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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톡톡] 뉴질랜드 최북단에서 가져온 것'다다다 가족'의 남반구 한 달 살기 - 케이프 레잉가
김태일 기자  |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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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7  17: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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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많은 장애와 시련에 부닥치게 된다. 특히 혈우병 환자로서 겪는 어려움은 '아직은 고칠 수 없는 병'이기에 우회해 가기보다 정면으로 맞서 넘어가야만 할 때가 많다. 갑작스런 중증 출혈을 겪을 때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편견과 마주할 때, 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 때, 오랫동안 꿔온 꿈의 방향을 돌려야 할 때 등 그 시련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뉴질랜드-호주 한 달 여행을 하면서 당연히 한번도 출혈이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 또 아이 셋을 데리고 처음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사건사고가 전무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어리석고 속편한 여행자가 없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예방요법용으로 두둑이 약을 준비하고, 아이들마다 전화번호가 적힌 목걸이를 채우고 아빠 명함을 주머니에 꼭꼭 넣어다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작은 시련과 돌발상황들이 여행의 가장 큰 추억을 선사하기도 하니 재밌는 일이다.

'케이프 레잉가'는 뉴질랜드의 최북단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남해 땅끝마을처럼 태평양을 향해 뻗어나간 육지의 끝단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포인트이다. 특히 과거 '태즈먼 해'를 건너 호주나 북쪽으로 항해하는 배들에게는 이 나라의 끄트머리가 이곳임을 알려주며 뱃길을 잡아주던 '케이프 레잉가 등대'가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자전거로, 걸어서 고행하듯이 여행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의미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 숙소가 있는 오클랜드에서는 왕복 1100km가 넘는 대장정이었다. 하루에 다녀올 수 없어 1박2일로 계획을 세우고 시동을 걸었다. 왕가레이, 베이오브아일랜드 등 주요 포인트에서 경치를 감상한 후 케이프 레잉가를 132km남겨둔 망고누이 지역을 베이스캠프 삼아 숙박을 했다. 기분 좋게 출발한 둘째날 아침, 근래에 비가 오락가락 하다가도 금세 해가 나와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날따라 북쪽을 향할수록 먹구름이 짙어지고 빗발은 계속 굵어졌다. 이미 500km 가량 달려온 상황에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차장에 주차하면 등대가 한 눈에 들어올 줄 알았던 건 오산이었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싸 온 과일과 샌드위치로 차안에서 점심을 해결했지만 기상상황은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더 지체했다간 돌아가는 길도 막막할 것 같아 바람막이로 몸을 감싸고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등대를 찾아나섰다. 두 갈래 길이 나왔는데 안내판도 보이지 않고 전화도 구글맵도 안터지는 곳이어서 직감에 의존해 왼쪽 길을 한참 비맞으며 걸어들어갔지만 맙소사, 다른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절망보다도 우리 뒤를 따라온 다른 관광객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돌아오며 감기기운도 있어 오들오들 떠는 둘째아이를 차로 돌려보내고 첫째한테 물어봤다. "그래도 끝까지 한 번 가볼래?" 다현이의 대답은 "OK" 였다. 평소 책만 좋아하고 유약한 성격인 다현이가 그렇게 말하니 좀 다르게 보였다. 내 아픈 다리도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 세계 각 도시의 방향을 나타내는 이정표. 아쉽게도 서울은 없었지만 도쿄 방향이랑 비슷하겠거니...

폭우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길을 10여 분 더듬으며 가니 멀리 등대가 보였다. 마침 하루 중 아주 잠깐 하늘이 비와 안개를 걷어가 주었고, 웅장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북쪽 땅끝 바다와 마주할 수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한번도 같은 모양이지 않았던 파도가 수십억 년째 자기 일을 하고 있었고 구름인지 안개인지 분간되지 않는 형체의 것들은 바람을 따라 산비탈을 타 넘느라 자신들이 산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시간을 잠시 잊은 채 아들과 풍경을 감상했다.

돌아오며 다현이와 약속을 하나 했다. 살아가며 힘들다 느끼는 때, 오늘을 떠올리기로 말이다. 길을 잃고, 앞도 보이지 않고, 시련과 마주하더라도 서로 믿고 한 번 가보기로.

▲ 태즈먼 해를 배경으로

차로 돌아왔는데 진짜 문제가 거기 있었다. 라이트가 켜져있었는지 차 배터리가 방전돼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전화가 안 터져 서비스를 부를 수도 없는 상황, ㅎㅎ 그래도 궁하니까 안 되는 짧은 영어가 절박하게 쏟아져나와 주변 차들의 도움을 받아 점프케이블을 빌려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케이블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 안 되면 마을까지 차를 밀어주겠다고 제안했던 열혈 청년들, 비 맞으며 좁은 틈으로 자기 차를 밀어넣어 보닛을 열어준 현지인들에게 깊은 감흥을 받았다.

아래는 케이프 레잉가 가는 길에 들린 왕가레이 폭포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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