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스타보 두다멜'이 연주하는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00주년 기념 월드 투어이자 존 윌리엄스 헌정 콘서트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 혹은 다음을 인터넷 브라우저의 첫 페이지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본인도 마찬가지로 네이버를 메인 페이지로 사용하고 있는데, 우연찮게 뮤직 카테고리에서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영화음악 콘서트’라는 주제가 보였다. 영화 <죠스>를 시작으로 아직까지 현시대 최고의 영화 음악 작곡가 활동하고 있는 그 유명한 존 윌리엄스의 콘서트가 우리나라에? 헌데, 자세히 보니 지휘자가 존 윌리엄스 본인이 아니다.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이라는 젊은 지휘자가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00주년 기념 투어 콘서트의 일환으로 국내에서 존 윌리엄스 헌정 영화음악 콘서트를 여는 것이다.
▲ 딱봐도 롹커다. 아니, 힙합가수인가? 하지만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마에스트로 두다멜이다.
솔직히 이때까지 마에스트로 두다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사실 그의 사진만 보면 어디 락커나 배우로 오해하기 딱 좋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2000년대 들어 가장 각광받는 지휘자이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까지 지휘한 경력이 있는 괴수급 지휘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자랑인 지휘자 정명훈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적이 있지만, 마에스트로 두다멜은 아직 마흔이 안된 나이에 천재 지휘자라는 타이틀까지 받은 유명한 지휘자라는 점이 다르다.
▲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열린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
헌데 이런 유명한 지휘자가 어쩌다가 존 윌리엄스의 영화음악을 연주하게 되었을까? 클래식 음악 지휘자 활동 외에도 두다멜은 영화음악 작업도 종종 겸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몇 영화의 OST를 작곡, 지휘하였고 이를 통해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 재직중에 존 윌리엄스와 친분을 쌓게 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2015년 개봉한 스타워즈 7편,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의 오프닝, 엔딩 OST 녹음도 직접 지휘하는 등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때 두다멜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존 윌리엄스는 우리 시대의 모짜르트다. 그의 곡을 지휘하게 되어서 영광이다.” 라고 소감을 밝힌 적이 있다.
▲ 콘서트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보통 연주회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몇몇 연주때에는 영화 클립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후 두다멜은 자주 존 윌리엄스의 곡들을 지휘하게 되었고 결국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라는 주제로 세계 투어를 나서게 된다. 이번 콘서트는 LA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100주년 기념 세계 투어로 클래식은 물론 현대 음악이나 재즈, 영화 음악 등의 장르도 자주 연주하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인만큼 이번 연주회에 딱 맞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뭉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존 윌리엄스의 간판격인 <스타워즈> OST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최초 연주를 했지만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영화음악을 자주 연주하는 만큼 충실한 사운드를 들려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과 같이 미리 설치되어 있는 기자재를 써야 하는 곳보다는 자신들의 장비를 직접 설치할 수 있는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보통 오케스트라 연주회는 대공연장에서 열리곤 한다. 예를 들어 이런 클래식 연주회는 예술의 전당의 콘서트 홀이나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같은 곳에서 보통 열리는데, 이번엔 특이하게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보통 올림픽 체조경기장은 비시즌에 가수들 콘서트장으로 많이 이용되곤 한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아무래도 더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있고 LA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쓰는 음향 자재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두다멜이 많은 박수를 받으며 시작한 콘서트는 놀랍게도 ‘올림픽 팡파르’로 시작했다. 우리에겐 너무 친숙한 곡인데 이런 올림픽 주제가를 존 윌리엄스가 몇 개 작곡한 적이 있다. 1984년 LA 올림픽을 위해 작곡된 이 곡은 “이게 존 윌리엄스꺼였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알려진 명성에 비해서 작곡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존 윌리엄스는 올림픽을 주제로 한 곡을 여러 개 썼다. 바로 다음 올림픽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도 작곡하였는데, 그 때에는 TV에서 지겹게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가 쉽지않다.
▲ 두다멜과 같이 한국에 온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규모가 큰 풀 오케스트라이다.
이어 연주되는 곡은 첫부분만 듣고서는 무슨 곡인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멜로디(물론 <클로우즈 엔카운터>를 봤다는 가정하에)가 나오자마자 아하~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헤리 포터>의 주제가도 마찬가지, ‘헤드위그 주제가’로 유명한 셀레스타로 연주한 전주 부분은 이 곡이 무슨 곡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유명한 멜로디이다.
