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환자들은 박스앨타(박스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로인해 혈우사회에 긍정효과를 가져온 것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환자들이 기억하는 건 ‘환자와의 약속을 저버린 회사’로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그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과연 환자의 약속을 저버린 것으로 끝맺음을 한 배신의 회사일까? 필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 ‘박스앨타’는 그 어느 제약사보다 혈우사회에서 혈우병 환자들을 위해 혈전을 펼친 파이오니아라 부르고 싶다.

쓴 맛 본 박스앨타의 혈우병치료제 도입

지금의 박스앨터는 국내 혈우사회에서 독보적인 매출 1위의 제약사이다. 그러나 박스앨타가 국내에서 무수한 고전을 치렀던가를 짚어보면 지금의 1위 제약사는 거저 얻은 자리가 아니다.

박스앨타의 혈우병치료제가 국내들어 오기까지는 그 어느 제약사보다 쓴, 좌절의 맛을 본 회사이다. 1991년 한국혈우재단이 설립되면서 혈우병환자들의 치료가 안정권에 들어설 무렵. 1993년 박스터는 자사의 치료제를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 보험급여적용을 서둘렀다. 정부와 민간단체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미국산 혈액제제의 의료보험 적용을 강요하지 말라”며 맞섰다. 이 무렵에는 반 외국산치료제 정서가 우리 혈우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었고, 환자들은 녹십자에게 ‘부채의식’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박스앨타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고 ‘무역통상’ ‘슈퍼301조’같은 무역 분쟁까지 꺼내 들고 나섰다.

당시 우리 정부에서는 ‘보험재정 적자’를 내세우며 약품수입에 반기를 들었고 환자들도 정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박스앨타는 “불공정 행위”라며 “가트에 제소하겠다”고 맞불을 논 것. 다급해진 박스앨타는 이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1991년 혈우병치료제의 수입이 개방되면서 한국적십자사를 통해 약 2천병정도의 치료제를 국내에 가져왔으나 보험급여적용이 되지않아 단 한 병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녹십자 치료제는 보험급여적용이 되면서 80%는 보험재정으로 20%는 한국혈우재단에서 지원하면서 혈우병환자들에게 무상치료가 이뤄지고 있었다. 당시 녹십자의 치료제 가격은 5만원이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박스앨타의 치료제는 20만원에 육박하는18만6천원. 가격이 약 4배가량 차이가 났다. 물론 개선된 치료제라는 장점이 있었으나 당시 혈우사회의 화두는 <치료제의 안전성>보다는 <공급의 안정성>이 우선이었다. 시기를 잘못 선택한 것일까?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일까? 재단도, 환자도, 국가도 나아가 국내의 언론들도 외국의 AIDS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박스앨타의 혈우병 치료제 도입을 완강하게 막아 냈다.

▲ 박스앨타 본사의 혈우병환자 지원 사이트

박스앨타의 개척의지 … 환자들이 놓쳐서는 안 돼

환자들의 정서를 바꾸는데 까지 소요된 기간은 무려 10년. 2000년이 되면서 박스앨타의 국내 도입이 다시금 재가동되었고, ‘0세 보험급여 적용’이라는 허울뿐인 영광을 얻은 뒤 수년에 거쳐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나이를 넓혀갔다. 결국 이제야 환자의 나이제한 없이 의료진과 상의해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거다.

이렇게 박스앨타는 국내환자들에게 당시 ‘최고의 치료제’를 사용하게 하기위해 피나는 반대를 무릅써야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박스앨타는 ‘같은 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뜻 맞는 동지’라고 할 건더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박스앨타가 독자적 치료제 공급과 판매를 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약품의 선택권은 환자나, 의사에게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부로부터 규제를 통해 또 다른 장벽이 있을 게 자명하다.

비단, 유전자재조합제제의 시장뿐 아니다. 박스앨타는 그 어느 제약사보다 뛰어난 미래지향적 치료제가 준비되고 있다. 흔히들 말하고 있는 반감기 연장 ‘롱액팅’ 치료제를 비롯해 릭수비수 유전자재조합치료제, 나아가 뉴클리어 ‘완치’를 목표로한 유전자치료까지 이런 것들이 바로 오래전부터 R&D에 큰 규모로 투자한 결과이다.

이같은 박스앨타의 파이오니아 정신은, 현재에 급급하지 않고 앞으로 출시될 혈우병치료제가 줄이어 대기하고 있다. 우리 혈우병환자들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바로 박스앨타의 비전인 것이다.

김현섭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