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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에도 굴하지않고 좋아하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은 아들에게일본환자가족 수기공모) 혈우병 에세이 참가작
조은주 기자  |  cap38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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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29  21: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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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 살 때였어요. 당시 주치의에게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을 선고받았고, 주치의에게 일상생활에서 주의할 점이나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설명을 듣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질병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계기는 아들이 소년 야구단에 입단하고 나면서부터 입니다. 야구 연습은 주말에 집중되어 있었고, 아들은 주 1회 병원에서 예방 투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근육 내 출혈을 종종 일으켜 유니폼 차림으로 긴급 외래로 달려가는 경우가 발생했고, 그럴 때마다 의료진들은 불안해하는 아들을 다시 건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중학교에서도 야구는 계속하고 싶다며 연식(야구에서 무른 고무공을 써서 하는 방식) 야구부에 들어갔습니다. 최근에서야 가정에서 주사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운동량도 많아져서 근육 내 출혈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주장으로 발탁되었지만, 생각대로 연습이 되지 않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대회 전에 또 다시 근육내 출혈이 발생해서 걷는 것 조차 쉽지 않아, 벤치에 앉은 채로 대회가 끝나버렸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중학교 야구부 생활이었지만, 졸업 전에 감독님과 선수 학부모님들 그리고 후배들이 정성껏 아들의 은퇴 시합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동경했던 고교야구. 고교야구는, 경구(硬球)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위험하죠. 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본인이 원하면 야구를 하도록 허락해주자는 OK 사인을 받았고, 아들의 병에 대해 감독, 팀 동료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고교에서도 주장으로 발탁되었고, 데드볼을 맞거나 고관절을 다쳤을 때는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병 때문에 가을 신인전과 봄에 열린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주치의에게 마지막 대회가 될 여름 시합 참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고, 선생님께서는 매일 주사 맞을 것을 제안해 주시면서 전폭적으로 협력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맞이한 마지막 여름 시합에서는 드디어 전 경기 풀 출장!

질병을 원망하며 울었던 날들도 있었지만, 병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필명/포야짱

[헤모라이프 조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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