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말.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행복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과 더불어 개인별로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점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합쳐져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그럼, 나는 행복한가? 또, 우리는 행복한가? 이런 고차원적인 질문(또는 의문)에 답 할 수 있는 저차원적인 계기가 있었다. ^.^

지난 7월 1일 필리핀에 계시는 장인어른이 사망했다.(참고로 나의 아내는 필리핀 사람이다.) 6월 초에 병원에 입원하였고, 입원중 화상통화로 안부를 전하며 곧 방문한다고 인사도 했기 때문에 사망까지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 장인이 입원, 치료 중 사망한 Quezon City의 ‘East Avenue Medical Center’

급하게 항공권을 구입하여 마닐라에 도착했다. 마닐라에서 택시를 타고 아내의 집이 있는 Laguna로 향하였으며, 다음날, Laguna에서 장례식장인 Bulacan까지의 대장정을 시작하였다. 그 고난의 대장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처갓집에서 좀 걸어 나와 트라이씨클을 탄다. 이 트라이씨클이라는 것이 참 불편하다. 요금을 흥정한 후 운전사 옆 좌석에 앉으면, 목이 꺾인다. 천정의 높이가 낮기 때문에 목이 꺾일 수밖에 없다. 쿠션이 없는 좌석에 앉아 목이 꺾인 상태에서 덜컹거리며 간다. 고역이다.

▲ 필리핀의 트라이씨클

잠시 후 지프니 터미널에 도착해 지프니를 탄다. 지프니는 필리핀의 상징적인 교통수단이며, 승객 정원이 다 타야 출발한다. 출발한 후 승객이 내리고 싶은데서 운전사에게 말하면 내려준다. 타고자 하는 사람도 좌석 여유만 있으면 어디서나 탈 수 있다. 지프니 역시 의자에 않으면 목이 꺾인다. 그 상태에서 옆 사람과 촘촘하게 완전 밀착한 상태에서 달린다. 역시 고역이다.

그렇게 30여분을 달린 후 지프니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것이다. 바로 시외버스에 탔다. 시외버스는 에어컨도 나오고 쾌적했다. 좋다. 물건 파는 사람들이 타서 간식거리 등을 판다. 옛날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재밌었다. 그런데, 탑승 후 한참을 기다려도 출발하지 않는다. 사람이 꽤나 많이 탔는데도 출발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물었다. 왜 출발하지 않냐고. 아내가 대답했다. 사람이 다 타야 출발한다고... 지프니처럼... 헐...

▲ 이곳의 대표적인 교통수단 지프니

그 후에, 택시와 고속버스를 추가로 이용한 후에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Laguna의 집을 출발한지 7시간 30분만에...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비행기를 타기까지 하루의 여유가 있었다. 마닐라 시내에 나가서 여기 저기 들러 보려고 했으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시내로 나갈 수가 없었다. 슈퍼 태풍이다.(필리핀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추후에 알게 되었지만 이 슈퍼 태풍이 필리핀으로 직접 오지 않고 일본쪽으로 향하였으며, 비가 많이 왔단다. 그 비로 인해 무려 159명이나 사망했다고 한다.

나와 아내와 장모는 비가 오는 관계로 집 근처 동네를 걸어 다녔다. 비를 맞으며, 그냥 이곳 저곳 발길 닿는대로... 어슬렁 어슬렁... 그러다가 농구 코트에서 농구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7~10세의 어린아이들도 있었으며, 15~20세 정도의 큰 아이들도 있었다. 참고로 필리핀은 농구가 국기다. 공은 3개가 있었고, 농구를 하는 아이들은 약 20명 가량이었다.처음 그 모습에 나는 ‘이게 뭐야..’ 2개의 골대를 사이에 두고 공 3개에 약 20여명이 정신없이 뛰는 모습이 어지럽게 보였다. 같은 팀이 어떻게 되는지 구별도 안 된다. 정신이 없다. 난장판이다. 아니 개판이다.

그렇게 그냥 무심하게 보고 있는데, 한 아이가 바닥에 엎어진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아마도 경기 중에 상대의 심한 공격 또는 수비로 인해 몸에 충격이 온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아이가 울고 있는데, 다른 아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기들의 농구 게임만 하고 있다. 좀 이상했다. 그러다 잠시 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넘어진 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고 약간의 부딪힘에 넘어진 것이다. 넘어진 김에 엄살을 부렸는데, 같이 농구하는 아이들은 익숙한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순간 나는 아내에게 말을 배워 따갈로그어로
“일어나서 집에 가야지(Tumayu ka na dyan at umuwi kna sa bahay mo.)”
라고 하자 아이는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고는 금방 일어났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쑥쓰러웠는지 비가 와서 바닥에 고여 있는 빗물을 친구들에게 튕기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재밌었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주 한참동안...

그 모습이 행복해 보였고, 그 광경을 보는 나도 행복했다... 우연치 않게 본 모습에서 꽤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 농구하던 아이들. 농구할땐 비가와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내가 귀국한 후에 아내가 집안의 쓰레기들을 치워달라고 부탁하였고 청소후에 수고비를 조금씩 준 후에 찍은 사진]

다음날 아침 공항에 가기 위해 트라이씨클을 탔다. 트라이씨클을 탄 후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조금 앞으로 뺐다. 그렇게 자세를 조금 바꾸니 고개를 꺾을 필요가 없었다. 고개를 꺾지 않으니 바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스치는 거리의 모습이 예뻤다.

지프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엉덩이를 조금 앞으로 빼니 여유가 있었고 같이 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보는 학생, 화장하는 여자, 서류를 꺼내어 펜으로 체크하는 사람, 대화하는 친구들 등...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공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장모는 동네표 햄버거와 물 등 간식거리를 사서 나에게 안겨주고 떠났다.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몰랐으나 조급하지 않았다. 사람이 차면 곧 출발할거니까...

그렇게 나는 행복한 마음과 함께 돌아올 수 있었다. 행복은 쫓는 것이 아니고 만들고, 가꾸어 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남아있는 나날 동안...

추신 : 이번 장례식 일정에 도움을 주신 한국코헴회 내외 관계자 여러분 지면을 통하여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

▲ 본인과 사랑하는 아내 샤론

[한국코헴회 남용우 사무국장]