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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이유서 : 막연한 희망도 관망도 말자유전자 치료를 쉬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김태일 기자  |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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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06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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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하얀거탑' 마지막회에서 죽어가는 의사 장준혁이 무언가를 쓰고 있는 장면

2007년 방영된 드라마 '하얀거탑'의 마지막 씬은 담관암으로 생을 마감한 의사 장준혁의 유서를 대신해 놓여 있는 장기기증 서약서와 '상고 이유서'를 비추며 마무리된다. 악역에 가까운 독설과 출세를 향한 맹목적인 전진으로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의사로서의 과실 가능성을 끝까지 부정했던 그였지만, 수술조차 할 수 없는 병세에 스러져 가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의료인의 자부심을 지키고자 했던 모습에 많은 시청자가 마음을 주었다. 어찌 보면 그 역시 신의 영역에 오르고자 하는 시스템의 희생자 중 하나였을테니까 말이다.

며칠 전, 다니고 있는 대학병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 달 전쯤 했던 혈우병 유전자치료 임상시험 적합성검사(스크리닝) 결과를 알려주는 전화였다.

선천적으로 특정 혈액응고인자 생성 유전자가 결핍되어 지혈이 어려운 혈우병 환자에게 정상 유전자를 투여해 간에서 영구적으로 응고인자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혈우병 유전자치료다. 세계적으로 수 년 간 임상시험이 진행되어 왔고 가장 앞선 제약업체는 미국과 유럽 의약국에 약품 승인신청까지 넣을 정도로 진전된 단계이다.

외부에서 정상 유전자를 환자의 간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매개체에 실어서 투여해냐 한단다. 가장 유력하게 디자인된 매개체가 바로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라는 사실도 이제는 상식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 치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바이러스가 환자의 몸에 잘 스며들어야 하고 정상 유전자를 간까지 효율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이 매개체를 거부하면 안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한국 혈우병 환자들의 AAV에 대한 항체율은 거짓말처럼 높게 나타나고 있다. 임상시험에 관한 것이어서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기자가 들어 알고 있는 비율은 93%에 가깝다. 열 댓 명의 환자가 유전자치료 임상에 도전했으나 그 중 단 한 명만 적합판정이 나 임상에 참여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AAV 항체가 있어 시험에 함께 할 수 없었다. 외국 혈우병 환자들의 항체율은 대략 20~30%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한국 환자들의 높은 항체율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본 기자의 유전자치료 시도는 작년이 처음이었다. AAV5를 매개체로 한, 미국과 유럽에 승인신청 들어간 그 제품(?)이었고 큰 기대를 안고 결과를 기다렸으나 희소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앞으로 여러 다른 매개체를 활용한 치료가 시도된다는 의사의 조언에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다른 업체의 AAV6 활용 유전자치료 임상 소식을 듣고 때를 기다렸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같은 아데노연관바이러스긴 하지만 세부 구분이 달라 가능성이 있다고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럴 이유도 딱히 없는데 더 컨디션 관리도 철저히 하고 몸가짐(!)도 바르게 한 상태였다. 먼저 '재수'에 도전했던 다른 환자들의 낙방 소식도 들려왔지만 그래도 담담히 기다린 결과는... 또 '부적합'이었다.

요즘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아이들과 살 부비며 노는 시간도 길어졌다. 가끔 별 것 아닌 순간인데, 아이들이 미소띤 얼굴로 옆에 누워있거나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행복감이 들 때에 그런 생각이 든다. 훗날 이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난 추억될까?

40년을 살아오면서 혈우병을 인정하고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길들여 왔지만 그렇다고 이 병을 사랑하고 평생 동반해 가겠다고 깍지 끼는 것은 좀처럼 되지 않는 다른 의미의 것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나로 하여금 이 병에 끝까지 저항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유전자치료가 지금 단계에서 곧장 혈우병 완치로 이어진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걸 안다. 알 수 없는 잠재적 위험요소도 있거니와 서구에서 허가를 받더라도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실제 환자들 손에 닿기까지 아주 험난한(최근의 신약들 예를 봐서도) 과정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그렇더라도 더 개선된 치료를 원하는 이 조차 없다면 그 과정은 더 길고 삭막한 여정이지 않을까?

누구도 강요할 필요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저 혈우사회에 그런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야 하겠다. 주치의는 곧 또다른 제약회사의 또또 다른 바이러스를 활용한 유전자치료가 임상에 들어갈 거라고 안내했다. 그것이 희망이 될지 관망이 될지는 온전히 환자 스스로의 결정이지만 싱겁게도 하얀거탑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는 건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보다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행복을 끝까지 누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내 유전자치료에 대한 상고 이유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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