▲ 에스터 유도 한국의 카카오 프렌즈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백 스테이지에서 나오고 있는 장면
이어서 잠시 퇴장한 두다멜 지휘자는 바이올린 연주자 ‘에스더 유(Esther Yoo)’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존 윌리엄스의 팬이라면 다음 곡이 무슨 곡일지 한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한 <쉰들러 리스트>의 OST 연주는 이날 콘서트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곡이 아닌가 한다.
약 한시간이 넘는 연주를 마친 오케스트라는 1부를 마무리하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2부의 시작은 또다른 존 윌리엄스의 명곡, <쥬라기 공원>을 시작으로 강렬하게 그의 음악을 전달한다. <해리 포터> 주제가를 연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디아나 존스> 주제가를 연주 할 때에도 큰 영상 스크린에 영화 장면을 편집한 영상과 함께 연주가 이어진다.
이날 콘서트의 피날레는 역시 존 윌리엄스의 대표작, <스타워즈>의 메들리로 마무리가 된다. 스크린에는 존 윌리엄스가 <스타워즈> OST를 녹음했던 장면들이 영화의 클립 영상과 함께 상영된다. 1977년에 처음 시작한 <스타워즈>와의 인연, 2015년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까지 40여년 가까이 존 윌리엄스의 지휘로 연주되었으며, <스타워즈 : 9(가제)>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행중이다. 어렸을 때 스타워즈를 보며 자란 아이들도 이제는 중년이 넘어가는 나이가 된 만큼 그가 직접 지휘하는 모습을 보기에는 너무 노령이 되어버린 존 윌리엄스, 하지만 이날만큼은 두다멜을 통해 그의 오리지날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 거의 모든 좌석이 들어찼다.
이렇게 폭풍 같은 연주가 끝난 후, 쏟아지는 박수에 두다멜은 3번의 커튼 콜을 가진다. 이어 연주되는 앵콜곡, <슈퍼맨>의 테마가 연주된다. 이제는 ‘한스 짐머’의 <맨 오브 스틸>이 더 유명하지만(물론 그의 음악도 매우 훌륭하다.)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과거 <슈퍼맨> 시리즈의 모든 영화에 삽입되었던만큼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멜로이다.
이렇게 연주를 끝낸 두다멜, 청중 전원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연주를 모두 마무리하고 그 후에도 몇번의 커튼콜을 더 받는다. 두 시간여의 연주, 짧지만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던, 그런 연주회가 아닌가 한다. 사실 존 윌리엄스의 곡을 연주하는 연주회는 많다. 그리고 존 윌리엄스의 곡을 연주하여 녹음한 앨범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곡들을 들어보면 왠지 어딘가 다른, 그런 느낌이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런 앨범들은 지휘자의 원곡 재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다멜은 존 윌리엄스가 녹음했던 OST 그대로 재생해낸다. 지휘자가 다르면 필히 음악의 해석도 달라지며 그런 이유로 약간의 다른 음색이 있기 마련인데 두다멜은 그러한 점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존 윌리엄스의 헌정 콘서트인만큼 그가 의도한 그대로 청중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지휘를 하였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그만의 색체가 뭍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듯, 힘있고 강한 존 윌리엄스의 곡들을 자신만의 강렬한 파워로 재해석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쉰들러 리스트>의 곡들처럼 섬세한 감각이 필요한 연주도 있었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던가, <지붕위의 바이올린>과 같은 곡들보다는 좀 더 힘이 필요한, <쥐라기 공원>, <인디아나 존스>, <스타워즈>와 같은 음악이 그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 백 스테이지에서 나온 두다멜은 팬들의 요청에 일일이 사인을 해주었다.
콘서트장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던 도중 또다른 인파가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백 스테이지에서 나오는 오케스트라 연주자와 두다멜을 보기 위해 모여있는 사람들, 굳이 집에 일찍 가야 할 이유가 없기에 본인도 줄을 서 기다려보기로 한다. 모든 연주자들이 나온 후 등장한 두다멜은 사람들의 환호에 사인을 일일이 해주는 팬 서비스를 보여주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콘서트의 감흥이 잊혀지지 않아 집에 묵묵히 쌓여있던 CD들을 꺼내본다. 한참을 모아보니 존 윌리엄스의 앨범을 참 많이도 샀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스트리밍 음원의 세상이지만 과거 80년대부터 빠져왔던 존 윌리엄스의 음악 세계를 접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미디어를 사서 재생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우리 혈우 환우들도 보통 야외 액티비티를 즐기기보다는 집에서 취미 생활을 즐기기 마련인데 그런 취미생활 중에서도 음악감상과 영화감상이 아주 대표적인지 않나 싶다. 본인 역시 그렇게 접하게 된 존 윌리엄스, 이제 구스타보 두다멜로 이어져 계속된 그의 음악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