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거리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오~~끝내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초라한 속죄가 옛이야기처럼 뿌연 창틀의 먼지처럼 오~~가슴에 쌓이네 이젠 멀어진 그대 미소처럼 비바람이 없어도 봄은 오고 여름은 가고 오 ~~그대여 눈물이 없어도 꽃은 피고 낙엽은 지네 오~내 남은 그리움 세월에 띄우고 잠이 드~네~ 꿈을 꾸~네~” -이선희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추억의 책장이 아닌 노트 한 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 아쉽다ㅜㅜ
남자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은 뭘 의미할까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 일입니다. 직장 생활을 잘하던 ‘짱구(혈우병을 가진 내 남친)’가 심오한 고민에 빠져서, 몇 날 몇 일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 말고 다른 곳으로 옮겨 일해보고 싶다”고 하네요.

“옮기고 싶은 직장은 정해져 있어? 퇴사하고 나면 바로 입사할 수 있어?” 등등 기본적인 걱정 하에 물어보고 또 물어봤는데... 결국 짱구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직장을 옮기는 걸로 결정했지요.

여기까지는 좋았단 말입니다. 근데 짱구가 직장을 옮기고 난 후부터 우리 사이가 년중에 한번 만나는 ‘견우와 직녀’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는 거죠.!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던 우리는, 짱구가 직장을 옮기고선 일주일에 한번에서 점점 횟수가 길어지더니 한 달에 한번 보는 것도 힘들 정도로... 최악의 상황까지 가버리더군요(어찌할꼬~ 어찌할꼬~)

사실 그전에는 ‘카톡’을 항상 짱구가 먼저하고 전 ‘이모티콘’으로 응대를 해줬었는데요. 이때부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가 먼저 핸드폰 문자로 도배하고 있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인건, ‘톡을 읽었다’는 숫자가 사라지면... 왠지 모를 위안과 안심이 되는 게 군대 보낸 아들한테서 안부 편지한통 받는 기분이랄까요!? (헉. 그런데 톡을 읽으면 뭐 하나요 대꾸를 안 합니다ㅠㅠ)

저에게는 짱구한테, 말 안한 비밀이 한 가지 있답니다. 그건 바로 ‘일기장’임다^^

일기장엔 짱구를 처음 만난 날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함께 다녔던 데이트 장소. 여행코스 등 하루일과를 모두 꼼꼼히 적어둔 내용들로~ 엄청난 이야기 거리가 많았었는데(아~ 이걸 제 손으로 박박 찢어버리다니!)

화가 나서 찢었다기 보단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일편단심'일줄 알았던 제 마음에 작은 파동이 일 기 시작한 거죠.

제 모습에 티가 났는지... 주변 친구들이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냐”며 여기저기서 소개팅을 해줬습니다. 전화번호 몇 개를 받았지요. 여러 명을 만났었습니다. 한번 만나고 그만 만나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예의상 몇 번씩 만나줬습니다. 때로는 짱구가 보자고 한 날과 겹치기도 했는데, 짱구에게는 핑계를 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했었어요.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엔 짱구한테 걸려서 시치미 떼느라 혼 쭐났었죠. 어떻게 알았는지 짱구에게는 남에게 없는 뇌파가 작동하는거 같았어요. 희안하죠? 나중에 다 알더라고요. 그래도 전 여전히 해맑은 미소로~ 시치미 뚝! ^^ㅋ(아니라고 잡아 떼면 자기도 뭐 어쩔수 있겠어요? ㅎㅎ)

대부분 시치미를 딱 떼고 넘겼지만~ 짱구에게 몇 번 걸린 게 있었어요. 아 글쎄 짱구랑 같이 있는데 문자가 왔지 뭐에요. ㅠㅠ 어떤 사람은 톡을 보내지 않나. 어떤 사람은 전화를 하지 않나.ㅠㅠ 하필이면 딱 짱구하고 있을 때 연락이 오는지. ㅠㅠ 그런데 말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 짱구만한 남자도 없더라고요.

