게 되고, 함께 하는 시간도 짧아지다. (어머니)

아들에게 어디서 부딪치거나 넘어지거나 하면, 바로 알려달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알리지 않고 넘어가는 적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몸을 꼼꼼하게 체크했기 때문에 혹시 몸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필요에 따라 예비 보충요법을 실시하거나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수 있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들이 학교 복도에서 달리다가 넘어져서 벽에 무릎을 세게 부딪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이미 무릎이 상당히 부어 있는 상태에서 제가 알게 되었죠.

그러던 중 주치의 선생님께서 중학생이 되면 함께하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니, 그때까지 자가 주사를 놓을 수 있도록 해 두자고 하셔서 초등학교 5학년 봄방학 때 자가 주사 연습을 타진해봤더니 아들이 도저히 못하겠다고 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 전에 같이 병원에 가서 자가 주사 연습을 했습니다.

♣ 스스로 주사하는 것이 너무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니 가능해졌다. (B군)

처음에는 어쨌든, 자기 손으로 자신의 몸에 바늘을 찌른다는 것이 무서워서 좀처럼 자가 주사 연습을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어머니께 바로 말할 수 없는 때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몸을 보여주는 것도 싫어지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주치의 선생님께서 제가 스스로 주사를 놓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야구도 계속하고 싶지만 테니스도 한번 쳐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테니스 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 여러 가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래서 중학생이 되기 전에 자가 주사가 가능하도록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자가 주사를 놓을 수 있게 된 지금은 중학교 배구부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가 주사 연습 초창기에는 이번에는 잘했지만 다음엔 잘 될지 몰라 불안해했죠. 하지만 용기를 내어 스스로 바늘을 찔러 보니 차츰차츰 무섭지 않아졌고, 이젠 능숙하게 혼자서 주사를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질병에 걸린 친구들도 용기를 가지고 자가 주사 연습을 열심히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아이들은 성장하면 반드시 스스로 몸을 잘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어머니)

아들은 점점 성장했고, 어느새 저보다 더 정확하고 꼼꼼하게 관리하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집안 일 등으로 정신이 없어서, 주사 놓는 타이밍이 늦어지거나 하면 주사를 맞지않으면 안된다고 말해주곤 합니다. 어느 때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넘어가려고 하면 아들이 오히려 병원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하는 적도 있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걱정이 돼서 늘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성장하면 자기의 몸을 잘 이해하고 반드시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날이 옵니다. 많은 어머님들이 지금은 불안해서 울기만 하겠지만 언젠가 안심하고 웃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헤모라이프 조은주 기자]

<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 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조은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헤모필리아 라이프  |  등록번호 서울아02245  |  등록일 2012-08-31  |  대표 박천욱  |  편집인 김태일 박필선  |  청소년보호책임자 유성연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1로 205(가산동 470-8, 케이씨씨 웰츠배리 604호)  |  02)6111-8255
업무국 :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27길 25  |  전화 02-535-6474  |  문의 및 제보 hemo@hemophilia.co.kr
Copyright © 2012 헤모필리아 라이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