나중엔 짱구에게 다 말하고 풀었습니다. 그리고 톡이나 문자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다시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싶었으나~ 자기네들이 보내겠다는데 말릴수도 없고... 그래서 아직 계속 보내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또 짱구에게 걸리면 어쩌나 고민스럽기도 해요. 나름 방법을 찾은 건~ 이제 습관처럼 톡이 오면 미리보기로 보고 바로 지워버려요. ㅎㅎ 짱구가 싫어하는 건... 딱 세가지에요. 이것만 지켜달라고 하더라고요. 다른건 신경 안쓸테니 딱 3가지만 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고요. 첫째 거짓말 하지 않는 거. 둘째 노래방이나 나이트가서 다른 남자랑 부킹하지 말라는 거. 세째 너무 늦께까지 다니지 말라는 거. 이 세가지 모두 저에겐 너무 가혹해요 ㅠㅠ 그래도~ 짱구에겐 약속했어요.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더라도 지하철 끊기기 전까지는 집에 들어갈꺼라고 꼬옥~ 꼭! 약속했답니다.^^

여튼, 짱구와 저는 3개월 동안 간간히 ‘톡’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어느 날 짱구가 “시간이 생겼다”며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몇 번을 펑크 냈던 경험이 있었던 지라 “이번에는 진짜지? 저 번처럼 또 펑크 아니지?” 몇 번을 물어보고 또 물어보면서 퇴근시간까지 아무 일이 안 생기길 빌었는데(오~ 마이 갓 뎀!) 글쎄 짱구가 또 펑크! 펑크! 펑크! 몇 번째 인지 생각도 안 납니다. ㅜㅜ

‘발렌타이 데이’ 때 주려고 사둔 초코렛이며, 일하는데 피곤하지 말라고 사둔 비타민까정...몽땅 눈앞에 쌓아 놓고~ 짱구한테 톡을 보냈습니다. “우리 만나는 거 다시 생각해보자” 이렇게 보냈습니다. 그리곤 어떤 답장이 올까? 기다렸는데... 역시... 답이 없네요... ㅠㅠ

그때 혼자 맘 정리한다고 한 게... 그동안 써왔던 일기장을 한 장씩 박박 찢으면서 행여 누가 볼까 아주 작은 종이마냥~ 얼추 2시간 동안 쓰레기통과 친구했습니다. 엉엉~ㅠㅠ

나중에 짱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줬더니... 제가 이러고 있는 동안 짱구는 ‘회사일 때문에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었다’라고 하네요?! (믿어 줘야 할까요?)

얼마 후 연락이 안 올 줄 알았던 짱구한테서 톡이 왔습니다. “나 백수 됐어. 이제 시간 널널해~ 우리 다시 매일 얼굴 볼 수 있어”라는... 근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을까요?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더라고요.

옮긴 직장에서 딱 1년 만에 그만 둔건데... 1년 동안 만난 횟수를 세어보니 6번이네요. 어찌할까 고민하다 짱구를 만난 후 결정하자 생각하고 약속 장소로 나가보니 수염도 안 깎은 듯 덥수룩한 얼굴로 ‘안녕’이라면서 해맑게 웃고 있네요ㅠㅠ

생각해보니 이날 짱구와 만난 2시간이, 지난 1년 동안 생긴 어색함으로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엉킨 실타래가 금방 풀리지는 않는 것 처럼요. 이후로 짱구가 무지 많이 노력했죠... 그 덕에 저도 조금씩 풀렸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몇 년을 사귀어 온 오래된 커플들도 중간중간 ‘권태기’라는 위기 상황도 있었을 텐데, 그거에 비해면 1년 동안 자주 못봤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너무 옹졸하게 생각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짱구가 저의 일기장의 존재를 알고부터는 “늦지 않았어 다시 쓰면 돼”라면서 일기장에 더 많은 이야기꺼리를 담아보자고 하네요.

일기는 아직 안 쓰고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일기 쓰는 거... 도전해 볼까요? ^^

혹 일기는 아니어도 비스무래 한 형식으로 하루일과를 수첩에 적어두는 분이 계시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일기장으로 도전해보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